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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24 18:43 수정 : 2017.08.24 20:31

권나현
명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좋은 취지의 법개정 제안이 행정관료들의 손을 거치며 개악의 길을 걷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공공도서관 사서배치기준 시행령 개정 역시 이런 사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지난 20년간 지자체는 앞다투어 공공도서관을 건립해왔다. 그러나 600평 규모에 장서 4만권을 소장한 도서관에 사서는 단 1명뿐인, 그야말로 “문만 열고 있는 도서관”이 전국에 허다하다. 지난 2월 당시 도종환 의원은 법적 사서배치기준을 무시한 공공도서관이 78.3%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양적 팽창보다 기존 시설의 질적 향상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도서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최근 문체부가 내놓은 사서배치기준 시행령 개정안은 이 취지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으로,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문체부 안에 따르면 “등록시 최소 사서 3명”이라는 배치기준만 충족하면 끝이다. 도서관 규모를 반영하는 기존의 증원기준조차 삭제되어, 대형도서관도 사서 3명만 배치하면 문제없게 된다. 현재 18.2%에 불과한 사서배치율이 개정안을 적용하면 100%를 넘게 되므로 심각한 착시를 일으킨다. 또 2022년까지 도서관 500개를 추가 건립한다는 문체부 계획도 현 인원에 소수 증원만으로 추진할 수 있다. 공공 정보서비스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명백한 개악안이다.

개정안은 문화생활 향유권을 국민기본권으로 파악하고 도서관을 그 핵심 기반시설로 이해하는 현 정부의 문화정책에 역행한다. 주무부서가 변화된 정책기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지자체장들이 도서관 건립을 단순 토목공사로 이해해 인적 투자를 도외시하는 현실과도 상통한다. 자원봉사자나 사회복무요원, 기간제 인력이 책 정리만 잘하면 된다는 후진적 인식이 깔려 있다.

사서는 지역의 문화수요를 읽고 양질의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서관의 핵심 역량이다. 문화선진국들은 그 역량 계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 그 열매는 시민 모두가 고루 향유한다. 서비스는 독서에 국한되지 않는다. 런던 시내 한 공공도서관은 하루 평균 시민 190명에게 취업, 창업, 경영 관련 정보서비스를 제공한다. 뉴욕 공공도서관 역시 지역 주민을 위한 원스톱 구직정보 사이트와 소상공인 자료센터를 구축하고, 그 지역의 은퇴 경영자와 연결해 멘토링을 제공한다. 미국에서는 최근 경기침체기에 도서관 이용률이 오히려 증가했다. 신뢰성 높은 고용정보 및 재취업 훈련 정보, 정부의 각종 실업 및 복지 관련 정보를 개개인의 필요에 맞춰 제공해주어서다. 대다수 우리 국민은 이런 서비스가 사서 본연의 일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국제 최소기준의 3분의 1에도 미달하는 현 사서배치 실태로는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디지털정보활용능력을 교육하고, 믿을만한 건강정보를 찾아주는 사서를 만나기 어렵다.

2016년 말 현재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에 등록된 전체 공공도서관 인력 43만5204명 중에서 정규직 사서는 단 4480명으로 1.03%에 불과하다. 도서관의 질적 성장과 시민들의 정보복지 수혜를 가로막는 온갖 기형적 고용 구조와 왜곡된 자원봉사인력 활용이 사서 배치의 현주소다. 시행령 개정안에 반발하는 도서관계 목소리를 밥그릇 싸움으로 호도하면 안 된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사회적 투자이며 정보복지라는 관점에서 기존 도서관의 사서 역량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시행령은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이 “도서관 발전을 통해 문화선진국(을) 실현”하려는 도종환 신임 문체부 장관의 원래 법개정 취지에도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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