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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21 18:22 수정 : 2017.09.21 20:25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북한 완전 파괴’라는 ‘말폭탄’을 던진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떠올렸을 것이다. 물론 그의 발언은 다짜고짜 북한을 공격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다. ‘완전 파괴’ 앞에는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 조건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는 있다. 하지만 미국은 ‘방어’ 전쟁만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예방’ 전쟁도 고려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건 북한도 마찬가지다.

일단 트럼프의 언행은 ‘미친 자의 이론’에 따른 것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라는 공포심을 상대방에게 주입시켜, ‘내가 두려우면 내가 하자는 대로 해!’라는 강압 외교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상대방은 핵미사일로 미국과 맞서겠다는 북한, 그 북한과 경제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 않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북핵과 미국의 말폭탄’이라는 이중 공포에 노출된 한국을 두루 겨냥하고 있다. 그러곤 북한엔 ‘핵이냐 생존이냐’, 중국과 러시아엔 ‘북한과의 무역 단절이냐 한반도 전쟁이냐’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려고 한다. 그리고 정작 동맹국인 한국을 상대로는 돈벌이를 극대화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트럼프의 말폭탄에 리수용 북한 외무상은 “개 짖는 소리로 우리를 놀라게 하려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개꿈”이라고 받아쳤다. 이 발언 속에는 ‘짖는 개한테 물리지 않으려면 몽둥이를 확실히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결기가 내포돼 있다. 유감스럽게도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 미국 지도자의 ‘말폭탄’이 북한의 ‘핵폭탄’ 생산에 거름이 되고 있는 셈이다. ‘미친 자의 이론’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중국과 러시아가 트럼프의 발언에 움찔해 대북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리도 만무하다.

그런데 한국의 처지는 다르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극단적인 선택을 예방해야 한다는 부담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바로 그 부담감을 이용하려고 한다. 공포 마케팅을 통해 무기 판매를 최대한 늘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하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현금자동지급기(ATM)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이게 차악이라면 최악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외교적 해결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게 실패하면 군사 옵션을 강구할 것이다”라고 줄곧 밝혀왔다. 문제는 조건부 대화 고수, 대북 제재 및 무력시위 강화, 중국 책임론 등으로 이뤄진 외교적 접근이 이미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를 예고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럼 ‘미친 자’를 자처하는 트럼프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일단 ‘공미증’(恐美症)에서 벗어나야 한다. 트럼프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이고, 한국을 길들이는 유력한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국발 ‘전쟁불사론’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평화적 해결”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외교적 접근을 새롭게 짜고는 트럼프와 얼굴을 붉히면서라도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이를 토대로 비핵화의 문을 연다면, 트럼프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우는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도 촉구해야 한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이게 문재인 대통령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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