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3.01 17:27 수정 : 2018.03.01 19:08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두 도시가 있다. 하나는 왕복 10차로의 넓은 도로가 도시의 이곳저곳을 연결한다. 건물은 모두 대형 고층빌딩이다. 다른 도시는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가 거미줄처럼 도시 곳곳을 연결한다. 건물은 대개 작고 낮다. 첫 번째 도시에서는 길이 넓으니 차들의 속도도 빠르고 교통 정체도 없을 것만 같다. 건물이 크고 높으니 외관도 화려해 보인다. 이에 비해 두 번째 도시는 길이 좁으니 차가 속도를 낼 수 없어 답답할 것 같다. 건물도 낮으니 외관도 별로 신통치 않을 것 같다.

자동차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첫 번째 유형의 도시를 선호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빨리빨리 문화가 고착화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길이 넓은 도시는 이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신도시들은 넓은 도로가 중심이 된다. 그래도 길이 좁다는 불만이 종종 기사화될 정도이니 새로 도시를 만들 때 넓은 도로를 만드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첫 번째 유형의 도시가 그리 빠르지 않다. 오히려 두 번째 유형의 도시보다 느릴 수도 있다. 이유는 신호등 때문이다. 왕복 10차로와 10차로 도로가 만나는 교차로는 넓을 수밖에 없다. 이런 곳을 걸어서 건너려면 60초는 족히 소요된다. 따라서 교차하는 방향별로 60초 이상의 녹색 신호를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좌회전 신호 시간까지 고려하면 적색 신호에 대기하는 시간이 2분도 될 수 있다.

이런 교차로가 하나면 참을 만하다. 하지만 이런 교차로는 서울 시내만 해도 꽤 많다. 만약 이런 교차로마다 신호등에 걸린다고 가정하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 등에서 흔히 경험하는 일상이다. 넓은 길은 이에 더해 교통사고 가능성을 높인다. 차는 초록 불에 어떻게든 지나가려고 무리하게 과속하기 쉽다. 보행자도 녹색 시간의 끝에 횡단보도로 갑자기 뛰어든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신호대기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넓은 도로 위주의 도시 개발이 위험 운전을 유발하고 사고를 늘리는 셈이다.

이에 비해 두 번째 유형의 도시는 교차로가 있어도 신호대기 시간이 길지 않다. 왕복 2차로 도로를 건너는 데 10초면 충분하다. 교통량이 많지 않으면 좌회전 신호를 별도로 주지 않아도 된다. 회전교차로를 설치하면 아예 신호등이 없어도 된다. 교차로 대기 시간이 거의 없다면 길은 좁지만 훨씬 빠르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사고 위험도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회전교차로가 설치되는 경우 차량의 속도가 낮아 중상이나 사망 사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좁은 도로 위주의 도시는 보행자가 걷기에도 매력적이다. 주변 건물이 낮으니 위압적이지 않으며 걸으면서 다양한 종류의 건물과 상점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넓은 도로가 차량 소통이나 교통안전 측면에서 유리하지 않다면 도시개발 방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하지만 수십년 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도시계획 지침은 70m 이상의 광로에 대한 규정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꼭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침에 근거가 있는 한 넓은 도로를 도시계획의 근간으로 하는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넓은 도로에서 사고 위험과 교통 정체가 심한 도시를 만들지 혹은 도로는 좁지만 차량 속도가 낮아 보행자가 안전하고 차들도 교차로에서 멈춤 없이 다닐 수 있는 도시를 만들지 다시 선택해야 한다. 신도시를 만든 역사도 이제 오래되었다. 역사에서 배운 지혜를 현재와 미래를 위해 적용해보았으면 한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