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21 19:42
수정 : 2016.04.21 19:42
대통령님께.
혼란스러운 국내외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로 심려가 많으실 줄 압니다. 얼마 전 통일부 장관이 참석한 자문회의 자리에서 저는 대통령을 면담할 기회를 달라고, 그리고 저를 평양으로 보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답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제가 대통령 뵙기를 청했던 이유는 하나입니다. 현재 중단되어 있는 북한 어린이 예방접종사업을 재개할 수 있게 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그간 한국 정부는 5·24조치 등 대북 강경정책하에서도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대규모 예방접종 사업을 지원해 왔습니다. 그 혜택을 입은 북한 어린이는 B형 간염 사업 약 370만명, 일본뇌염 사업 약 310만명에 달합니다. 지난해에도 어린이 250만명에게 홍역·풍진 예방접종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 등 남북관계의 악화로 인해 나머지 300만명에 대한 예방접종사업이 중단되었습니다.
대통령님. 인도적 사업에는 미룰 수 없는 사업이 있습니다. 예방접종은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되는 사업입니다. 이런 다급함을 호소해도 관계자들은 ‘4월 총선’ 뒤에 보자고 했습니다. 총선이 끝나니 ‘5월 북한 전당대회’ 후에 보자고 합니다. 전당대회가 끝나면 또 ‘내년 대선’ 후에 보자고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또 우리는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꺼져가는 어린 생명은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북한 어린이 예방접종은 북한만을 위한 사업이 아닙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등을 이유로 대북 말라리아 방역 지원을 중단한 탓에 남한 내 말라리아 환자도 늘어나 서둘러 지원을 재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지원이 중단되자 작년 1~6월 경기 지역 말라리아 환자 수가 153명으로 증가했는데, 이는 이전 해보다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지금대로라면 올해 남한 말라리아 환자 수는 더욱 급증할 것입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니, 예방접종 재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분은 오직 대통령밖에 없다고 합니다. 실무자들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대통령의 호통이 두려워 누구도 제대로 직언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군사적인’ 대응 조처를 취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전쟁이 나면 남북한 가릴 것 없이 적어도 수백만명이 죽을 텐데, 자기네 땅, 자기네 국민이 아니라고 말을 참 함부로 합니다.
대통령님, 한반도의 평화는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북핵보다 더 강한 두 가지 무기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희망’입니다. 남북의 평화적 공존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희망이야말로 핵보다 강한 무기입니다. 또 하나는 ‘따뜻한 포용’입니다. 설령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식량과 예방접종 지원을 중단하지 않는 따뜻한 포용이야말로 핵폭탄을 녹여내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에 평화통일을 가져올 수 있는 ‘북핵보다 강한 무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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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사회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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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대통령’을 꿈꾸셨으니 진정 ‘북핵보다 강한’ 이 ‘통일의 무기’를 장착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남북 어린이를 보듬어 안는 ‘따뜻한 지도자’가 되어 주십시오. 먼저, 지원을 보류하고 있는 북한 어린이 예방접종사업의 재개를 허락해 주십시오. 북쪽이 거절한다면 저를 북한으로 보내주십시오. “어른들 싸움 때문에 ‘나라의 보물’인 어린이를 다치게 하지는 말자”고 설득하면 북한 지도자도 ‘통 크게’ 승낙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럼 ‘반가운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사회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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