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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22 20:18 수정 : 2018.02.22 20:25

최정규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2월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의사 강용주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가 보안관찰법 제도 자체의 위헌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국가보안법을 다시 위반할 위험성이 없는데도 보안관찰 처분을 갱신한 것은 위법하므로 위법한 처분에 따른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이다.

보안관찰 제도는 예전부터 위헌이라고 생각했지만, 강용주 사건의 변호를 맡아 공부하며 1년여 동안 의뢰인 강용주를 겪고 나니 그 위헌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3년 전의 헌법재판소 전원일치 합헌 선례를 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서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보안관찰 제도 자체보다 그 실무상 운용이었다. 이른바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였던 강용주의 경우에는 유독 가혹했다. 보안관찰 처분을 갱신하려면 국가보안법을 다시 위반할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공안당국의 특별관리 대상이었던 강용주에게는 신고의무를 거부하고 조사에 불응한다는 것만으로 보안관찰 처분이 7차례나 갱신됐다. 실제 재범의 위험성을 따지지 않았고, 강용주의 진술도 출석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 6차 갱신 결정부터는 신고의무 불이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는지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과의 접촉’을 갱신 사유로 추가하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재범의 위험성이 인정될 수 있다. 확인해보니, 수사기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로 지칭한 사람들은 과거 군사정권에서 간첩으로 조작됐다가 재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무고한 피해자들이었다. 수사기관은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향서 작성’과 ‘신고의무를 거부한’ 강용주의 보안관찰 처분을 갱신하기 위해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로 둔갑시킨 것이었다. 허위로 작성된 공문서가 담긴 수사기록을 읽고, 증인으로 나와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수사관을 경험하는 것은 곤욕이었다. 검찰은 더 이상 강용주의 재범 위험성에 관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데도 일단 보안관찰 처분이 내려지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가? 총기사고를 막기 위해 총을 가진 사람은 가슴에 딱지를 붙이는 법을 만들었다고 하자. 그에게 매일 총알의 개수를 신고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했다. 그런데 공무원이 총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딱지를 잘못 붙이는 일이 발생했고, 당연히 그 사람은 총알의 개수를 신고하지 않았다. 딱지가 붙었으니 일단 총알의 개수를 거짓으로라도 신고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의무 없는 사람에게 의무를 잘못 부과한 경우,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 강용주는 재범의 위험성이라는 잘못된 딱지가 붙은 사람이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보안관찰법의 신고의무 조항을 위반하면 처벌해야 한다는 기존 관행을 극복하고 처벌을 하려면 적어도 근거가 되는 보안관찰 처분이 적법해야 한다는 점을 최초로 명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형사사건에서 보안관찰 처분의 적법성부터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면, 지금과 같이 수사기관이 보안관찰 처분을 남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은 검찰과 법무부로 넘어갔다. 강용주가 간첩이 아니고, 간첩이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은 강용주를 아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의 재범 위험성을 증명할 증거는 이 세상에 없다. 19년이 지났다. 이제 강용주를 창살 없는 감옥에서 풀어줄 때가 되었다. 강용주 사건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고, 더 이상 보안관찰 처분을 갱신하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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