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06 19:29
수정 : 2016.06.06 22:01
한국의 환경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1991년 3월14일 있었던 두산 페놀 사고다. 경북 구미 두산전자 공장에서 유출된 30톤의 페놀은 40㎞를 흘러 대구시 수돗물 취수장에 도달했고, 살균을 위해 투입한 염소와 반응해 생긴 클로로페놀은 엄청난 악취를 일으켰다. 이 사태로 대구시에는 수돗물 공급이 이틀이나 중단됐고, 어느 산모는 기형아를 우려해 낙태를 하고 소송까지 벌였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두산맥주 불매운동이 크게 일었다. 대통령이 나서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환경처 장차관이 경질되고,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낙동강 환경청 공무원 7명과 두산전자 임직원 6명 등 13명이 구속됐다. 두산 페놀 사고는 환경문제가 복잡한 과정을 거쳐,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켰다. 기업의 탐욕이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 환경법규의 정비가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여론을 만들었다.
그리고 사회는 놀랍게 변했다. 수질오염, 쓰레기매립장 설치, 매연 발생 등 만연한 환경문제들에 사회의 관심이 모였고, 곳곳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기업, 정부까지 친환경을 내걸었고, 언론들이 캠페인을 벌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정부 운동으로 지목돼, 감시를 받던’ 공해추방운동은 갑작스런 변화가 얼떨떨했다. 울산의 온산공단 주민들, 남양주 원진레이온의 노동자들, 서울 상봉동 삼표 연탄공장 인근 주민들을 지원하던 ‘반공해 운동’은 이렇게 갑자기 주류의 가치로 태어났다. 사회가 ‘우리 모두는 미래를 공유하고 있다’는 걸 깨닫자마자 발생한 변화였다.
한국 사회는 90년대, 동강댐 계획, 시화호 수질 개선, 새만금 갯벌 등을 두고 논란하면서 생태계와 국토의 보전에 대한 합의를 높였다. 2000년대에는 국가 계획에 환경의 가치와 보전을 포함시키자는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을 도입했고, 환경단체들을 국가계획 수립에 참여시키는 등 ‘거버넌스’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2006년 이명박 후보가 70년대식 토목공사인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하고, 2008년부터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상황은 크게 엉클어졌다. 환경단체들은 이에 저항해 온 힘을 쏟았고, 정부는 환경단체들을 반국가단체로 낙인찍고 관리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는 쳐부수어야 할 암 덩어리’라면서 임기 내내 환경규제를 무력화하는 데 앞장서 왔다.
21세기 들어 세계가 화학물질 관리를 위해, 온난화 극복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와 탈핵을 위해, 생활 속의 녹색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동안, 한국은 이들과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우리 사회가 부닥칠 위험을 대비하거나, 실현해야 할 새로운 가치를 준비하지 않은 채 시간을 낭비했다. 국가의 목표가 기업 이윤이고, 정부의 정책이 규제 완화인 이상한 나라로 퇴행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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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형철 환경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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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폭로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25년 전 두산 페놀 사고보다도 훨씬 더 야만적이고, 수백명의 사망자를 낸 유례없는 환경 참사다. 그런데도 환경부 장관은 사과를 거부하고, ‘기업과 개인의 문제로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91년과 같이 가해 기업과 부실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정부와 검찰도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누가 나서야 하는가? 우리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막고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저지하기 위해, 누가 주먹을 쥐어야 하는가? 그제 6월5일은 정부가 1996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는 ‘환경의 날’이었다.
염형철 환경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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