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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07 17:39 수정 : 2019.03.08 09:27

김동진
서울교통공사 고객안전처장

2014년 <뉴욕 타임스>가 무려 161년 전 기사에 대해 정정보도를 한 일이 있었다. 1853년 1월20일자 신문에 실린 ‘솔로몬 노섭의 억류와 귀환에 관한 이야기’라는 기사에서 납치 사건의 피해자인 솔로몬 노섭(Solomon Northup)을 한번은 노스롭(Northrop), 또 한번은 노스럽(Northrup)으로 잘못 표기했던 것이다. 보도 후 오랜 시간이 지난데다 기사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작은 표기 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뉴욕 타임스>의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3년 전 서울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캐노피(지붕)가 포스트잇으로 뒤덮인 일이 있었다.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에 위치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된 안타까운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공분과 관심 속에 사건 현장과 가까운 강남역 10번 출입구에는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졌고 촛불 추모 문화제까지 열렸다. 그런데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서울교통공사에 예상하지 못한 민원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언론들이 기사 제목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표기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지하철 강남역에서 살인사건이 난 것으로 오인한 것이다. 이후 강남역 화장실은 공포의 대상이 됐다. 오보와 사실의 모호한 경계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사건이 발생한 지 수년이 흘렀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강남역을 검색했을 때 여전히 ‘강남역 살인사건’이 연관 검색어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지하철 역명이 사건명으로 고착화된 또 다른 사건이 있다. 일명 ‘이수역 폭행 사건’. 지하철 이수역에서 폭행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수역 인근 술집에서 남녀가 말다툼을 하다가 일어난 쌍방폭행 사건이다. 언론에서 이를 ‘이수역 폭행 사건’으로 보도하면서 이수역은 강남역과 마찬가지로 포털 사이트 연관 검색어에 ‘이수역 폭행 사건’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올해 들어서도 1월15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 대로변에서 친구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암사역 칼부림’ ‘암사역 흉기 난동 사건’ 등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사건과 연관성이 없는데도 언론 보도에 개인의 이름이나 기업명, 지역명 등이 잘못 사용될 경우 이른바 ‘낙인효과’에 의해 부정적 인식이 지속될 수 있다. 물론 언론은 사건·사고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또 기사 작성의 편의성을 위해 누구나 알 수 있는 지하철 역명을 활용해 기사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표기로 누군가가 기사를 오인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정정되어야 마땅하다.

이로 인해 생기는 2차, 3차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강남역은 하루 이용 승객이 국내 최대 규모인 28만명에 이르고 상가 250곳이 입점해 있어 유동인구가 100만명이 넘는 명실상부한 서울의 랜드마크다. 하지만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폭행이 발생하는 지하철역을 어느 누가 안심하고 이용하려고 할까. ‘서울 강남’이라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곳이자 외국인이 즐겨 찾는 관광 명소로 이름난 강남역을 우리 스스로 최악의 장소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서울교통공사에서는 ‘안전한 지하철’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 홍보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지만 부정적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1인 미디어의 발달로 이제는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는 매체가 될 수 있기에 언론의 공정함과 정확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 특히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보도는 단어 선택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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