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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3 18:15 수정 : 2019.11.04 14:48

크리스토프 들루아르

‘국경없는 기자회’ 사무총장

2013년 유엔 총회는 ‘국제 언론인 범죄 면책 종료의 날’을 지정했다. 이후 해마다 11월2일은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에 대한 면책 조치와의 싸움을 기리고 있다. 현재 언론인 대상 범죄의 90% 이상이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전시 상황이든 아니든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이런 범죄 가운데는 특정한 환경 등의 요인에 따라 그 의미가 특별한 살인 범죄들도 포함된다. 그래서 이 싸움은 더욱 절박한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10월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벌어진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은 오랫동안 잊혔던 ‘국가 범죄’다.(카슈끄지는 사우디 왕정에 비판적인 언론인이었다.) 당시 사건은 사우디 정부 폭력배들이 자행하고 정치적 의도로 계획된 것이었다. 이후 리야드에서 열린 재판 내용 역시 정치적 의도로 은폐되고 말았다. 모든 결과가 명백하게 밝혀지고 정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 사건은 정권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길 것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뒤늦게 “카슈끄지의 암살은 나의 감시 아래 벌어졌다. 그러므로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인정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녜스 칼라마르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특별보고관은 카슈끄지의 죽음을 ‘국가 권력에 의한 초법적 사형’으로 규정했으며, “국가 범죄는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런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카슈끄지가 사랑했던 이들이 그의 유해를 기다리는 것처럼, 정의가 실현되기를 염원한다. 비공개 재판은 국제 사법 기준에 어긋난다. 우리는 사우디 사법부가 가해자 중 5명에게만 사형을 선고했다는 사실보다, 이 판결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는 이들을 영원히 침묵하게 한 것이 더 유감이다.

비극적 사건 뒤에도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상식적 폭력을 행사하며 언론인들을 박해하고 있다. 사우디 감옥에 임의로 구금된 직업 언론인 및 비전문 언론인만 해도 최소 32명에 이른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쥔 뒤 두배로 늘어난 수치다. 아라비아반도뿐만 아니라 사우디의 영향력이 미치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이렇게 공포감이 컸던 적은 드물다. 그런데도 현재 리야드에선 12월 초에 있을 미디어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논한다는 ‘사우디 미디어 포럼’에 외국 언론인과 언론 전문가들이 초청됐다. 이 포럼의 진정성을 믿고 싶지만 소설 같은 이야기가 될까봐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10월 국제사회의 분노 속에,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독일은 카슈끄지 암살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몇몇 인사에 대해 제재 조치를 채택했다. 하지만 사우디 정권의 폭압적 정책을 완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한 것은 독일뿐이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채찍질 1천대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은 블로거이자 인권운동가 라이프 바다위의 석방이 사우디의 국제적 명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제안했다. 그러나 한달 앞서, 지난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단체사진 촬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맨 앞줄 자신의 옆자리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몰타의 부정부패 사건을 취재하다 살해된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의 아들, 인도 내 극단적인 힌두민족주의 성향의 인도국민당을 비판하다 총격을 받은 가우리 랑케시의 자매 등 의로운 기자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리고자 가족들은 오늘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희생자 명단은 갈수록 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2000년 이후 마약 카르텔과 폭력, 면책의 악순환에 희생된 언론인만 해도 최소 150명에 달한다.

주요 20개국 정상들은 책임있는 자세로 행동할 의무가 있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이 없다면, 인류는 지금 직면한 그 어떤 거대한 과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와 정부 지도자들은 언론인 살해 사건에 대해 소극적 방관자가 되어선 안 된다. 지금 사우디는 내년에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의장국을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주요 20개국이 사우디의 내년 의장국 소임을 일상적인 것으로 취급한다면, 사우디에 ‘살인 면허’를 주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각국 정상들이 사우디가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받아줄 것을 촉구한다. 그 첫걸음은 수감된 32명의 언론인 석방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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