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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30 18:19 수정 : 2017.03.30 21:12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시인

한국의 농부들은 ‘쌔가 빠지게’ 농사를 짓는다. 독일의 농부들도 ‘뼛골 빠지게’ 농사를 짓는다. 한국의 농부나 독일의 농부나 농사를 지어서는 먹고살기 어렵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농업의 속성, 농부의 운명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독일의 농부들은 자식에게 농사를 물려준다. 자식들은 당연하다는 듯 중학교부터 농업학교를 다닌다. 가족농으로 대를 잇는 독일 농부들은 “농부가 농사를 게을리하면 농촌 경관이 어떻게 망가지나 보라”며 당당히 대정부 시위를 벌인다. 65세에 은퇴해 죽어서까지 ‘자랑스러운 농부’였다는 사실을 묘비에 굳이 새긴다.

한국의 농부들은 이토록 초라하고 불행한데, 독일의 농부들은 왜 이토록 당당하고 행복한가. 대체 독일 농부들의 그 자존감과 자부심의 밑과 끝은 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이유와 비결은 단순명쾌하다. 독일의 농부들은 혼자가 아니다. 직불금 소득을 보전받는 가족농들이 협동조합으로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며 농업회의소로 함께 자조하고 자치한다. 국가와 정부가 농업과 농촌을 챙기고, 국민들은 농부의 생활을 걱정하고 지켜주는 ‘농부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독일이 ‘농부의 나라’를 이룬 열쇠는 단연 직불금이다. 사실상 농민 기본소득의 효과를 발휘한다. 농가소득의 60%가 넘는 수준이다. 여기에 조건 불리, 친환경농업, 청년, 소농 여부에 따라 직불금이 추가로 가산, 증액 지급된다. 이러한 직불금 규모는 유럽연합(EU) 농정예산의 70%가 넘는다. 사실상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CAP)의 핵심정책이다. 토건시설 위주의 간접보조사업에 치우친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한국의 농정예산 집행구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농가에 직접 지급하니 예산이 중간에 낭비되거나 유용될 여지 자체가 차단돼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 크다.

직불금 정책은 농부들이 “국가와 정부가 나를 챙겨주고 있다”고 느끼는 고마움과 신뢰감의 효과로 나타난다. 국가와 정부를 믿는 농부들은 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엄수한다. 농민끼리의 협동의 약속과 국민들과 연대의 합의도 잊지 않는다. 결국 직불금 같은 탄탄한 사회안전망은 신뢰, 협동, 연대, 규범, 네트워크 같은 사회적 자본이 넘쳐나는 민주적 시민사회, 법치 공화국을 이루는 밑바탕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독일 등 유럽연합 농정의 핵심 기조와 추구 가치는 ‘돈 버는 농업’보다 ‘사람 사는 농촌’에 무게를 두고 있다. 농업과 농촌의 숙제는 더 이상 농업경제학만으로는 풀 수 없다는 냉정한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촌사회학, 사회복지학의 해법이 더 유용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국민의 2% 남짓 되는 독일의 농부들은 아무나 될 수 없다. 함부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11살 아이들이 중학교부터 농업학교에 들어가 농업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농업 마이스터 과정을 수료하고 농부자격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국민의 먹거리, 생명을 책임지는 성직 같은 공익노동을 아무에게나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독일 농부들은 혼자 욕심내거나 고립되지 않는다. 서로 협동하고 연대한다. 협동조합형 농업경영체, 농업회의소를 함께 꾸리며 공동체농업, 사회적 농업을 지향한다.

독일의 농부는 문화경관 직불금, 가족농, 농업학교, 농업협동조합, 농업회의소, 유기농업, 사회안전망 등으로 국가와 정부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는다. 국민으로부터 사회적 합의와 지지를 받으며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부의 나라’를 지키며 살아간다. 독일의 농부처럼 대접하면 우리도 농민과 국민이 동등한 ‘농부의 나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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