등록 : 2016.04.18 21:45
수정 : 2016.04.18 21:45
두 달쯤 전 강정국제평화영화제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른 말이 “드디어!”였다. 강정마을이 겪어온 기나긴 고통 속에서도 끝내 빛바래지 않은 두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생명평화’와 ‘문화예술’이다. 해군기지가 다 지어진 마당에 무슨 생명평화고 문화예술이냐고? 전쟁기지가 완공되어 가시화된 저 차디찬 황무함 바로 곁에서 평화의 진짜 얼굴이 자라날 것이므로, 공권력에 의해 짓밟힌 마을을 문화예술의 힘으로 추스르려는 이 노력이 ‘드디어’ 관의 지원과 협력으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주민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운영하는 ‘책마을’의 싹이 자라고 있는 거기에 국제영화제까지 성공적으로 자리 잡게 되면 군사기지마을로 전락할 수도 있는 마을이 스스로를 지켜갈 힘을 좀 더 굳건히 가지게 될 것이다. 책과 영화는 평화의 메신저이자 평화 자체이니까.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이 심상치 않다. 영화제를 지원하고 도와야 할 제주 서귀포시 당국이 영화제 상영 장소로 예정됐던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관 불가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대관 신청을 받고도 한 달이나 끌다가 내려진 대관 불가 통보로 23~26일로 예정된 영화제 진행에 큰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대관 불가 이유가 ‘정치적 편향성 우려’ 때문이라는데, 이는 부산국제영화제 파행의 단면과도 정확히 겹쳐 있다. 예술 창작과 향유의 자유가 이렇게나 억압되는 문화적 후진국임을 전세계에 알리는 부끄러운 작태가 반복 중이다.
제주도정은 그간 입버릇처럼 강정마을의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찾겠다고 해왔으나 실상 그럴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지? 원치 않았던 군사기지가 들어서면서 황폐해진 마을공동체를 복구하고자 주민들이 노력할 때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 관이 해야 할 일이다. 파괴된 마을을 회복시키기 위해 시민들이 한 푼 두 푼 힘을 모아 평화와 화해를 소망하는 국제행사를 열겠다는데, 어떻게 잘 도울지를 궁리해야 할 행정당국이 돕기는커녕 후진국형 탄압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강정마을에서 화해와 평화는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서귀포시의 공식 입장인 것인가?
시대착오적인 제주도정과 서귀포시의 행태가 안타깝지만, ‘관행’의 무능과 무감동을 공감력과 감동으로 바꾸어 마을을 살려나가려는 주민들의 노력은 영화제를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다음 행보를 발 빠르게 가동 중이다. 서귀포시는 강정마을이 군사기지마을로 고착되어 고사하길 바라는지 모르지만, 주민들은 관의 이런 시대착오적인 탄압에 맥없이 갇히지 않을 것이다. 마을 곳곳의 크고 작은 의미 있는 장소에서 세계 10개국 34편 영화가 상영된다. 큰 장소가 필요한 개막식만 서귀포성당에서 치르고 나머지 모든 영화 상영과 폐막식은 강정마을 안에서 차질 없이 진행된다. 마을회관, 평화센터, 의례회관, 삼거리식당, 강정천 주변이 영화 상영 준비를 마쳤고 통물도서관에서의 평화북콘서트, 프란체스코평화센터에서의 평화포럼, 마을회관에서의 평화학교도 차질 없이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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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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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국제평화영화제에 오시라. 제주에서 보기 힘들었던 많은 영화들이 상영된다. 너무도 무감각하게 후진국형 탄압을 저지르는 관의 횡포에 맞서 생명의 감각을 온몸으로 체득한 주민들이 문화예술로 평화로운 저항의 역사를 쓰는 현장에 동참해 주시라. 생명은 생명을 부른다. 34억원 구상권 청구까지 당한 마을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지켜가기 위해 온몸으로 평화가 되어가는, 진짜배기 ‘생명평화문화마을’을 만들어가는 길에 함께해주시기를!
김선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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