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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31 18:24 수정 : 2018.05.31 21:20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상지대 초빙교수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한겨레>처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지난 5월28일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한국의 민주화·민중 투쟁과 시민사회운동을 늘 함께 해왔던 민변이기에 내 일처럼 기쁘기만 하다. 1990년 저의 형이 전두환·노태우 일당과 투쟁하다 구속되었을 때 처음 민변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시위와 시국 사건으로 친구와 선후배가 구속될 때, 항상 제일 먼저 달려온 변호사들은 예외 없이 민변이었다.

학생회실 메모판에 언제나 큰 글씨로 적혀 있던 민변 전화번호를 20년 훨씬 지난 지금도 외우고 있다. 그만큼 민변에 연락을 많이 했고, 억울하다며 찾아온 시민들이나 시국사건 피해자들에게 민변 전화번호를 많이 알려드렸다. 물론 내가 20년 가까이 일했던 참여연대로도 수없이 많은 억울한 사연들과 제보들이 들어왔지만, 때로는 시민단체가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법률적 문의나 상담은 민변에 연결해드렸다.

그렇게 민변은 역사의 한복판, 국민들 삶과 투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 제목을 빌리자면, 민변은 지난 30년을 ‘국민들의 한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칠흑 같은 군부독재 정권 시절 반독재 투사 인권 변론을 시작으로, 2000년 총선시민연대, 2002년 고 심미선·신효순 학생 추모 촛불시위, 2004년 탄핵무효국민행동, 2008년 광우병 위험 쇠고기 문제 촛불항쟁, 2011년 반값등록금 투쟁, 2012년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범국민운동, 2013년 슈퍼 갑들에 맞선 ‘을’들의 반란, 2014년 세월호 추모와 진상규명 운동, 쌍용자동차·케이티엑스(KTX)승무원·전교조 등 억울한 해고자 변론 활동, 2016년 가습기살균제 참사 대응과 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 옹호, 그리고 2016~17년 촛불시민혁명 전개와 박근혜·이재용·이명박 등 구속의 순간에도 민변은 함께 있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야간집회 금지 조항의 위헌 결정, 이동통신 원가 정보공개 대법원 승소도 참여연대와 민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이 해낸 기념비적인 판결이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민변 변호사들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던가. 나를 포함한 구속자들에 대한 변론뿐만 아니라 1천명이 넘는 촛불시민들을 민변이 일일이 다 공익변론 해주었는데, 이런 일을 하는 단체가 전세계에 또 어디 있을까.

또한 상지대·수원대·덕성여대 등에서 사학비리 척결을 위해 함께 수고한 민변 변호사들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도곡동 땅-다스-비비케이(BBK) 관련 이명박의 비리를 밝혀내고 함께 고발도 했던 민변의 4김 변호사(김남근·김준우·김종휘·김종보)들을 기억한다. 민변은 지금도 이명박 시절 자원외교 사기사건 진상규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특히 조영래·노무현·문재인·박원순·권영국·이찬진·정연순·김진·이상희·조수진·이광철·송상교 변호사 등이 민변 회원이었거나 지금도 민변 회원이다. 이들을 배출한 것만으로도 민변은 우리 역사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얼마 전 30년을 맞이한 <한겨레>에 역시 30년을 맞이한 민변에 대한 헌사를 쓸 수 있어서 참 기쁘다. 어느 조직이나 우여곡절도 있고 부침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겨레>와 민변이 지금보다 더 도약하는 향후 30년을 만들어낼 것을 굳게 믿는다.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민변과 그 변호사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 전한다. 앞으로도 민주·인권 옹호, 민생·노동 존중, 평화·통일 실현의 길에 늘 앞장서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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