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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5 17:52 수정 : 2018.12.26 09:27

황금중
연세대 교육학부 교수

교육 현실에서 학부모의 영향력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절대적이다. 학부모는 한국 교육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온 동시에 교육의 탈선에도 깊이 관여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부정적 영향이 더 커 보인다. 학부모의 혼돈과 욕망이 우리 교육을 그 본연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정책 중에 자유학기(년)제가 있다. 입시체제 속에서 학업에 쫓겨 내달리기만 하는 아이들에게 일정 기간 시험 부담을 줄이고 숨통을 터주면서 삶을 돌아보는 성찰과 체험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초등학교에선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무시험 정책이 확산되고 있는데, 이 역시 아이들이 일반적인 학업 부담으로부터 벗어난 환경 속에서 보다 자율적인 성장을 꾀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런데 이런 정책들이 애초 취지와는 정반대의 암울한 결과를 낳고 있다. 분명 아이들에게 자율과 여유를 되돌려 주자는 정책인데, 오히려 더 큰 학업적 압박을 가하는 정책이 돼버린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 시간은 시험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유의 시간이 아니라 밤늦게까지 학원을 맴돌며 선행학습에 집중하는 시간이 돼버렸다. 이 기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고 선행학습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입시 및 모든 삶의 경쟁과 진로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라는 상황 인식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자유학기제, 무시험제의 정책은 역설적으로 입시체제를 중학교, 초등학교 단위로 전면적으로 확산시키고 공고화하는 요인이 돼버렸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까지 이른 데에는 학부모의 자녀에 대한 걱정과 자기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사교육이 이런 상황을 부추기고 끌어간다지만, 결국 사교육도 이런 공포와 욕망의 사슬에 묶인 학부모의 의식 기반이 있기에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실행된 대부분 교육개혁 정책은 그 취지와는 다른 결과를 종종 불러왔고, 특히 입시 경쟁의 맥락에서 왜곡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교육정책도 소정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겠다는 회의마저 든다. 물론 여기에는 그간 제기된 정책들이 종종 현실과 괴리된 문제, 정책의 정치화의 문제, 그리고 학교 현장의 잘못된 관성의 문제 등이 있었고 이는 엄중하게 짚어봐야 한다.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 등장한 좋은 정책 취지도 여지없이 빛을 잃고 역효과를 낳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 원인의 중심에는 교육주체들, 특히 학부모들이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려 없이 자녀의 입시 성공을 둘러싼 이익 추구의 관점에 서서 정책 취지를 훼손하는 문제가 있다.

자녀의 안정된 미래는 부모로서 당연히 염려하며 모색해갈 바임에는 틀림없다. 경쟁의 환경과 룰을 완전히 벗어날 것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적응과 감내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염려와 모색은 일정한 합리성, 즉 교육 본질의 구현이나 건강한 교육공동체 구축이라는 대의를 둘러싼 공공의 책임감을 일정하게 자각하고 견지하며 적정선에서 이뤄가야 할 것이다.

학부모 의식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물론 인간의 내면적 관성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장기적 과제이며 온 국민의 지혜와 열정의 결집을 요한다. 그러니 이 과제는 과제대로 수행해가면서 당장 병세를 완화할 수 있는 조처도 필요하다. 그 하나는 이렇듯 교육적 관점에서 아직 신뢰받기 어려운 현재의 학부모 의식이 개입할 여지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학부모의 욕망이 꿈틀거릴 틈을 주는 자유학기(년)제나 무시험제 같은 정책을 원천에서 재고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 대신 학교가 그 빈 곳을 채우는 구실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인성과 지성을 기르는 교육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학교, 지식교육의 방면에서도 아이들의 깊은 공감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학교, 사교육의 선행학습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음은 물론 사교육이 침투할 여지를 주지 않을 만큼의 충실한 수업과 프로젝트를 일상화하는 학교를 만들어가야 한다.

사실 학교를 이끄는 교사, 교육행정가, 교육전문가 일반도 대부분 학부모 노릇을 겸한다. 학부모들 전반의 교육 의식 및 철학이 한 단계 상승할 때 한국 교육은 그 고질적 병폐를 넘어선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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