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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31 18:15 수정 : 2019.01.31 20:07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안화력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사망사고 추모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안화력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사망사고 추모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씨

평생을 하나뿐인 아들 용균이를 보며 살고 싶어서 품에서 떼어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용균이가 입사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외식을 함께 했습니다. 다음날 용균이는 집을 나섰습니다. 엄마·아빠는 아들과 같이 지내지 못하고 헤어져야 해 섭섭한 마음이 컸습니다. 용균이도 아쉬워하던 표정과 몸짓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용균이가 일자리를 찾아 처음으로 갔던 곳,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그곳에서 용균이는 고작 3일 안전교육을 받고 겨우 길만 알 정도인 상태로, 4㎞에 이르는 석탄 운송 설비를 혼자 점검했습니다. 혼자 그 많은 일을 해야 했던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들이 일하면서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깊이 파고드는 괴로움을 어찌할 줄 모르겠습니다. 아들이 일하다가 식사 때를 놓치고 짬 내서 겨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사고 난 날 정신없이 태안으로 아들을 보러 왔고, 탄가루로 얼굴이 새까맣게 덮인 상태로 온몸이 찢겨 두 동강 나 싸늘히 식어버린 시신 앞에서, 저는 믿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꿈이길 바랐지만 차츰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제 아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무엇이 잘못되어서 제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신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울부짖으며 짐승처럼 소리 내어 악을 쓰며 울어댔습니다.

저는 알아야만 했습니다. 아들이 왜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이 잘못된 건지 꼭 알아야만 했고, 마침내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인 한국서부발전. 정부와 정치인, 대기업 등 기득권 세력은 구조적으로 비정규직을 만들었고, 최소한의 인건비로 최대한의 이윤을 뽑으려고 아무 안전시설 없이 비정규직을 다치고 죽게 만들었고, 사람이 죽어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허술한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수만명이 인명 피해를 입었는데 기업 대표 등 책임자들이 처벌을 받기는커녕 공공기관은 무재해 상을 받고 몇십억원의 세금 감면 혜택까지 받았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기업들만 살 수 있고 비정규직인 서민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 용균이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지옥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용균이 동료들도 죽음의 위험에서 빨리 벗어나길 바랍니다.

조금 있으면 떡국을 먹는 설날이 돌아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설날엔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다른 사람들도 보고 싶은 자식들 볼 생각에 들떠서 기다리겠지만, 저는 명절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시가나 친정에 가지 않을 작정입니다. 지금 심정이면 평생을 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들을 잃은 지 두달 가까이 되는 동안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에게 수십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모두 다 비정규직들의 힘든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마음이 착잡하고 아팠습니다. 그리고 추모 집회에서 제가 쓴 글을 듣고 같이 마음 아팠다는 편지글을 다 읽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울면서 다짐했습니다. 우리 용균이처럼 억울한 죽음을 더 이상 만들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면 주저 말고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하고, 책임자들을 엄중 처벌하고, 용균이 동료들이 빠른 시일 내에 정규직으로 전환돼서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대통령이 나서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서 빨리 우리 아들 용균이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대통령이 결단해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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