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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12 19:55 수정 : 2017.10.12 20:27

이현숙
탁틴내일(ECPAT KOREA) 상임대표

20여년 전 아동 대상 성추행 사건을 취재한 경험이 있다. 유아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기관장이 수개월 동안 수십명의 아이들을 성추행한 사건이었다. 기관장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고 아이들은 약속한 비밀을 지켰다. 보호자들은 오랫동안 이 사실을 몰랐다가 우연히 아이들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한 부모에 의해 사실이 드러났다. 지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가해자가 지역사회에서 선량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 더욱 경악했다. 그런 사람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 다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개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민단체가 연대해 아동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도록 한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성보호법) 제정운동을 벌였고 마침내 성공하였다. 그 후에도 많은 아동·청소년이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살해당하는 사건도 일어났고 그때마다 재발 방지를 위해 법을 보완했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전형적 특성이 그루밍(길들이기)이다. 그루밍은 성착취를 수월하게 하고 폭로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신뢰를 쌓는 것을 말한다. 성적 가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대인관계 및 사회적 환경이 취약한 대상에게 다양한 통제·조정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루밍은 낯선 사람과 아는 사람, 온라인과 거리·시설에서 다양하게 발생한다. 특히 아이들이 생활하는 곳은 길들이기 좋은 공간이다.

성범죄자 취업제한 제도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특성을 반영해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로 2006년에 처음 시행되었다. 취업제한 제도의 목적은 학교, 학원, 청소년 보호시설 등에서 그 종사자에 의해 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가 청소년과 접촉할 기회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만 취업제한 대상이었으나 2010년 발생한 김길태 사건을 계기로 2012년 법을 개정해 성인 대상 성범죄자까지 취업제한 대상을 확대하였다. 성인 대상 성범죄 경력이 있는 김길태가 아동을 성폭행하고 살인한 사건을 통해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다. 그 후에도 필요하면 취업제한 대상 기관을 확대했다.

이렇게 법이 시행되어 오던 중 취업제한 대상이 된 사람이 이중처벌과 제한기간 불평등 등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는 취업제한 제도에 대해 위헌 판결을 했다. 헌재의 결정은 취업제한이라는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은 인정하지만 범죄의 경중, 재범의 위험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인 취업제한은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취업제한 제도 그 자체를 폐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헌재의 결정이 새삼스럽다고 볼 수는 없다. 범죄 정도나 재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대한 보완 의견이 늘 있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헌재 결정 이후 법 개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다고 해도 부칙에 따라 시행일은 공포 6개월 뒤이다. 그래서 최초 위헌 결정일에 선고받은 사람은 이미 취업제한 2년이 모두 경과해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 그 틈을 비집고 아동·청소년을 성범죄 대상으로 이용하려는 사냥꾼이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거나 아동·청소년이 활동하는 시설에 취업할지 모른다. 국회는 반드시 이번 회기 내에 법을 개정해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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