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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5 18:20 수정 : 2019.12.06 02:36

정지우 ㅣ 문화평론가·<분노사회> 저자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비판과 낯섦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밀레니얼들이 가지게 된 가치를 옹호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보는 담론은 접하기 힘들다. 대부분은 그들이 어떻게 타락했는지, 혹은 어떻게 달라서 신기한지 정도를 이야기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다. 달리 말해, 가치 평가의 영역에서 밀레니얼의 가치관이 더 긍정적인 것이라 말하는 담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밀레니얼의 가치관이 정확히 어떠한지 특정하는 것부터 논란이 있겠지만, ‘거대 담론 또는 현실에서 자기 삶으로 이동’이라는 측면만은 비교적 명확할 것이다. 세상 자체를 거대한 대립이나 신념 체계, 혹은 역사적 발전 과정이나 민족적 승리, 모두가 동일한 현실에 속한다는 기존의 가치관을 벗어나, 자기 삶에 가장 근원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그로부터 세상의 모든 것을 대하려는 태도가 이 전환의 핵심에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우리 사회에 공고히 자리 잡아왔던 각종 집단주의적 문제들과 대척점에 있다. 집단을 위해 개인의 삶은 희생을 감수하고, 거대한 가치 아래 각자의 가치관은 배제되어도 좋다는 문화가 전방위적으로 공격받는 것이다. 개인보다 집단의 규율, 이념, 목표, 기준이 우선시되었던 시대는 이 새로운 세대에 의해 막을 내려간다. 대신 중요한 것은 각자의 삶이 가져야만 하는 풍요이고, 그것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밀레니얼의 출발점과 같은 것이다.

그런 확고한 출발점은 때로는 경쟁 자체를 긍정하고, 타인들을 짓밟고 자기만 성공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각자도생과 이기주의로 실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는, 오히려 내 삶에 어울리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모색하고 그에 집중하며, 따라서 그에 반하는 집단주의적 가치나 편견들을 거부하는 방향으로도 작동하고 있다. 기존의 전형적인 라이프스타일, 생애 주기 등이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래서 개개인은 저마다의 소소한 행복이나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생애 주기에 따라 살 가능성을 긍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는 대부분 집단주의와 얽혀 있었다. 모두가 집단적 옳음과 편견을 공유하고, 그에 부합하지 않은 이들을 ‘잘못된 이’로 낙인찍고 억압하는 일은 특히 ‘정답 사회’라는 이름으로 비판받았다. 또한 집단적인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개인의 삶의 영역들이 폄하당하고, 상명하복 아래 개인이 집단을 위해 희생되던 사회는 군대 문화 혹은 수직적 위계주의 문화라는 이름으로 거부되고 있다. 대신 밀레니얼들은 각자의 삶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 혼자 살거나 가족을 이루는 일조차 각자의 삶의 방식일 뿐이라는 인식을 확신시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자기 삶으로의’ 근본적인 전환이 삶 자체를 다시 생각하고, 더 진실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 사회와 문화에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저마다의 생활을 누리는 저녁 시간이 점차로 보장되거나 다양한 취미 영역들이 각종 문화 공간에서 성행하기도 한다. 나아가 비혼족이나 싱글족, 딩크족 등이 기존의 4인가족 못지않게 매력적일 수 있는 삶의 형태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새로운 측면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단순히 밀레니얼을 신기하게 관찰하거나 다르다고 인정하고 그칠 만한 점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온당한 방향을 고민하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이 도래한 가치에는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진실’이라 부를 만한 부분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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