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결국 자민당이 승리했다.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압승이 아닌 대승이었다. 대승이지만 낙승은 아니었다. 보기에 따라 신승이기도 하다. 역시 민진당이 패배했다.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패가 아닌 부진이었다. 부진했지만 완패는 아니었다. 보기에 따라 석패이기도 하다. 선거 결과가 판명이 난 지난 일요일 밤 아베 신조 총리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민진당의 패인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해주었다. 첫째는 민진당이 공산당과 공조한 것이다. 그게 민진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이탈시켰다는 지적이다. 둘째는 민진당이 쓸데없이 개헌을 쟁점화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국민들이 아베노믹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야당의 한계를 간파했다는 것이다. 친절하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아베 총리는 자신의 두려움을 친절함으로 가장하는 노회함을 보여주었다. 아베 총리의 파안대소가 그 속을 간파하게 해주고 있다. 압승이 예견된다는 일반의 예측과는 달리 그가 그만큼 몰려 있었다는 것을 그 표정이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솔직한 사람이다. 야권공조 때문에 애먹었고, 개헌 쟁점화 전략에 말려들까봐 노심초사했다는 고백처럼 들린다. 오카다 가쓰야 민진당 대표는 이제 패배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패배 속에 역공의 가능성을 심은 패장으로 사라질 것이고, 역공의 기회가 오면 재기할 것이다. 그는 야권공조로 자민당에 진검승부를 강요했고, 개헌 저지를 밀어붙여 개헌 문제에서 슬슬 도망치는 아베의 여우 꼬리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일요일 밤, 패배의 원인을 묻는 뉴스 캐스터의 질문에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되물었다. 무엇이 패배냐는 것이다. 그는 어리숙하게 우직하다. 패배로 생각하지 않는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압승이 예견되었던 선거에서 아베는 줄곧 진두지휘를 하며 전국의 선거구를 돌아다녔다. 대승이긴 하지만 겨우 지킨 승리였다. 개헌 가능성이 회자된 선거에서 아베는 줄곧 개헌이 현안이 아님을 강조했다. 개헌을 쟁점화하면 단독 과반의 확보도 어렵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아베는 개헌의 돌파구를 여는 3분의 2 의석을 확보했지만, 그것은 개헌이 아닌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라는 채찍질이 만든 의석이다. 아베는 당분간 아베노믹스의 성공에 진력해야 하며 개헌 명목을 쌓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일본의 리버럴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 개헌 저지를 단일쟁점으로 삼아 단합하여 최대한의 시간을 벌어놓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선거 결과를 두고 개헌에 조준한 전망들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개헌은 여전히 아직 먼 길이다. 그렇다고 이제 더 이상 느긋하게 다음 선거에서 개헌 저지선을 기대하고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이제 일본은 개헌의 길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렇다고 벌써 달리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폭주의 가능성이 없지 않다. 폭주를 막으려면 말을 걸든 손을 잡든 해야 한다. 무엇으로 말을 걸고, 어떤 손을 내밀어야 하는가. 이 지역에서 폭주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동아시아 평화의 파괴자들은 모든 문제를 국가로 환원한다. 국가안보를 지상의 가치로 놓는다. 그럼으로써 평화의 건설자들을 분단한다. 동아시아에서 평화를 건설하는 자는 모든 문제가 동아시아적 수준에서 존재함을 드러내고, 이를 동아시아적 수준에서 풀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 일본의 문제가 동아시아의 문제임을 설득하고, 일본에 동아시아로 인도하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한국이 동아시아가 되는 일이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
칼럼 |
[기고] 일본 2016년 여름 / 남기정 |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결국 자민당이 승리했다.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압승이 아닌 대승이었다. 대승이지만 낙승은 아니었다. 보기에 따라 신승이기도 하다. 역시 민진당이 패배했다.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패가 아닌 부진이었다. 부진했지만 완패는 아니었다. 보기에 따라 석패이기도 하다. 선거 결과가 판명이 난 지난 일요일 밤 아베 신조 총리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민진당의 패인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해주었다. 첫째는 민진당이 공산당과 공조한 것이다. 그게 민진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이탈시켰다는 지적이다. 둘째는 민진당이 쓸데없이 개헌을 쟁점화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국민들이 아베노믹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야당의 한계를 간파했다는 것이다. 친절하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아베 총리는 자신의 두려움을 친절함으로 가장하는 노회함을 보여주었다. 아베 총리의 파안대소가 그 속을 간파하게 해주고 있다. 압승이 예견된다는 일반의 예측과는 달리 그가 그만큼 몰려 있었다는 것을 그 표정이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솔직한 사람이다. 야권공조 때문에 애먹었고, 개헌 쟁점화 전략에 말려들까봐 노심초사했다는 고백처럼 들린다. 오카다 가쓰야 민진당 대표는 이제 패배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패배 속에 역공의 가능성을 심은 패장으로 사라질 것이고, 역공의 기회가 오면 재기할 것이다. 그는 야권공조로 자민당에 진검승부를 강요했고, 개헌 저지를 밀어붙여 개헌 문제에서 슬슬 도망치는 아베의 여우 꼬리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일요일 밤, 패배의 원인을 묻는 뉴스 캐스터의 질문에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되물었다. 무엇이 패배냐는 것이다. 그는 어리숙하게 우직하다. 패배로 생각하지 않는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압승이 예견되었던 선거에서 아베는 줄곧 진두지휘를 하며 전국의 선거구를 돌아다녔다. 대승이긴 하지만 겨우 지킨 승리였다. 개헌 가능성이 회자된 선거에서 아베는 줄곧 개헌이 현안이 아님을 강조했다. 개헌을 쟁점화하면 단독 과반의 확보도 어렵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아베는 개헌의 돌파구를 여는 3분의 2 의석을 확보했지만, 그것은 개헌이 아닌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라는 채찍질이 만든 의석이다. 아베는 당분간 아베노믹스의 성공에 진력해야 하며 개헌 명목을 쌓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일본의 리버럴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 개헌 저지를 단일쟁점으로 삼아 단합하여 최대한의 시간을 벌어놓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선거 결과를 두고 개헌에 조준한 전망들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개헌은 여전히 아직 먼 길이다. 그렇다고 이제 더 이상 느긋하게 다음 선거에서 개헌 저지선을 기대하고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이제 일본은 개헌의 길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렇다고 벌써 달리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폭주의 가능성이 없지 않다. 폭주를 막으려면 말을 걸든 손을 잡든 해야 한다. 무엇으로 말을 걸고, 어떤 손을 내밀어야 하는가. 이 지역에서 폭주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동아시아 평화의 파괴자들은 모든 문제를 국가로 환원한다. 국가안보를 지상의 가치로 놓는다. 그럼으로써 평화의 건설자들을 분단한다. 동아시아에서 평화를 건설하는 자는 모든 문제가 동아시아적 수준에서 존재함을 드러내고, 이를 동아시아적 수준에서 풀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 일본의 문제가 동아시아의 문제임을 설득하고, 일본에 동아시아로 인도하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한국이 동아시아가 되는 일이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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