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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05 18:17 수정 : 2018.07.05 19:30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전 <한겨레> 보건복지전문기자

7월이면 생각나는 인물과 사건이 있다. 30년 전인 1988년 7월2일 한 소년이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서울 영등포의 한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던 15살의 문송면군이 일을 한 지 두 달 만에 수은중독에 걸려 5개월가량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해 4월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병실에서 치료를 받던 그를 먼발치에서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얼마 뒤 <한겨레>를 통해 우리나라 최대의 직업병으로 자리매김한 원진레이온 노동자 이황화탄소 중독 참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사건은 7월22일 휠체어를 탄 반신불수의 환자 사진과 함께 ‘유해환경 놔두고 산재환자 강제 퇴사―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자 12명 발생, 언어장애·팔다리 마비… 노동부는 팔짱만’이란 제목의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원진레이온 참사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그야말로 우연과 필연의 산물이었다. 신문사로 우연히 걸려온 한 통의 전화와 필자가 대학원에서 배운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에 관한 논문에 대한 기억이 단 1초 만에 씨줄과 날줄의 필연으로 엮였던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산업보건 제도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 30년 동안 벌어졌던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돌이켜보면 그런 평가는 잘못된 것이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마다 직업병과 추락, 질식 등 다양한 산재사고로 숨져갔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 삼성전자, 에스케이하이닉스반도체 등 세계적 대기업에서도 노동자들이 이유도 모른 채 숨졌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사회는 문송면군의 죽음과 원진레이온 참사에서 진정한 교훈을 지난 30년 동안 배우지 못했다. 애먼 노동자만 숨졌다. 그 가족들은 고통 속에 살아왔다. 반면 이들을 고용했던 기업주와 노동자의 안전 행정·정책을 책임졌던 관료들은 아무런 고통을 겪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초 자살, 교통사고 사망과 더불어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줄이는 것을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로 정했다. 산재사고를 2022년까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위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고 예방활동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너무나 당연한 약속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대재해를 반복해 일으키더라도 기업의 총수나 대표가 처벌받거나 구속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악덕기업주를 손봐줄 수 있는, 그래서 진정한 산재 예방을 할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전문가들과 노동자들이 부르대도 정부와 국회 어느 곳도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생명을 내걸고 작업을 한 유해 공간의 기록물인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요구는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이해당사자인 삼성전자는 물론이고 정부, 법원도 2인3각이 돼 기업 기밀이라며 반대하거나 공개 유보 결정을 내렸다.

이는 산재사고 사망을 4년 안에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포기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보다는 기업의 이윤을 중시하겠다는 선언이다. 문송면 사망 30년과 원진레이온 직업병 참사 30년을 맞이해 우리 사회가 이들의 죽음에 대해 진정으로 성찰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람의 생명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7월이 다 가기 전에 무엇이 더불어 살아가는 길인지, 무엇이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를 깊이 고뇌하고 반성하자. 그리고 그 답을 만들어내자. 특단의 대책이 아니면 산재사망 절반 줄이기는 구호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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