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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1 17:46 수정 : 2019.04.12 13:44

최병택
공주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는 검정제로 발행되고 있다. 그런데 현행 검정 제도는 집필자와 편집자의 창의성을 제한하고, 새로운 내용과 가치가 교과서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 개발자는 정부가 제시하는 집필기준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 기준에는 내용 요소뿐만 아니라 집필의 방향까지 자세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보니 교과서 내용이 천편일률적이었고, 서술 내용도 진부했다.

일례로 예전의 역사 교과서는 집필기준의 영향으로 3·1운동을 전민족 단합을 보여준 운동으로 그렸다. 하지만 3·1운동은 평화를 지향하고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한, 실로 세계사적 의의가 있는 사건이었다. 학계에서는 이렇게 새롭게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논의가 오래전에 시작되었는데, 정작 미래 세대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는 아직도 1970~80년대의 서사를 고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역사가 지닌 보편적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던 것이다. 최근 들어 집필기준의 내용이 소략화하고 있어 예전과 같은 문제가 완화될 여지가 생겼지만, 집필기준이 살아 있는 한 언제든 규제는 다시 강화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역사 교육은 1970년대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집필기준은 1970년대 유신 시절에 만들어진 편찬준거의 잔재다. 그 시절 편찬준거는 특정 사람들의 역사관을 교과서에 담도록 강요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성격의 문서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역사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검정 절차에 내재된 문제도 있다. 현행 검정제는 내용 오류를 확인하는 기초 조사, 검정 기준에 적합한지 따지는 본심사, 수정 지시에 응했는지 살피는 이행 적합성 확인 등의 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검토해야 할 교과서의 분량에 비해 기초 조사 기간이 짧은 편이다. 조사위원들이 충분한 여유를 두고 내용 오류를 잡아내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위원들은 예전 교육과정 때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 내용과 얼마나 다른지 정도를 단순 비교하는 식으로 출원본의 내용 오류 여부를 판정하곤 했다. 예전에 쓰던 교과서에는 그사이 학계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내용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기준점이 되는 한 새 교과서에 새로운 내용이 담기기 어렵다.

본심사에서 검정 출원본에 대한 합격 결정을 내릴 때 자의성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는 점도 문제다. 만일 심사위원이 특정한 사안에 유난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자신의 생각대로 내용이 구성되지 않았다고 불합격 판정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검정 통과 여부에는 교과서 출판사의 사활이 걸려 있다. 기초 조사와 이행 적합성 확인 과정에서 행여라도 ‘오류’가 지적된다면 불합격 처분을 받게 된다. 출판사 쪽은 예전 교육과정 때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를 참고해 교과서를 만드는 게 안전하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오류를 바로잡기도 쉽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관점을 바꾸어 서술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역사 교과서가 민주 시민 양성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집필기준과 같은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다음 교육과정 때부터 인정제 혹은 자유발행제로 전환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좋은 교과서는 미래 지향적이면서도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 현행 교과서 발행 체제에서는 좋은 교과서가 제대로 나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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