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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11 17:55 수정 : 2018.12.12 14:24

이강재
서울대 중문학과 교수

강사법이 진통 끝에 통과되었다. 지식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법의 조기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관련 예산이 국회에서 막바지에 삭감된 것은 큰 아쉬움이다. 또 그동안 법 제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부작용을 도외시한 면이 있다. 이제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후속 논의가 필요하다.

첫째, 강사의 편법운영을 막아야 한다. 현실적인 여건상 이 법의 시행 이후 강사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강사의 편법운영은 강사의 일자리를 훨씬 더 줄어들게 만들어 결국 강사법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대학의 편법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시작되었다. 강의를 대형화하고 전임교수에게 더 많은 교과목을 강의하도록 요구한다. 어떤 대학은 교수들이 매 학기 20시간 넘게 강의하고 있다. 시간강사를 없애고 연봉 2천만원 수준에서 매 학기 4개 이상의 교과목을 강의하는 강의전담교수를 두는 곳도 있다.

편법운영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편법을 쓰고 있는 대학의 실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더 이상 편법을 쓰려는 대학을 막으려는 것인 동시에 이미 쓴 편법을 되돌리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각 대학에서 지난 몇 년 동안 강사를 채용한 현황과 내년 이후 강사를 채용하는 현황을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강사 운영 변화와 편법을 파악할 수 있다. 다음으로 비정규직 단기계약교수를 늘리려는 대학을 경계해야 한다. 많은 대학들은 강사를 채용하는 대신 1~2년 단위로 계약하여 해촉이 자유로운 강의전담교수를 늘리고 있다. 이는 강사에 비하여 더 나을 것도 없는 급여와 근무조건으로 박사학위 취득자에게 매우 나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대학 평가에서 교수 정원 대비 정규직 교수의 채용 비율을 높게 평가하되 강의전담교수 등은 교수 충원율의 계산에서 완전 배제해야 한다.

둘째,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들의 강사 진입에 장애가 없어야 한다. 신규 강사를 위한 쿼터제로 이 장애를 없앨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학의 강사 운영 현실과 강사법에 따를 때 초기에 강사로 진입하지 못한 사람이 나중에 강사로 진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또 3년 이후 재임용에서 탈락한 강사는 기존의 교원들과 마찬가지로 교원소청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이것이 강사의 신분안정성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교원소청이 남발되거나 기존의 강사를 재임용 탈락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3년 이후 신규 강사를 채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강사의 재임용 탈락과 교원소청에 대한 면밀한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소수의 학생이 수강하고자 하는 교과목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다양한 학문의 종자보관소 구실을 해야 한다. 그동안 소외 학문 분야의 경우 소수의 수강생만 있어도 강의가 개설되도록 인정해주는 경우가 있었다. 이제 이러한 강의의 폐강을 막기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교육부에서 마련한 강사법 관련 예산에서 이처럼 보호해야 할 분야임에도 수강생이 적은 강좌의 개설에 재정 지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비전임 박사에 대한 별도의 연구지원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학은 연구자의 길을 가는 후학들에게 강의 경험을 쌓게 해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연구보다는 강의를 잘하는 사람에게 강사 자격을 부여할 가능성이 크며 기존의 강사가 신규 강사보다 강의를 잘할 개연성이 크다.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에게 새로운 강의 경험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 때문에 훌륭한 연구자들이 국가의 지원을 통해 자신에게 적합한 연구자의 길을 갈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에서 시행 중인 ‘학술연구교수제도’ 등을 한층 확대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국가박사’와 같은 제도를 사례로 볼 수 있는데, 가령 박사학위를 가진 연구자에게 7년 동안 연구비를 지원해주되 연구 결과에 대한 평가를 통해 최대 3회까지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예다.

다섯째, 대학원 운영에 대한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인 정책이 있어야 한다. 강사법의 대상이 되는 강사의 문제는 강사를 양성하는 대학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학원 정책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재양성 전략의 하나여야 한다. 단기적으로 강사법을 통해 그동안 소외되고 보호받지 못한 강사들이 좀 더 나은 여건 속에 있도록 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인 해결은 지식생태계를 대하는 국가 차원의 정책을 통해서 가능하다.

오랜 기간 등록금 인상 억제, 재학생 감소 등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온 국내 대학들은 강사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부분 대학들이 겪는 재정적 어려움을 위해 정부에서는 강사법 관련 예산의 추가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사는 함께 학문을 해나가는 동반자이며 대학 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현재의 강사를 제대로 대우하는 것은 미래에 학문을 하겠다는 학문혁신세대를 제대로 양성하는 길이다. 이 법의 올바른 정착을 통해 대학의 지식생태계가 건강하게 살아날 수 있도록 후속 논의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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