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12.15 18:20 수정 : 2016.12.15 20:34

설문원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부교수

모든 것이 기록에서 시작하였다. 태블릿 피시의 파일, 업무수첩, 통화 녹음파일은 모두 어떤 행위가 있었다는 증거였다. 기록은 사건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증거이기도 한다. 이러한 기록의 가치 때문에 국가운영과 관련된 모든 공적 행위를 기록으로 남기도록 법률로 정하고 있으며, 국정의 최고기관인 ‘대통령’의 기록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생산·관리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 기록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와 국정의 과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참여민주주의의 토대이며 나아가 대한민국 역사의 엄중한 사초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어디에 있을까? 과거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에는 업무보고와 의사결정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시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한 기록도 이러한 시스템에서 생산된 것들이며 여기에는 각 사안에 대한 대통령 지시사항도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지시사항 자체가 기록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업무 지시는 대부분 전화통화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공식문서보다는 대통령의 전화 지시를 받아 적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17권,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파일 등 비공식 기록에 더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국정이 파행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대통령 기록의 생산체계도 망가졌을 개연성이 크다. 현재 관행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실제’ 통치활동을 훗날 대통령기록관에서 찾기 어려울 것이다. 시스템에 등록된 기록을 중심으로 대통령 기록을 이관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닉슨 대통령이 불법 도청으로 생산한 녹음테이프는 어디에 있을까? 미국 국가기록관리청이 입수하였다가 지금은 ‘닉슨 대통령 기록관’에 있다. 닉슨 대통령이 비밀리에 백악관의 여러 장소에서 녹음한 대화와 전화 도청 내용이 담긴, 수천 시간에 달하는 테이프. 공식 기록도 아니고 게다가 불법적으로 생산된 기록이지만 대통령의 국정 행태를 드러내는 역사적 기록이기 때문에 대통령 기록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이나 정 비서관의 전화 녹음파일은 대통령 직무수행의 일단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통령 기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이 등록되지 않은 기록은 수사 목적의 압수나 특별 조치가 없는 한 급격히 멸실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지금 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특수한 상황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 및 대통령의 보좌, 경호, 자문기관들의 기록은 모두 수사와 관련되어 있다. 수사나 감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관련 기록은 보존기간 만료 등을 이유로 폐기할 수 없다. 검찰은 대통령 보좌 및 경호기관 등이 일체의 기록 폐기를 중지하도록 하고, 특히 시스템에 등록하지 않은 채 파기하지 못하도록 청와대 업무용 피시의 하드디스크 파일과 이메일에 대한 폐기 중지 명령을 내려야 한다. 수사가 끝날 때까지 아날로그 기록은 물론 전자기록에 대한 폐기와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 봉인 상태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법률만으로는 이를 추진하기 어렵다.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기록의 수집과 보존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통치의 진실을 알 수 있는 기록을 수집하고, 유례없는 국정농단 사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시민을 광장으로 불러낸 사건의 기록을 광범위하게 수집·보존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검찰이 확보한 이른바 ‘비선실세’의 기록은 물론 지금도 은밀히 파기되고 있을지 모를 각급 공공기관, 민간의 기록이 모두 포함될 것이다. 대부분 휘발성이 높은 전자기록인 만큼 시급하게 수집해야 하며, 수사와 판결이 완료된 이후에는 관련 기록을 최대한 공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훗날 민주주의의 학습장이자 너무나 빨리 망각하는 시대를 위한 소중한 비망록이 될 것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