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28 20:18
수정 : 2016.04.28 20:18
얼마 전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공개수업을 다녀왔다. 아이들은 구한말 개항과 쇄국을 놓고 토론을 스스로 진행했다. 흥미로운 것은 학생들 전체를 대상으로 개항에 대한 찬반을 다수결로 결정하게 한 것이었다. 토론 전에는 개항에 반대한 학생이 토론이 끝난 후에는 찬성으로 돌아서기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 선출 규칙을 둘러싼 논란 장면과 묘하게 겹치는 느낌을 받았다.
20대 총선에서 생각지도 않게 대승을 거둔 더민주는 총선이 끝난 지 보름이 지나도록 당권 규칙을 둘러싼 분란으로 금 같은 시간을 허송세월하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당 대표를 정하는 규칙에 대한 논란 내지 볼썽사나운 장면이 어째서 언론에 여과 없이 노출되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을 걱정하게 만드는가 하는 점이다. 더민주의 최근 분란을 보노라면 당 대표가 아니라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상황은 ‘비겁한 자들의 정치학’이라 이름 붙일 만한 두 가지 특징적 양상을 드러낸다. 하나는 간보기 정치다. 당 대표는 다른 조직이 아니라 바로 정당이라는 특수조직을 대표하는 자다. 그렇다면 무슨 논쟁이든 당내에서 활발히 전개하는 게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대상으로 발언하는 여론정치가 일상화되어 있다. 여기에 더민주와 직접 관계도 없는 외부자들의 정파적 훈수가 더해지면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다른 하나는 애매모호함의 정치다. 대표적으로 경선으로 위장한 사실상의 합의추대라는 기상천외한 논리다. 경선이면 경선이고 추대면 추대지 경선을 가장한 합의추대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는 결국 자신의 발언에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이며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겠다는 비겁한 자들의 정치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더민주 의원들은 경선이든 추대든 왜 결정하지 못하는가? 사실 이런 식의 결정 장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야당의 고질병이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 개개 의원이 고유의 헌법기관이자 입법기관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안이건 자신의 정견을 갖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국민의 대표로서 자격이 없다. 국회의원 스스로의 의지와 판단으로 자기 당의 지배구조를 결정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가 이를 해결해줄 수 있단 말인가? 국민들은 3당 합당 당시 노무현 초선의원이 김영삼이라는 제왕적 총재에 외로이 맞서 의원총회에서 뿜어낸 사자후를 결코 잊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사달이 난 것은 국회법 개정 등 당내 의원총회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한 사안을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대통령이 개입해서 배신의 정치로 찍어내린 결과다. 123석의 제1당으로 부상한 ‘거대’ 더민주가 ‘단지’ 38석의 국민의당에 왜 정당지지율에서 줄곧 뒤지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길 바란다. 이 추세를 그대로 내버려둘 경우 대선에서 닥칠 자기 당의 운명에 대해서도 잘 판단해보길 바란다. 더민주가 아니라도 새로운 선택지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정당지지율 역전 사태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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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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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총회에서 밤샘 숙의와 피 터지는 토론을 통해 경선으로 대표를 뽑을지 합의추대를 할지 여부를 의원들 스스로 직접 결정하라. 어차피 현재 상황에서 양 대안은 일장일단이 있다. 사전에 올바른 정답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결정하고 이렇게 해서 정해진 당의 의지를 현실에서 구현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 그것이 정치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선 좋든 나쁘든 당의 이름으로 책임져야 한다. 모처럼 승기를 잡은 더민주에서 국민들이 듣고 보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런 과단성 있는 모습이다.
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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