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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8 19:34 수정 : 2016.06.08 19:34

무하마드 알리가 세상을 떠났다. “나 때문에 울지 마라… 나는 괜찮다”며 떠났다고 한다. 20세기 최고의 복서,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운 사회운동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돈도 명성도 버렸던 영웅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알리는 복서로서 힘과 빠르기의 예술적인 조화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양심과 신념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결과를 오롯이 감내하여 우리에게 영감을 주었다. 무하마드 알리의 영웅적인 삶에 전세계에서 숱한 애도와 찬탄이 쏟아지고 있지만, 필자는 소소한 경험을 통해 그의 서민적인 모습을 회상하고 이를 높이 기리고 싶다. 그는 드높은 긍지와 신념을 지녔으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가가 배려와 존중을 베푸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이 그를 만난 것은 미국 시카고의 하이드파크 드럭스토어라는 가게에 금요일 저녁에 볼 가족 영화를 빌리러 갔을 때였다. 알리가 거기에 있었다. 알고 지내던 흑인 주인은 알리가 새 이슬람교 사원을 짓고 주변에 이를 알리러 들렀다고 말했다. 가게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알리는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으며 세 살짜리 둘째아이를 덥석 안아 목말을 태웠다. 그렇게 그는 함께 사진을 찍고, 떨리는 손으로 서명을 해주었다. 그에게는 챔피언의 위압감도, 파킨슨병의 수치감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이웃 아저씨의 배려와 호의만 가득했다.

그런데 알리가 안고 있던 둘째를 내려놓더니 그 떨리는 손으로 능숙하게 마술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왼손으로 주먹을 쥐고, 오른손으로 손수건을 구겨넣었다. 손수건을 다 넣은 후, 왼손 주먹을 오른손으로 두어번 쓰다듬고 나서 활짝 폈다. 아, 왼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손수건이 사라졌다! 세 살짜리 아이는 너무도 신기한지, “원스 모, 원스 모!”(한번 더!)를 외쳤다. 알리는 이제 여러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몇 번이고 천천히 손수건 마술을 되풀이했다.

경탄하는 관중의 모습에 흥이 났던지, 알리는 더 놀라운 마술을 보여주겠다고 아이에게 제안했다. 그는 평평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꼿꼿이 선 자세에서 자신의 발끝을 잘 보라고 말했다. 조금 뒤 알리는 그 자세에서 그대로 조용히 5인치 정도 공중으로 떠올랐다. 공중부양이라니! 이제는 초등학생인 첫째아이까지 합세하여 “원스 모, 원스 모!”를 외쳤다. 알리는 천천히 네다섯 번 공중부양을 반복했다. 알리의 작은 마술 쇼는 경탄과 환호 속에 끝났다. 우리 가족의 감사에 알리는 아이처럼 천진스러운 웃음과 어눌한 작별 인사로 답한 뒤 가게를 떠났다. 그 아름다운 경험을 우리의 기억에 깊이 새겨둔 채.

우리 가족이 그를 다시 본 것은 전세계에 생중계된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최종 주자로 나서 떨리는 손으로 성화에 점화하는 모습이었다. 이를 두고 어느 시인은 인류를 대신하여 파킨슨병과 싸우는 거대한 영웅의 모습이라고 노래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의 눈에는, 싸우기보다 파킨슨병을 받아들이는, 숨기기보다 진솔하게 드러내는, 너그럽고 진솔한, 그래서 더욱 위대한 사람의 모습으로 비쳤다. 그 너그러움과 진솔함으로 알리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에게 더 큰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장세진 인하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그런 알리가 32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알리의 목말을 탔던 아이가 30대 초반이 되었으니 그로서는 참으로 긴 투병 생활이었을 터이다. 그래도 이 아쉽고 슬픈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하리오. 그의 소망대로 그가 신과 함께하고 있기를! 그리고 그 영웅의 자취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더 너그러움과 진솔함으로 진보했기를!

장세진 인하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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