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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28 17:53 수정 : 2017.09.28 19:38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촛불청소년인권법 제정연대 공동대표

촛불혁명의 당당한 주역이자 동료였던 청소년들이 청소년참정권과 청소년인권법의 깃발 아래 뭉쳤다. 지난 26일 ‘촛불청소년인권법 제정연대’ 출범식장에 나붙은 재치 만점 구호들이 청소년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박근혜 뽑은 어른들 불안해서 못 믿겠다. 청소년도 참정권을!’ ‘청소년참정권, 미래를 선택할 권리!’ ‘탄핵도 같이, 선거도 같이!’ 청소년들에겐 언제나 세상을 보는 그들만의 눈높이와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우리 사회는 이 진실을 지난겨울 생생하게 확인했다. 다들 인정하듯이 촛불집회에서 가장 돋보인 연사는 단연 중고교생이었다. 누구 하나 움츠러들지 않았고 누구 하나 우쭐거리지 않았다. 중고교생 연사가 세상의 부조리와 부정의를 고발할 때 시민들은 부끄럽고 미안했다. 동시에 당당하고 성숙한 모습에 환호하며 감탄했다. 그때마다 청소년을 너무나 모르고 얕잡아보았다는 자각과 반성이 이심전심으로 물결쳤다. 역시 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은 아직도 교문 앞에만 오면 멈칫거리고 비틀거린다. 중고등학교에선 여전히 학생의 정치 관심과 사회참여를 불온시하고 생활지도 대상으로 본다.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며 시국 대자보나 집회 참가를 금기시한다. 경제교육, 금융교육은 괜찮아도 정치교육, 노동교육은 낯설어한다. 사회현안 토론교육은 민감하다고 한사코 피한다. 이것이 민주공화국의 학교냐고 청소년들이 묻는다. 이런 학교가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 있냐고 청소년들이 묻는다.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촛불혁명 이후에도 학교 민주주의와 학생인권은 답보 상태다. 학생인권조례는 여전히 서울과 경기, 광주와 전북에 한정된다. 나머지 13개 시·도의 학생들한테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옹호관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지구적 보편성을 인정받는 청소년 인권이 지역 의회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해 국내적 보편성도 획득하지 못했다. 촛불청소년들이 시·도별 학생인권조례 대신 청소년인권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다.

막연한 우려와 달리 청소년의 정치 관심과 사회참여는 교육적으로 매우 바람직하다. 중학생쯤 되면 사회와 학교가 적극 권장하는 편이 낫다. 공동선과 공익, 정치에 관심을 갖는 청소년들은 삶의 자세가 달라진다. 주변의 부조리와 부정의에 분노하고 사회정의와 공동선을 꿈꾼다. 창의적 문제 해결을 위해 알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소통 공감능력과 협력연대 역량을 체득하며 학생에서 시민으로 ‘제2의 탄생’을 경험한다. 한마디로, 공적 관심과 정치학습, 사회참여는 인성과 창의성, 리더십 교육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다.

청소년의 정치학습과 참여는 한국 민주주의의 주체 확대와 노화 방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마침 내년 6월에는 교육감선거와 자치단체장, 지방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청소년이 본격적으로 참가하는 첫번째 선거로 만들자. 긴말할 것 없이, 보수 편향으로 유명했던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의 2013년 2월 전원일치 입법 권고를 100% 존중해서 총선·대선 연령 18살, 지방선거 연령 17살, 교육감선거 연령 16살, 정당가입 연령 15살로 낮추자.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청소년의 패기와 활력을 불어넣고 청소년이 당당한 나라를 만들자. 이제 국회와 대통령이 응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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