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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04 17:59 수정 : 2019.03.04 19:27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초·중등 교육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고, 가계 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도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가 바로 고교 무상교육이다.

문제는 ‘소요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이다. 고교 무상교육을 실현하려면 연간 2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박근혜 정부 시절, 고교 무상교육을 공약했다가 추진하지 못했던 이유도 재원 문제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고교 무상교육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 애초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2020년부터 실시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올해 2학기부터 고3, 2020년 고2, 2021년 고1까지, 애초 계획보다 1년 앞당겨 실시하겠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재원 문제에서 또다시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교육부는 예산 확보를 위해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교육부는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기재부는 현재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는데다 내국세의 20.46%로 고정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최근 세수 호황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추가 재원이 없어도 고교 무상교육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기재부의 입장은 지방교육 입장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우선, 지방교육재정에 여유가 없다. 최근 일선 교육 현장에는 석면 제거, 내진 보강, 미세먼지 대책에 따른 공기정화장치 설치, 학교 내 샌드위치 패널 해소 등 학생 안전과 관련한 예산 증가 추세가 가파르다. 더불어 초등 돌봄교실 확충, 공립유치원 취원율 확대를 위한 단설·병설 유치원 신설, 용역근로자 직접고용 등 새로운 교육 수요가 매년 발생하지만 교육청은 상당 부분을 자체 재원으로 충당하면서 공교육의 국가 책임 강화를 위한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해왔다. 만약 교부금에서 고교 무상교육을 해결하라고 한다면, 교육청은 ‘무상교육을 포기할 것인가, 학생 안전 사업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약속은 중앙정부가 하고 돈은 지방정부가 내는 방식은 비윤리적이다. 이미 그런 비윤리적 정책 추진의 전례가 있다. 바로 박근혜 정부 당시의 ‘누리과정’ 파행이다. 박근혜 정부는, 스스로 공약했던 유아 무상교육 예산을 지방교육재정에서 지출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각 시·도교육청의 재정압박으로 이어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갈등은 물론 보육대란으로 이어진 바 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그 전철을 답습한다면 다시금 불필요한 갈등이 불거짐은 물론 정부의 공약 이행을 위해 지방교육 부실화를 강요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수 호황 운운은 근시안적이다. 3년 뒤 우리 사회 경기가 어떨지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지금의 세수 호황이 계속될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당장의 세수 호황을 근거로 지방교육재정에서 고교 무상교육 재원을 부담하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짧은 생각인가. 혹시나 ‘3년 뒤에는 세수가 줄더라도 학생 수도 줄어들 테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현재의 교육 현장은 학생 수는 감소하고 있지만 신규 택지 조성으로 인한 학교 신설이 잇따르며 학급 수, 교원 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어서 인건비 등의 재정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40년 이상 경과된 학교 시설물이 14%나 되는 상황에서, ‘미래교육’을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 등 다방면의 예산 투입 요구도 상당하다. 요즘 기재부의 판단은 마치 ‘군인 수가 줄고 있으니, 국방예산에서 복지예산을 빼 써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결론이다. 매년 2조원 이상 소요되는 고교 무상교육을 기존 지방교육 재정으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논란이 알려지면서 교육 현장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대로 올 하반기부터 고교 무상교육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인지 우려하고 불신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해법은 간단하다. 현재 내국세의 20.46%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을 인상해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이 고교 무상교육 공약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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