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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3 18:23 수정 : 2019.10.24 02:08

박세철

지방분권전남연대 공동대표·전직 고등학교 교사

최근 서울 강서구의 송정중학교가 불과 1㎞ 떨어진 신도심의 아파트 단지 내에 신설될 마곡2중학교 때문에 폐교될 위기에 처하자, 해당 학교의 학생·학부모·교사들이 반대 운동을 일으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서울시교육청이 내년 3월 개교 예정인 마곡2중학교와 송정중학교 간의 통폐합 계획을 취소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정부의 학교 통폐합 정책에 관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서는 관내 초·중학교의 학교 규모 거대화와 학급 과밀화, 학교 설립 위치 편중 등의 문제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고충이 심하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학교에서 안정된 면학 분위기 속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당국이 각급 학교를 적절한 곳에 적정 규모로 설립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교사들도 학습지도나 생활지도가 어렵기 때문에 교육과정의 안정적 운영이 용이하도록 작은 학교, 작은 학급으로 만들어주기를 소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10여년 전부터 “화순읍의 제일중학교를 읍내 북부지역으로 이전하고 그 터에 초등학교를 신설하자”고 주장했다. 대중교통이 발달된 지역이 아닌데 신도심인 북부지역에는 초등학교만 있는 반면 남부지역에는 중학교만 있어, 학생들의 통학 거리에 애로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당국에서는 그동안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학교가 적정 규모를 유지하지 못하면,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이 어렵고 재정 비효율성이 증가한다”는 이유로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과 ‘거점고등학교 설립 정책’을 강행했다.

교육당국에 따르면, 현행 교육부의 ‘학교 신설 원칙’은 신설 대상 학교의 여건 차이(도시지역, 도시 주변지역, 농어촌지역 등)를 외면한 채, 초등학교는 36학급 이상, 중·고등학교는 24학급 이상의 규모여야 하고 ‘초·중·고 통합운영학교’이거나 ‘복합화 기능’(관련 시설의 지역주민 공동활용)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소규모 학교 3곳을 통폐합할 경우에만 허용하도록 엄격히 제한돼 있다. 학교 한곳을 신설하는 데 최소 300억원 이상(부지매입비 포함)이 소요되는데, 예산이 100억원 이상 들어갈 경우 교육부의 중앙투융자심사위원회 승인을 얻도록 규정돼 있다. 앞에서 열거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학교 신설이 승인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국가는 학교를 지을 때 집에서 가능한 한 가까운 곳에, 안정된 학습 환경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적정 규모로 설립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행 교육 관계법령상 ‘학교 설립 위치’(통학 거리 제한 등)나 ‘학교 규모 상한선 제한’에 관한 규정은 없다. 국가가 학생들에게 통학 시간이 사회 통념상 지나치게 많이 걸리는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거나 ‘콩나물교실’에 몰아넣는 행위는 헌법 제31조(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를 위반하는 셈이다. 그동안 국가의 차별로 불편을 감수해왔거나 현재도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의 피해는 누가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가.

최근에는 학교 신설에 대한 기대를 접고, 차선책으로 “제일중학교와 제일초등학교의 자리를 맞바꾸는 방식으로 단순 이설에 나서자”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 이설’의 경우 교육부 예산 지원은 전혀 없고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재원을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중앙투융자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정부가 ‘지방분권정책’ 추진 사업의 일환으로 ‘학교 신설 권한’을 대폭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교육부가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을 철회하고 학교 신설 및 이설 승인 기준을 완화해줄 것을 요청한다. 이밖에도 정부가 이미 추진 중인 ‘생활 에스오시(SOC) 사업계획’을 수정해, 그 속에 ‘초·중학교 터 이전 및 노후 교사(校舍) 재건축’ 항목을 삽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교육부는 전라남도교육청의 ‘작은 학교 살리기 정책’에 전향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회균등에 기반한 교육에 좀더 애쓰는 정부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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