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동아연구소 소장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언제까지 ‘제재와 대화’에만 매달려야 할 것인가? 두 달 전에 강행된 6차 핵실험 이후에 국제적 경제 제재의 수위가 그 어느 때보다 높긴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확신이 서질 않고, 엄청난 전략자원을 동원했던 미국의 한 달간 무력시위도 치킨게임에 익숙한 북한의 호전성 앞에 국민에게 불안감만 가중했다. 6자회담이나 남북한 간 직접 대화를 통한 협상은 남북한 간 신뢰를 떨어뜨리고 우리 국론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중국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송유관 밸브만 잠그면 그만이라는 단순논리는 중국의 명시적 반대 앞에 힘을 잃었다. 이렇듯 북핵 위기는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제재와 대화 두 방안 사이를 방황하며 십수년째 해결 방안을 찾아왔지만, 이제는 북한에 대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야 하느냐 마느냐 따져야 하는 기막힌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남북한이 함께 아세안에 가입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자고 제안한다. 아세안은 북핵 위기의 사실상 당사자라고 볼 수 있는 남북한, 미국, 중국이 서로에게 바라고 요구하는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아세안이 견지하는 내정불간섭 원칙은 체제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북한을 일단 안심시킬 수 있다. 아세안 헌장과 동남아우호협력조약(TAC)은 회원국 상호 간 그리고 비회원국에 의한 내정불간섭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 힘없는 나라들의 협력체가 반세기를 넘어 존립,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원칙 덕분이다. 실제로 아세안에서 그나마 민주주의라고 하고 있는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두 나라뿐이며, 베트남과 라오스는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이고, 브루나이는 일인 지배의 술탄체제이다. 인도네시아 지도층과 캄보디아 왕실에는 김일성 일가와 친분을 유지하는 이들도 많다. 아세안은 수립 초기부터 스스로를 자유평화중립지대(ZOPFAN)와 비핵지대(SEANWFZ)로 설정했고, 2015년 아세안정치안보공동체 출범으로 제도화의 결실을 맺었다. 아세안 덕분에 회원국 사이에 지난 50년 동안 국경에서 일어난 우발적 총격전을 제외하고는 전쟁은 물론 조그만 무력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수백년간 지속된 식민지배, 독립전쟁, 냉전과 내전의 와중에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은 동남아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한 적은 없었다. 아세안은 다자적 안보협력체제의 성격도 가지므로, 만약 북한이 회원국이 된다면 더 이상 미국의 침공을 두려워하거나 이를 핑계로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할 수 없을 것이다. 아세안은 1997년 발효된 비핵지대 협정, 2007년 제정된 아세안 헌장, 매년 개최되는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성명을 통해 비핵지대 원칙을 거듭 천명해왔다. 북한도 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서명한 적이 있지 않은가? 남북한이 아세안 동시가입의 문을 두드린다면 그 열쇠는 당연히 아세안이 쥐고 있다. 그러나 아세안도 남북한을 동시에 회원국으로 받아들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전쟁위험과 불안정을 종식하고 세계평화 구현에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국제적 명성과 위상을 높일 역사적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인 지역관념, 주변 강국들의 반대, 핵강국과 한-미 동맹에 대한 남북한의 환상 등 예상되는 몇 가지 난제도 우리 정부와 지도자의 의지와 설득으로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북한이 손잡고 함께 아세안으로 가자.
칼럼 |
[기고] 아세안 동시가입과 북핵위기 / 신윤환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동아연구소 소장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언제까지 ‘제재와 대화’에만 매달려야 할 것인가? 두 달 전에 강행된 6차 핵실험 이후에 국제적 경제 제재의 수위가 그 어느 때보다 높긴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확신이 서질 않고, 엄청난 전략자원을 동원했던 미국의 한 달간 무력시위도 치킨게임에 익숙한 북한의 호전성 앞에 국민에게 불안감만 가중했다. 6자회담이나 남북한 간 직접 대화를 통한 협상은 남북한 간 신뢰를 떨어뜨리고 우리 국론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중국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송유관 밸브만 잠그면 그만이라는 단순논리는 중국의 명시적 반대 앞에 힘을 잃었다. 이렇듯 북핵 위기는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제재와 대화 두 방안 사이를 방황하며 십수년째 해결 방안을 찾아왔지만, 이제는 북한에 대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야 하느냐 마느냐 따져야 하는 기막힌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남북한이 함께 아세안에 가입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자고 제안한다. 아세안은 북핵 위기의 사실상 당사자라고 볼 수 있는 남북한, 미국, 중국이 서로에게 바라고 요구하는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아세안이 견지하는 내정불간섭 원칙은 체제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북한을 일단 안심시킬 수 있다. 아세안 헌장과 동남아우호협력조약(TAC)은 회원국 상호 간 그리고 비회원국에 의한 내정불간섭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 힘없는 나라들의 협력체가 반세기를 넘어 존립,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원칙 덕분이다. 실제로 아세안에서 그나마 민주주의라고 하고 있는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두 나라뿐이며, 베트남과 라오스는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이고, 브루나이는 일인 지배의 술탄체제이다. 인도네시아 지도층과 캄보디아 왕실에는 김일성 일가와 친분을 유지하는 이들도 많다. 아세안은 수립 초기부터 스스로를 자유평화중립지대(ZOPFAN)와 비핵지대(SEANWFZ)로 설정했고, 2015년 아세안정치안보공동체 출범으로 제도화의 결실을 맺었다. 아세안 덕분에 회원국 사이에 지난 50년 동안 국경에서 일어난 우발적 총격전을 제외하고는 전쟁은 물론 조그만 무력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수백년간 지속된 식민지배, 독립전쟁, 냉전과 내전의 와중에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은 동남아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한 적은 없었다. 아세안은 다자적 안보협력체제의 성격도 가지므로, 만약 북한이 회원국이 된다면 더 이상 미국의 침공을 두려워하거나 이를 핑계로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할 수 없을 것이다. 아세안은 1997년 발효된 비핵지대 협정, 2007년 제정된 아세안 헌장, 매년 개최되는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성명을 통해 비핵지대 원칙을 거듭 천명해왔다. 북한도 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서명한 적이 있지 않은가? 남북한이 아세안 동시가입의 문을 두드린다면 그 열쇠는 당연히 아세안이 쥐고 있다. 그러나 아세안도 남북한을 동시에 회원국으로 받아들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전쟁위험과 불안정을 종식하고 세계평화 구현에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국제적 명성과 위상을 높일 역사적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인 지역관념, 주변 강국들의 반대, 핵강국과 한-미 동맹에 대한 남북한의 환상 등 예상되는 몇 가지 난제도 우리 정부와 지도자의 의지와 설득으로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북한이 손잡고 함께 아세안으로 가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