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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23 19:32 수정 : 2016.05.23 19:32


언젠가 <여배우들>이라는 영화에서 윤여정 선생님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세상이 다 재미없어요.” 8년 전, 23살 꼬마의 넋두리가 선생님께 얼마나 귀엽다 못해 철없는 소리로 들렸을지 지금도 가끔 생각하면서 실소를 터뜨린다. 지금 다시 찍는다면 이제는 이런 소릴 할 거다. “선생님, 저는 정말 열심히 살 거예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거예요.” 국제구호개발 엔지오(NGO) 굿네이버스와 함께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12일간의 봉사활동을 마친 뒤 돌아오던 날 밤,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내 안에서 반짝였다.

세 번의 환승, 꼬박 이틀이 걸려 도착한 르완다는 1200만 인구 중 40% 가까이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아간다. 이곳에서 나는 사람들을 만났고, 상상도 못했던 암담함을 난생처음 피부로 느꼈다. 그들의 어려운 삶과는 달리 르완다의 하늘은 청아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바나나 나무, 아보카도 나무 등으로 가득했다. 이토록 풍부한 자원이 있음에도 왜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굶주려야 하는 걸까? 르완다에 있는 동안 이 질문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르완다 수도인 키갈리에서 차로 5시간 정도 걸리는 무키자에서 16살 소녀가장 엘리스를 만났다. 질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장애를 가진 오빠와 연로하신 어머니, 그리고 어린 막내 동생까지 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엘리스. 엘리스는 생계를 위해 학교를 포기하고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일했다. 또래보다 가는 팔다리를 가진 오빠 도너트는 자신의 병명조차 알지 못했다. 도너트는 몸이 불편한 자신 때문에 동생이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해했다. 엘리스는 그저 맑고 조용한 웃음만 지었다. 엘리스의 집에 있는 동안 줄곧 비가 내렸다. 천장 사이로 비가 샜다. 학교나 병원이 없는 것은 물론, 전기조차 닿지 않는 이곳은 밤이면 어둠으로 깜깜해진다. 지금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에, 눈앞의 빈곤만이 아닌 앞으로 장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까지 눈에 밟혀 온 마음이 불편해 견딜 수 없었다.

굿네이버스와 함께 짓고 있는 희망학교 착공식에 참여했다. 아직 뼈대만 세워졌지만 학교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던 아이들. 희망학교 착공을 축하하며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춤을 추고 즐기는 가운데 문득 엘리스가 생각났다. 엘리스와 도너트도 저 아이들과 함께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착공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희망학교 착공식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보여준 맑은 웃음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비록 맨발로 뛰어다니지만 글을 배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던 아이들이 앞으로 희망학교를 통해 한 뼘 더 자신의 꿈을 키우고, 조금 더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랐다.

김옥빈 배우
함께 동행한 굿네이버스 직원에게 물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려운 이 상황에 우리가 하는 이 일들이 정말 도움이 되느냐고. 직원은 작은 도움들이 모여 학교도 세우고, 우물도 지으며 내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한결 부드러워지는 느낌이었다. 도움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모인 도움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이번 르완다에서의 봉사활동은 내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된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눔에 함께 참여해 어려운 이웃들이 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데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주기를 바라본다.

김옥빈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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