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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13 19:28 수정 : 2016.06.13 19:28


취약한 셀프검증! 세월호, 메르스, 옥시 가습기 살균제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 사건들을 관통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이다. 20대 국회에 다시 입성한 한 여당 중진 인사는 옥시 문제와 관련해 “지금 정부 입장에서는 책임을 인정할 (법적) 근거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업자들의 셀프검증에 맡겨둔 채 안전감시 체계 구축에 허술했으며, 국회가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던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 이런 셀프검증의 함정은 이들 세 가지 사건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대표적으로 원전 안전 문제는 셀프검증의 구조적인 취약성이 거듭 드러났음에도 방치돼 있는 분야다.

원전산업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부품 품질서류 위변조 비리 사태가 터진 직후인 2013년에 원전구매제도개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위원 중엔 원자력 품질 관리와 구매 입찰 경험자가 한 명도 없어서 처음부터 실효성 없는 ‘홍보성 정책’이란 비난이 높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정책이 만족스러웠는지 같은 해 7월에 ‘산업부 중심의 원전 관리감독체계 강화’를 주문했다. 여기에 맞춤한 ‘원전 관리감독법’도 제정됐다. 이후 산업부는 원전 품질서류를 제3자를 통해 검증한다면서 외국 기관에 용역입찰을 시행했지만, 원전구매 비리 문제로 퇴직한 직원이 검증 용역 기관의 수행자 명단에 들어 있는 사실이 국감에서 밝혀졌다. 이는 원전산업이 스스로는 개선할 수 없는 ‘셀프검증의 순환고리’ 안에 갇혀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안전성 관점에서 본 필자의 현장조사 결론은 ‘원전산업 진흥의 시각으로는 안전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진흥을 담당하는 산업부를 중심으로 안전 감독 체계를 강화하라는 박 대통령의 주문은 애초 달성 불가능한 목표였다. 안전규제 기관이 산업진흥 부처의 지원조직으로 남아 있을 경우 폐쇄적인 셀프검증만 반복되어 오히려 안전성을 역행시킬 우려가 크다.

지난해 9월 필자는 전남 영광 민관합동대책위의 결정으로 수년간 수행했던 한빛원전 전체에 대한 안전 조사를 마치고 700여개에 이르는 안전관련 지적사항들을 가려내어 발표했다. 하지만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답변은 제도권의 공식 책임자들에게 이 문제를 맡겨달라는 것이었다. 이후 올 3월 한수원은 안전·안심 연구·개발에 2천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 하지만 막상 원전 현장의 안전 문제인 700여개 지적사항들은 어떻게 처리할지 지금껏 투명한 설명도 없는 상황이다.

프랑스는 원전산업 진흥에 누구 못지않게 적극적인 나라였지만 일찌감치 정부 행정부처를 마냥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상·하원 36명으로 구성된 과학기술선택평가국(OPECST)을 의회에 두고 1980년대부터 에너지·환경·신기술·생명 분야의 과학기술과 관련한 정부 정책의 적절성, 안전성, 투자위험성 등을 과학적으로 상시 감시하는 평가체계를 마련했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이렇게 감시체계를 강화한다고 해서 정부 행정업무를 마비시키거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게 아니다. 원전 부품 서류 위변조 문제 하나로 발생한 손실이 2조4500여억원에 이르렀던 점을 고려하면 제대로 된 감시체계의 마련은 오히려 산업의 경제성을 높여준다. 이제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의 기대를 안고 20대 국회가 출발했다. 새 국회는 안전과 생명, 환경 등에 관한 정부 기능과 정책을 과학적으로 상시 감시하고 평가할 법과 제도를 서둘러 마련하여 진정 ‘일하는 국회’가 되길 희망한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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