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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28 18:13 수정 : 2019.03.01 13:35

김용희
강원 영월군 영월읍·하늘샘 지역아동센터장

이 일을 13년 동안 했다. 주 6일을 밤 10시까지 고되게 일했지만, 스스로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어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 좋았다. 초기에는 주로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이 많았다. 방학을 하면 갈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지역아동센터는 놀이터도 되고 부족한 공부를 같이할 수도 있는 공간이었다. 다른 일을 하고 있던 남편은 일이 끝나면 와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거나 뒷정리를 도왔다. 일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지났을 즈음, 군청에서 운영비가 지원되면서 사회복지사를 한명 충원할 수 있었다. 혼자 해오던 일을 사회복지사와 나눠 하니 훨씬 수월했다. 해마다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운영비가 올랐다. 급여도 아슬아슬하게 최저임금을 맞추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 연말 지역아동센터 운영비가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 10.9%에도 못 미치는 2.5%만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인상률로는 최저임금을 맞춰주기도 어렵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는지, 보건복지부는 선심 쓰듯이 아동 프로그램비 5%를 빼서 인건비에 보태라고 한다. 한달에 500만원도 안 되는 운영비로 2명의 인건비를 해결하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비를 지난해에는 기존 15%(전체 운영비 대비)에서 10%로 줄여서 쓰라고 하더니 급기야 올해는 그마저도 5%만 쓰고 나머지 5%는 인건비로 충당하라는 것이다.

한달 운영비로 지원받는 499만원의 10%는 49만9천원에 불과하다. 보통 책정되는 기준인 아동 29명을 기준으로 한달 20일씩 하는 프로그램을 고려하면, 아동 1명당 하루 860원이 지원되는 셈이다. 이마저도 5%로 줄이면 하루 500원도 안 되는 것이다. 인건비와 프로그램비를 빼고도 난방비, 공공요금, 차량비 등도 해결해야 한다. 매달 내는 임대료는 당연히 별도다.

학교가 방학을 하면 지역아동센터에는 아이들 30여명이 아침 8시 반부터 저녁까지 좁은 공간에 머문다. 워낙 좁다 보니 걸어다니는데도 부딪쳐서 싸움이 나는 건 예삿일이다. 지난겨울에는 탁구를 쳤는데 올해는 볼링을 치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갔더니 센터에서 보지 못한 해바라기처럼 환한 웃음을 보이며 좋아한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한시간씩 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돈이 없어서 못 해준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 마음을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는지 더 치자는 아이도 없다. 다행이라기보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쉽게 포기하는 것이 훈련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마음이 자꾸 걸렸다.

해결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국회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여 아이들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프로그램비와 운영비를 보장하고 종사자 인건비는 사회복지시설 단일임금 체계를 적용해 별도로 책정하는 방안이 있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도 마땅히 할 게 없어서 억지로 계속하게 되는 그림 그리기 대신 축구나 볼링도 하고 바이올린도 배우면서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을 감수성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종사자들은 지역아동센터를 더 이상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하는 곳으로 여기지 않고 아이들의 존엄을 당당하게 지켜내는 존엄한 교사가 될 것이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면, 하나님이 미하일이라는 천사에게 던진 세가지의 질문이 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제 국가가 답할 차례이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교사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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