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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2 18:30 수정 : 2018.04.12 19:20

최종구
금융위원장

1987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무장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백인 경찰을 살해한 혐의로 흑인 남성 매클레스키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매클레스키 쪽은 인종차별적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백인 살해 혐의로 기소된 경우 유죄인정 및 사형선고 비율이 흑인 살해에 비해 4.3배나 높다는 분석이 근거였다. 이 공방은 미국 사법시스템 내 인종차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재판의 인종차별적 요소를 밝히는 사례 분석, 심리실험 등이 잇따르면서 미국 사법제도 개혁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최근 8700만 회원의 개인정보가 무단 이용된 사실이 드러나 페이스북의 성공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정치적 성향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선거에 활용됐다는 소식에 미국인들은 분노한다. 개인정보의 자유로운 거래와 활용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누려왔던 거대 정보통신기술 기업뿐 아니라, 이를 사실상 묵인해온 미국 정부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법제도 변화의 물꼬를 트기도 하고, 페이스북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하는 ‘데이터’의 극단적 양면이다.

국내에서도 개인정보 오남용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다행히 한국은 2014년 신용카드사 정보유출 사태로 정보활용 사전 동의, 수집 목적 외 활용 금지, 불필요한 정보의 파기 의무 등 강력한 규제가 도입되어 있다. 정보보호 관련 규제가 거의 없다시피 한 미국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러나 개인이 본인 정보를 통제·관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감독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우려가 지나쳐 정당한 데이터 활용까지 부정적으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 매클레스키 예처럼 우리 안의 차별을 밝혀내고, 사람 중심의 사회를 확립하기 위해 데이터 역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은 데이터와 함께 성장해온 산업이다. 고객 정보에 기초해 금융거래가 이루어지고, 이렇게 쌓인 정보는 신용이 되어 개인을 신용사회와 연결한다. 금융회사는 이를 분석해 필요에 맞는 금융상품을 개발한다. 금융의 역사는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한 객관적인 위험평가를 통해 보다 많은 개인을 포용하는 과정이었다. 더 많은 고객 정보가 공유·활용될수록 금리는 낮아지고, 금융사의 독점이익은 줄어든다고 여러 연구 결과들은 보여준다.

우리 금융시장도 갈 길이 멀다. 과거 금융거래, 연체 실적 등에만 의존해 신용도를 평가하다 보니 신용을 쌓을 겨를이 없는 사회초년생, 주부, 고령층은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다. 청년들은 스마트폰, 노트북 등을 담보로 내놓고도 비싼 금리를 감수해야 하는 소위 ‘아이티(IT) 전당포’로 내몰린다. 한편 대형 금융회사에 축적된 고객 정보는 또 다른 장벽이 되어 신규업체 진입을 막고, 이런 장벽 안에 안주하는 금융회사는 천편일률적인 금융상품만을 내놓아 소비자를 소외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제부터라도 데이터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균형점 찾기’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새 정부도 4차 산업혁명 흐름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 이를 범정부적으로 고민해왔고, 그 일환으로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융분야 데이터 활용 및 정보보호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데이터의 적극적 공유를 통해 공정하고 포용적인 금융시스템을 마련하고, 그 혜택은 국민께 돌아가도록 하는 금융혁신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었다.

금융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는 대다수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며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온 개인이 제도권 금융의 틀에 안전하게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그 핵심에 데이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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