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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02 18:38 수정 : 2018.08.02 18:51

최우식
변호사

오후 3시 회의를 마치고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타자 뜨거운 열기가 온몸으로 훅 들어온다. 화가 치민다. 눈물도 난다. ‘그 아이’ 때문이다. 이 열기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영유아 통학차량 방치사고가 동두천에서 ‘또’ 발생했다. 운전기사, 인솔교사, 담임교사, 어린이집 원장까지 4중의 ‘인적 안전 시스템’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이런 사건은 2000년 이후 6차례나 발생했다. 그동안 국가는 2016년 도로교통법에 ‘운전기사의 자는 아이 확인 의무’(위반 시 벌금 20만원)를 도입한 것이 전부다.

고령자, 영유아 등 사회적 약자는 ‘법률로써’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다만 어떠한 보호수단을 강구할지는 국가에 재량이 있다.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아니라도 적어도 현저하게 불합리한 수단만 피하면 된다. ‘최소보호의 원칙’이다. 그런데 생명권 등 중대한 기본권에 관해서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이어야 한다(최대보장의 원칙). 생명권은 한번 침해받으면 회복될 수 없다. 또 사적 영역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은 재량이지만, 개인의 생명·재산 등 중대한 기본권 침해가 예상되고, 사적 영역의 구제 방법이 실효성이 없으며, 공권력의 개입으로 위해가 제거될 것이 확실하다면, 재량권은 ‘0’으로 축소돼 공권력의 개입 의무가 발생한다.

동두천 사건을 보면, 사적 영역에서 4중의 안전장치가 무용지물이라는 점, 그런 사소한 실수로 영유아의 생명권이 침해받는다는 점, 2016년에 ‘자는 아이 체크 시스템’이 입법되었다면 이번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국회의 입법 재량은 그때 ‘0’으로 축소됐다. 국회의원은 국가기관이므로 그때 국가는 그런 ‘물적 안전 시스템’의 도입이 ‘입법 의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편 사회구조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국가의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의 내용도 그에 호응하여 고양돼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위헌적인 상태를 초래한다. 따라서 영유아의 보호에 관해 애초에 헌법에서 명시적으로 ‘물적 안전 시스템’ 도입이라는 특정한 입법 위임을 한 것은 아니지만, 위와 같은 사정으로 입법자의 재량이 ‘0’으로 축소되었다. 이에 국가가 ‘물적 안전 시스템’의 입법에 실패한 2016년 8월부터 위헌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이번 동두천 사건이 확인시켜주었다.

최근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이제야 ‘물적 안전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난리다. 그러면 2016년 8월에는 왜 그러지 않았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에겐 여섯살, 네살 두 딸이 있다. 동두천의 그 아이처럼 큰애도 통학차량을 타고 다닌다. 둘째도 내년에는 통학차량을 탈 예정이다. 그래서 자기 관련성이 있는 딸들의 이름으로 헌재에 헌법소원(2018헌마776 입법부작위 위헌확인)을 냈다. 그런데 이번에 ‘물적 안전 시스템’이 도입되면 입법부작위가 해소돼 ‘권리보호 이익’이 없다고 하여 각하될 수 있다. 다만 헌법적 해명이 필요하다고 하면 위헌 여부를 판단받을 수는 있다. 그래서 끝까지 갈 생각이다. 정부의 대책은 ‘재발 방지’일 뿐, 아직 이 사건의 ‘책임 소재’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자꾸 그 아이가 생각난다. 그 지옥 같은 불구덩이 속에서 얼마나 엄마를 애타게 찾았을까? 끝내 나타나지 않은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그 엄마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엄마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헌법은 ‘객관적 규범 통제’를 주로 하지만, 때로는 한 사람의 눈물도 닦아주어야 한다. 헌법은 우리에게 ‘부모’이기 때문이다.

(헌법소원에 동참하고 싶은 미취학 아동 부모는 junebe21@hanmail.net으로 연락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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