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11.01 18:31 수정 : 2018.11.01 19:05

김문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서울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피의자가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하자 ‘심신미약’으로 감형받으려는 시도라며 이러한 감형시도에 엄격하게 대응해 정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국민청원에 며칠 만에 100만여명이 동참했다 한다. 이번 국민청원은 정신건강 문제와 범죄를 밀접하게 연결지어온 우리의 사고와 관행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동안 각종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범행 동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언론과 경찰이 많은 관심을 갖는 것 중의 하나는 피의자의 정신병력이었다. 언론과 경찰은 범죄의 원인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때 정신건강 문제를 매우 유력한 범죄원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추론에 대해 시민들은 놀라우리만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도 정신건강 문제 그 자체가 그러한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는지 규명하지 않는다. 그건 우리 가운데 그런 추론을 정당화하는 신념,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삼단논법의 논리에 따라 ‘정신질환자는 폭력적이다’ 혹은 ‘정신질환자는 공격성이 높다’라는 신념이나 편견을 지니고 있다면, 특정 범죄자의 정신병력이 드러나면 정신질환이 곧 범죄의 원인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한다. 사람들의 편견이 널리 퍼져 있을수록 이러한 추론은 자동적이고 직관적이 된다. 너무나 당연하고 명확해 보이므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 관한 여론은 전혀 다른 관점에 근거하고 있다. 그동안 범죄 피의자에게 정신질환 병력이 드러났을 때 범죄 예방 차원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강제입원 및 수용 등 강력한 격리와 통제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있더라도 범죄를 저지를 때는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력을 지녔을 것이며, 그러므로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해서는 안 되며, 강력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여론의 긍정적 측면은 정신건강 문제와 분리해서 범죄 동기와 범죄를 행할 당시의 판단능력을 면밀히 검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을 조금 전환하면, 정신건강 문제를 범죄의 원인으로 돌려서도 안 되고, 정신건강 문제를 섣불리 범죄행위에 대한 면책의 조건으로 인정해서도 안 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범죄에 대해서는 그 동기와 원인, 정황을 사실에 근거해 조사하고, 합당한 사법적 대응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사건의 정황을 살펴보면, 피의자가 합리적 판단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피의자는 상황적으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여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분노 또는 충동 조절 문제를 정신질환과 동일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도 정당한 분노라고 느끼기 때문에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폭력적 행동을 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정신질환을 범죄의 원인으로 돌리는 것도, 정신질환을 곧 판단력 상실과 동일시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음을 인식했으면 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범죄와 정신질환을 연결지어왔다. 이제 범죄와 정신질환을 구별해야 할 때다. 범죄에 대해서는 사실에 근거한 조사와 합리적인 사법절차를 적용하고,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적절한 치료와 재활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정신질환을 막연히 폭력성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편견을 내려놓지 않으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치료가 남용될 우려가 있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