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 <쿠리어저널>의 마크 쿰스라는 기자는 켄터키주 루이빌의 자랑스러운 16가지를 소개하면서 그 아홉 번째로 미국 점자 인쇄소(APH·American Printing House for the Blind)를 들었다. APH는 1858년에 설립된 시각장애인을 위한 출판사로 내년이면 160주년이 된다. 민간기관인데, 미국 정부는 설립 이후 매년 연방 예산으로 이 기관을 지원하여 미 전역에 있는 시각장애학생들을 위한 점자교과서, 확대교과서, 소리도서를 제작·공급하고 있다. 1858년이면 남북전쟁이 발생하기 전이다. 2008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시행된 이래 시각장애학생들은 맹학교 아닌 일반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시각장애학생의 학교 선택권이 확대된 후에도 점자교과서는 맹학교용으로만 제공돼 왔다. 그 결과 일반학교에 진학하는 시각장애학생의 경우 필요한 점자교과서를 제공받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저시력학생을 포함해 점자교과서를 필요로 하는 시각장애학생들은 전국적으로 몇천 명 수준이다. 현재 이들을 위한 교과서 예산이 각 지자체별로 편성돼 있다 보니 각 지방교육청이 점자교과서를 제작·공급한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다종, 소량의 책을 한 기관이 맡는 것도 쉽지 않은 마당에 다수의 기관이 제작한다는 것은 비효율의 극치다. 다행히 2013년부터 점자교과서 발행·공급 업무는 각 교육청에서 교육부 소속 국립특수교육원에 위탁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사업수행자와 예산집행자가 분리돼 있어 시각장애학생들의 요구에 신속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015년 필자와 함께 ‘계란과 바위’라는 시각장애 인권 모임은 학령기 시각장애학생들이 교과서를 제때 지급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다행히 교육부는 그간 정책을 바꿔 지자체에 분산된 이 업무를 직접 챙기고 있다. 국립특수교육원의 적극적 대처로 눈물조차 말라버리고 속으로 삭여야 했던 시각장애학생들과 부모들은 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도 교육부 직제규정이 개정되지 않아 담당자 교체나 정책 변화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데 있다. 하루속히 시각장애학생용 대체교과서 발행·공급을 국립특수교육원이 맡도록 교육부 직제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실질적인 사업주체가 국립특수교육원이라는 점과 장애학생용 교과서 예산의 특성을 고려해 중앙정부 예산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 시·도 교육청 간 재정 여건 차이로 지역별로 장애학생들이 필요한 대체교과서를 충분히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장애학생의 교과서 접근권을 좀더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장애학생교수학습지원센터와 같은 전문 부서를 국립특수교육원에 설치하고 시각장애 외 다양한 유형의 장애 학생들에게 적절한 대체교과서를 제때 제공해야 한다. 우리보다 훨씬 땅이 넓고 인구도 많으며 교과서도 다양한 미국은 남북전쟁 전에 이미 연방정부 예산으로 APH를 통해 시각장애학생들에게 점자교과서 등 대체자료를 제때 공급하고 있다. 이제 치열했던 선거가 끝나고 새 대통령은 국민을 낮은 자세로 섬기겠다는 매우 인상적인 취임사를 남겼다. 공부하고 싶어도 교과서를 제때 받지 못해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 시각장애학생들과 가슴 아파하고 있는 부모들의 마음을 새 정부가 쓰다듬어 주었으면 한다. 교과서를 제때 공급해달라는 이들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는 데는 엄청난 예산이 드는 것도 아니고, 단지 직제규정과 예산편성에 관한 지침 변경만으로도 가능하다. 지나칠 수 있는 이들의 작은 외침이 새 대통령에게 전달됐으면 한다.
칼럼 |
[기고] 낮은 대통령과 점자 교과서 / 남형두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 <쿠리어저널>의 마크 쿰스라는 기자는 켄터키주 루이빌의 자랑스러운 16가지를 소개하면서 그 아홉 번째로 미국 점자 인쇄소(APH·American Printing House for the Blind)를 들었다. APH는 1858년에 설립된 시각장애인을 위한 출판사로 내년이면 160주년이 된다. 민간기관인데, 미국 정부는 설립 이후 매년 연방 예산으로 이 기관을 지원하여 미 전역에 있는 시각장애학생들을 위한 점자교과서, 확대교과서, 소리도서를 제작·공급하고 있다. 1858년이면 남북전쟁이 발생하기 전이다. 2008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시행된 이래 시각장애학생들은 맹학교 아닌 일반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시각장애학생의 학교 선택권이 확대된 후에도 점자교과서는 맹학교용으로만 제공돼 왔다. 그 결과 일반학교에 진학하는 시각장애학생의 경우 필요한 점자교과서를 제공받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저시력학생을 포함해 점자교과서를 필요로 하는 시각장애학생들은 전국적으로 몇천 명 수준이다. 현재 이들을 위한 교과서 예산이 각 지자체별로 편성돼 있다 보니 각 지방교육청이 점자교과서를 제작·공급한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다종, 소량의 책을 한 기관이 맡는 것도 쉽지 않은 마당에 다수의 기관이 제작한다는 것은 비효율의 극치다. 다행히 2013년부터 점자교과서 발행·공급 업무는 각 교육청에서 교육부 소속 국립특수교육원에 위탁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사업수행자와 예산집행자가 분리돼 있어 시각장애학생들의 요구에 신속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015년 필자와 함께 ‘계란과 바위’라는 시각장애 인권 모임은 학령기 시각장애학생들이 교과서를 제때 지급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다행히 교육부는 그간 정책을 바꿔 지자체에 분산된 이 업무를 직접 챙기고 있다. 국립특수교육원의 적극적 대처로 눈물조차 말라버리고 속으로 삭여야 했던 시각장애학생들과 부모들은 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도 교육부 직제규정이 개정되지 않아 담당자 교체나 정책 변화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데 있다. 하루속히 시각장애학생용 대체교과서 발행·공급을 국립특수교육원이 맡도록 교육부 직제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실질적인 사업주체가 국립특수교육원이라는 점과 장애학생용 교과서 예산의 특성을 고려해 중앙정부 예산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 시·도 교육청 간 재정 여건 차이로 지역별로 장애학생들이 필요한 대체교과서를 충분히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장애학생의 교과서 접근권을 좀더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장애학생교수학습지원센터와 같은 전문 부서를 국립특수교육원에 설치하고 시각장애 외 다양한 유형의 장애 학생들에게 적절한 대체교과서를 제때 제공해야 한다. 우리보다 훨씬 땅이 넓고 인구도 많으며 교과서도 다양한 미국은 남북전쟁 전에 이미 연방정부 예산으로 APH를 통해 시각장애학생들에게 점자교과서 등 대체자료를 제때 공급하고 있다. 이제 치열했던 선거가 끝나고 새 대통령은 국민을 낮은 자세로 섬기겠다는 매우 인상적인 취임사를 남겼다. 공부하고 싶어도 교과서를 제때 받지 못해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 시각장애학생들과 가슴 아파하고 있는 부모들의 마음을 새 정부가 쓰다듬어 주었으면 한다. 교과서를 제때 공급해달라는 이들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는 데는 엄청난 예산이 드는 것도 아니고, 단지 직제규정과 예산편성에 관한 지침 변경만으로도 가능하다. 지나칠 수 있는 이들의 작은 외침이 새 대통령에게 전달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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