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아니, 그림이 두 정상에게 스며들었다고 해야겠다. 문재인 김정은 두 정상이 만난 판문점 평화의집에는 어김없이 그림이 걸려 있었다. 물론 남측에서 계획하고 배치한 작품들이지만 평화의집 회담장을 밝게 만들고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같이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항상 주장하는 바이지만 그림들은 작가 손을 떠나면 자기의 팔자(?)대로 움직인다. 운이 좋아 루브르나 현대미술관에 걸릴 수도 있고 때로는 좋은 고객에게 팔려 안방 거실에 걸리면서 편안한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이번 경우처럼 두 정상의 중요한 대화에 끼어들 수도 있고 전세계인에게 생중계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그러나 팔자가 사나워 관객과 만나기도 전에 비극적인 일을 당하기도 한다. 전시장에서 쫓겨나거나(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 정부가 불온의 딱지를 붙여 압수 보관하거나(1982년 ‘현실과 발언’과 몇 작가의 작품들) 심지어는 전시장 안에 경찰들이 마구 작품을 짓밟고 약탈한 경우(1985년 ‘힘’전 사태)도 비일비재했다. 최악의 경우가 신학철 작가의 그림 <모내기>다. 이 작품은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로 작가와 함께 재판을 받은 뒤 검찰의 창고 안에서 아직도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얼마 전에 보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기로 했다). 얼마 전까지도 정부의 사상 검열(블랙리스트 작가 등)로 전시장에 걸리지 못하는 작품들이 있었으니 이것이 잘못 태어난 작품의 팔자 탓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관객들과 소통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열광하는 관객을 만나지 못할지라도 작품은 항시 관객들과 대화하거나 그들의 감성에 스며들 준비가 되어 있다. 작가는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들을 해석하고 완성하는 것이 관객의 몫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9세기 낭만주의 거장 들라크루아는 그의 일기에서 ‘성공한 회화란 관객의 시선에서 되살아나고 변화하는 감정을 순간적으로 응축한다’고 썼다. 또 마르셀 프루스트는 불만에 가득 찬 한 젊은이에게 쓴 편지 형식의 에세이에서 ‘루브르미술관에 가서 사람들이 가득 모인 명화(화려한 궁전이나 왕을 묘사한) 앞에 서 있지 말고 저쪽 구석에 걸려 있는 샤르댕의 정물화(부엌 등을 그린)를 보면서 눈을 뜨고 삶의 활기를 찾으라’고 충고한다. 이번 정상회담에 걸린 작품들은 주로 풍경 산수화들이지만 우리의 산하를 얼마나 잘 응축하고 있는가. 민정기·신장식의 북한산·금강산 그림들에서 어찌 웅장한 기운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두 정상들은 이 기운으로 아마 ‘통 크게’ 협상에 임할 수 있었으리라. 김준권의 겹겹이 이어지는 산하와 김중만의 <훈민정음> 사진을 보고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까지 이어질 ‘영원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어쨌든 알타미라 동굴벽화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술은 시간적으로, 또는 공간적으로 ‘전이성’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들의 미래가 담보된 역사의 현장에서 작품들은 두 정상과 감성을 서로 교환하면서 우리 역사의 ‘평화, 통일’이라는 위대한 전이성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번 ‘평화의집’ 전시는 두 정상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생중계된 화면을 통해 수없이 많은 관객들과 알게 모르게 조우하고 그들의 감성에 스며들어 인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다.
칼럼 |
[기고] 두 정상, 그림에 스며들다 / 김정헌 |
화가·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아니, 그림이 두 정상에게 스며들었다고 해야겠다. 문재인 김정은 두 정상이 만난 판문점 평화의집에는 어김없이 그림이 걸려 있었다. 물론 남측에서 계획하고 배치한 작품들이지만 평화의집 회담장을 밝게 만들고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같이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항상 주장하는 바이지만 그림들은 작가 손을 떠나면 자기의 팔자(?)대로 움직인다. 운이 좋아 루브르나 현대미술관에 걸릴 수도 있고 때로는 좋은 고객에게 팔려 안방 거실에 걸리면서 편안한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이번 경우처럼 두 정상의 중요한 대화에 끼어들 수도 있고 전세계인에게 생중계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그러나 팔자가 사나워 관객과 만나기도 전에 비극적인 일을 당하기도 한다. 전시장에서 쫓겨나거나(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 정부가 불온의 딱지를 붙여 압수 보관하거나(1982년 ‘현실과 발언’과 몇 작가의 작품들) 심지어는 전시장 안에 경찰들이 마구 작품을 짓밟고 약탈한 경우(1985년 ‘힘’전 사태)도 비일비재했다. 최악의 경우가 신학철 작가의 그림 <모내기>다. 이 작품은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로 작가와 함께 재판을 받은 뒤 검찰의 창고 안에서 아직도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얼마 전에 보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기로 했다). 얼마 전까지도 정부의 사상 검열(블랙리스트 작가 등)로 전시장에 걸리지 못하는 작품들이 있었으니 이것이 잘못 태어난 작품의 팔자 탓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관객들과 소통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열광하는 관객을 만나지 못할지라도 작품은 항시 관객들과 대화하거나 그들의 감성에 스며들 준비가 되어 있다. 작가는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들을 해석하고 완성하는 것이 관객의 몫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9세기 낭만주의 거장 들라크루아는 그의 일기에서 ‘성공한 회화란 관객의 시선에서 되살아나고 변화하는 감정을 순간적으로 응축한다’고 썼다. 또 마르셀 프루스트는 불만에 가득 찬 한 젊은이에게 쓴 편지 형식의 에세이에서 ‘루브르미술관에 가서 사람들이 가득 모인 명화(화려한 궁전이나 왕을 묘사한) 앞에 서 있지 말고 저쪽 구석에 걸려 있는 샤르댕의 정물화(부엌 등을 그린)를 보면서 눈을 뜨고 삶의 활기를 찾으라’고 충고한다. 이번 정상회담에 걸린 작품들은 주로 풍경 산수화들이지만 우리의 산하를 얼마나 잘 응축하고 있는가. 민정기·신장식의 북한산·금강산 그림들에서 어찌 웅장한 기운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두 정상들은 이 기운으로 아마 ‘통 크게’ 협상에 임할 수 있었으리라. 김준권의 겹겹이 이어지는 산하와 김중만의 <훈민정음> 사진을 보고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까지 이어질 ‘영원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어쨌든 알타미라 동굴벽화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술은 시간적으로, 또는 공간적으로 ‘전이성’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들의 미래가 담보된 역사의 현장에서 작품들은 두 정상과 감성을 서로 교환하면서 우리 역사의 ‘평화, 통일’이라는 위대한 전이성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번 ‘평화의집’ 전시는 두 정상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생중계된 화면을 통해 수없이 많은 관객들과 알게 모르게 조우하고 그들의 감성에 스며들어 인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