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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28 18:29 수정 : 2016.07.28 20:22

은종복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1980년대 대학 앞에는 인문사회과학책방이 한두 개씩 있었다.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서울에는 그날이오면, 풀무질, 인서점만 남았고, 10년 앞서는 레드북스, 길담서원, 책방이음이 새로 문을 열었다.

나는 얼마 전 프랑스에 다녀왔다. 도시 골목마다 책방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프랑스는 완전도서정가제를 20년도 전부터 해오고 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책방을 새로 열려고 하면 나라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10억원을 10년 거치, 10년 상환, 무이자로 빌려준다. 책방을 해서 돈을 많이 벌거나 건물을 사는 일은 없지만 망하는 일도 없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출판사가 인터넷서점에 책을 더 싸게 주지만 프랑스는 반대로 동네책방에는 40% 이익을 주고 인터넷서점에는 20% 이익을 준다.

내 사촌형은 로봇 만드는 회사의 대표다. 그 회사에서 로봇을 만드는 계획을 짜면 나라에서 10억원을 준다. 그 돈 가운데 1억원만 경비지출서를 내고 나머지 돈은 연구개발비로 쓸 수 있다. 책방은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 500만원을 받으려면 하늘의 별 따기다. 이러니 동네책방이 살 수 있겠는가.

요즘 독립책방이라고 동네에 10평 남짓한 작은 책방들이 생기고 있다. 그 책방들은 대부분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하는 일이 따로 있고 부업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대부분 혼자 일을 하는데 책방 일꾼이 좋아하는 책들만 갖추어 놓는다. 책이 몇천권도 되지 않는다. 셋째,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닌 골목 깊숙한 곳에 있다. 돈이 없어서 월세가 적은 곳에 연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나 대학 앞에는 대형서점이나 알라딘중고서점, 100평이 넘는 중형서점이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초중고 참고서, 잡지, 전집류, 만화책 같이 모든 책을 판다. 음반, 커피, 술, 가방, 문구류도 판다. 이런 백화점식 판매 방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책방은 책방만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에 있는 대학 앞에는 새책방도 대여섯개씩 있고 헌책방도 그만큼 있다. 새책방들은 서점마다 다르다. 어느 곳은 문학, 어느 곳은 음악 미술, 어느 곳은 철학, 어느 곳은 사회과학 책들을 다룬다. 우리나라는 언제 이럴 수 있을까. 책방을 하려는 사람들이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나라의 정책 입안자들이 책을 다른 공산품과 똑같이 다루는 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지난 6월27일 김진철 서울시의원이 낸 ‘서울특별시 지역서점 활성화에 관한 조례’가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씨가 말라가는 동네책방을 살려야 한다는 깨달음은 반갑다. 하지만 조례안을 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특히 두 가지가 없어서 참 아쉽다. 하나는 완전도서정가제를 이루려는 실천 방안이 없다. 또 하나는 지역서점위원회을 만드는 데 오랫동안 동네책방을 꾸렸던 사람이 들어가 있지 않다. 이러니 동네책방을 살리려는 일도 탁상공론에 빠지기 십상이다. 지지난해 서울시장과 서울시 교육감은 초·중·고교 도서관에서 책을 살 때 1천만원 미만이면 동네책방에서 사라고 했다. 그 말을 따르는 학교는 별로 없다. 여전히 대형 인터넷서점이나 유령서점이 입찰해서 납품을 한다. 설사 동네책방이 납품을 하더라도 10% 할인에다 5% 간접할인까지 똑같이 요구한다. 이렇게 해서는 동네책방이 살 수 없다. 이런 아픔을 겪고 있는 동네책방 일꾼이 지역서점위원회에 들어가야 한다.

대학 앞의 작은 책방과 동네책방이 살아야 슬기를 키우고 슬기를 나눌 수 있는 힘이 자란다. 따뜻한 정이 흐르는 마을은 동네책방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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