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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01 18:12 수정 : 2017.06.01 20:31

우석훈
경제학자

9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이 좋아지기를 바라면서 저도 편지 형식으로 한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작년 봄, 민주당 최민식 실장과 함께 양산 집을 찾아뵌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해주신 점심도 맛있게 먹었고, 폐렴으로 입원한 네 살짜리 둘째 아이 얘기를 한 것도 기억이 나네요. 짧은 시간이라 많은 얘기를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대선 승리,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몇 년 전 김해 도서관이 주관하는 행사에 갔다가 권양숙 여사님과 꽤 길게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참여정부에서 여사님이 하셨던 도서관과 관련된 일들을 진짜로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많은 데에서 퇴임 후에도 계속 책을 보내주어서 적적하던 시간에 꽤 위로가 되었다는 얘기가 뇌리에 남았습니다. 후임자에게도 그 얘기를 하셨는데, 도서관 대신 한식 세계화 사업을 하셨다는 것도 그때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실무진이 ‘여사님 관심사업’으로 부르는 일이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미테랑 시절, 다니엘 미테랑이 엘리제궁에 따라가지 않고 인권 사업을 했던 것은 유명한 일입니다.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프랑스 국민들은 진짜로 미테랑 여사를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에도 일본 정부가 직접 하기 어려운 일들을 ‘천황님 관심사업’으로 추진합니다. 영국도 왕실에서 직접 챙기는 일들이 있구요. 다 필요하니까 이런 일들을 합니다.

저는 여사님께서, 예전 참여정부 시절에 영부인이 직접 챙기던 책 관련된 일들을 맡아주시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수 정권 9년, 책 시장은 매년 더 힘들다고 하면서 점점 더 어려워지고만 있습니다. 도서관을 만들면 정작 책 구입비 예산이 부족한 게 우리의 상황입니다. 학교에 사서교사 제도는 만들었는데, 9년간 거의 채용하지 않아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최근의 위기는 더 심각해져서, 인세로 먹고사는 동화 작가나 소설 작가 중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가들 사이에 팽배합니다.

사회적 의제를 제시하는 기능은 티브이(TV)도 있고, 신문도 있고,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도 있습니다. 에스엔에스는 정말로 단기 주제를 다루고, 티브이나 신문도 몇 년씩 걸리는 장기 기획은 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따져보니까 책 한 권을 준비해서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데 평균 3년이 걸리더군요. 그만큼 장기적인 안목의 지식을 만드는 데에 책이 갖는 고유의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식경제와 문화경제의 핵심 기능이기도 하구요.

보통 책의 저자나 작가들이 빠르면 20대, 늦으면 30대에 데뷔합니다. 저도 30대 중반에 데뷔했고, 약간 늦은 편이었습니다. 제가 데뷔할 때만 해도 책으로 유명해져서 다른 일을 하는 1차 시장의 위치에 책이 있었습니다. 보수 정권 9년, 유명한 사람이 책을 내는 2차 시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젊은 학자나 저술가들이 책을 쓰지 않는 게 상식이 되었습니다. 긴 호흡의 지식이 점점 더 등장하기 어렵죠.

일본에는 ‘저술가'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보통은 석사 정도의 학위로 전문적으로 한 분야를 파고드는 사람입니다. 한국에는 젊은 교수들도 한 분야를 파고들지 않습니다. 정부 연구과제 따려다 보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책을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는 사회에서 문화·경제적인 발전은 어렵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를 위해서, 여사님께서 예전 권양숙 여사님께서 하셨던 그 일을 ‘여사님 관심사업’으로 다시 해주시면 고맙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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