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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04 19:56 수정 : 2016.05.04 19:56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건강보험제도 도입 이래 계속되는 논쟁거리다. 특히 2000년을 전후한 직장건보와 지역건보의 통합은 형평성 논쟁을 가속화시켰다. 과거 조합주의 방식에서는 해당 조합 내부의 형평성을 유지하면 큰 문제가 없었지만, 단일 보험자 체제에서는 전국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보험료’와 ‘재산보험료’의 역진성을 어떻게 해결할지, 직장가입자의 경우 ‘보수 외 소득’을 어느 정도 포함시키고 ‘피부양자’를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주된 쟁점이다. 뭐니 해도 가장 큰 해결 과제는 ‘송파 세 모녀’ 같은 저소득 지역가입자들의 과중한 부담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이다.

3년 전 박근혜 정부 초기에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 만들어져 개편 논의를 공식화했다. 기획단 논의 과정에서 이견이 많이 좁혀져서 결론을 발표하려던 작년 1월,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돌연 부과체계 개편 중단을 선언했다. 연말정산 문제로 정국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부담을 느꼈던 것이다. 기획단장은 사퇴했고, 대부분의 언론은 기획단의 결론을 지지하는 논조를 취했다. 언론의 질타에 놀란 정부 및 여당은 바로 2월에 당정협의체를 구성했다. 하지만 논의는 진척이 없었고, 하반기 총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다시 수면 아래로 잠겼다.

형평성 개선을 위한 저소득층의 보험료 경감은 누군가의 보험료 인상으로 충당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험재정 수입의 감소로 이어진다. ‘재산’에 부과하지 않고 ‘소득’에만 부과한다는 원칙을 지키려면 한 해 3조원에 달하는 수입을 포기해야 한다. 형평성을 강조하자니 지속가능성이 문제되는 상황이다. 조금이라도 보험료가 오르게 되는 사람들의 불만 또한 정치적으로 부담이 된다. 이러한 부담은 항시 정부 여당의 태도를 소극적으로 만들어왔다. 민주당이 여당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폭탄 돌리기의 전형적인 사례다.

문제의 해결에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 보험료 수입의 감소를 견딜 수 있는 건보 재정상황이다. 다행히 지난 몇 년간 건강보험은 매년 2조~4조원의 흑자를 기록했고, 현재 누적적립금은 17조원에 달한다. 건보료 개편의 적기이다. 둘째, 여야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필자는 작년 9월 복지부 국정감사장에서 보험료 부과체계와 관련해 한마디 할 기회가 있었다. “반복되는 폭탄 돌리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정부 여당의 당정협의체만으로는 부족하고, 여야가 추천한 전문가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제시되는 안을 여야 모두 따르기로 약속하지 않는 한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여야가 함께 정치적 부담을 지겠다는 자세 없이는 미봉책은 가능해도 근본책은 나오기 힘들다. 상대방에 대한 책임 전가는 이제 그만. 실천이 필요하다.

누적된 부과체계의 모순이 부분적으로라도 해결될 ‘기회의 창’은 열렸다. 모순을 해결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작년 장관의 중단 선언 이후만큼 집약되고 언론의 관심이 지속된 경우는 없었다. 계속되는 건보 흑자는 보험료 부과체계의 개선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당장은 형평성에 중점을 둔 건보료 개편을 시행하자. 당장의 보험료 수입의 감소는 적립금으로 충당하고, 향후 몇 년간 전체 보험재정의 흐름을 보면서 보험료율 자체를 조정해 나가면 된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건강보험 정책심의위원회 위원
우리의 건강보험제도가 부과체계의 모순을 풀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정비되고, 선진화된 ‘전략적 구매’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다면 보편적 의료보장을 추구하는 세계 보건의료의 흐름에서 자랑스러운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건강보험 정책심의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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