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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11 16:38 수정 : 2015.01.11 21:09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의혹을 조사중인 국방부가 사령부 본부를 압수수색한 재작년 9월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내 사령부 현관 앞으로 한 직원이 들어가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뉴스 AS] ‘정치 개입’ 군 사이버사의 죄와 벌 ②
그들의 항변과 죗값은 합당한가
“내용 몰랐다”는 사령관의 항변, 재판부도 “납득 안돼”
집유·선고유예 판결 뒤 “군 성실히 복무” 봐주기 판결

2013년 10월14일치 <한겨레> 보도(▶ 바로 가기: 군 사이버사령부도 대선 ‘댓글 공작’ 의혹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06999.html)가 나간 뒤 ‘예상대로’ 군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가 “요원들의 개인적 활동”이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열심히 가렸습니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군은 “군인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그러면서 법의 ‘형식논리’를 끌어왔습니다. “직위를 이용하여 특정 정당, 정치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찬양, 비방하는 의견,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한다는 군형법 조항을 제시합니다. 그러면서 “직위를 이용하지 않았고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이 없었다. 따라서 정치관여가 아니다”고 주장한 것이지요.

“군인에게도 표현의 자유를 달라”?

결국 군법원은 이들의 ‘억지’를 타이르기 위해 ‘헌법과 역사 강의’를 해야 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 5조 2항은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라고 하여 공무원 신분과는 별도로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하고 있다”며 “헌법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별도로 국군의 중립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과거 군이 정치에 관여함으로써 헌정질서를 교란시킨 역사적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이버사 정치개입 사건의 핵심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군의 중립성은 아주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입니다. 1961년 박정희의 5·16쿠데타 이후 30년 가까이 군부독재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헌법에 군의 정치적 중립성 준수 조항이 포함된 때는 1987년 10월입니다. 그해 6월 민주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라는 민주사회의 기틀을 잡은 바로 그때입니다. 30년 가까이 군부독재에 저항한 국민들의 피와 땀이 이뤄낸 결과물입니다. 사이버사의 정치개입은 30년 군부독재의 아픈 경험과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얻어낸 소중한 성과들을 부정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라는 군대의 존재 의의만 떠올려봐도 군사이버사의 댓글작전이 그들의 존재 이유와 얼마나 거리가 먼 행동인지는 쉽게 판단이 가능합니다. 재판부 역시 이 점을 강조하면서 연제욱·옥도경 전 사이버사 사령관 등 피고인들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정치적 목적의 여부는) 정치적 의도가 추정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 것이지요. 재판부는 “일부 부대원들은 일부 작전내용이 너무 정치적이어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우려를 하고 있었다“며 “보고서엔 ‘지지여론 5%→20%’라는 식으로 여론변화 추이도 기재되어 있는 등 정치적 의견의 공표를 넘어 여론조성의 목적도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직위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530단은 매일 아침 이슈들에 대한 기사들을 출력하고 대응논리를 정리하여 작전 지시를 내렸고 그 결과를 보고했다. 이를 위해 부대예산으로 스마트폰, 태블릿 PC, 노트북 등을 구입했다면 이는 그 직위에 수반되는 직무권한이나 담당사무 등과 관련한 행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난 몰랐다”던 사령관이 레이저 포인트 집어던져

‘법 위반이 아니다. 만약 죄가 맞더라도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다.’

법정에 선 피고인과 변호사들이 죄를 부인하면서 항변하는 전형적인 말입니다. 연제욱·옥도경씨도 같은 식의 말을 했습니다. 연씨는 “오전 6시, 오후 5시 보고를 받으면서 문맥, 오탈자, 자구 수정 등을 점검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나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을 지지 또는 비판하는지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옥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납득이 안 되실 겁니다. 오죽하면 재판부도 판결문에 “이를 몰랐다는 건 일반인의 상식으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재판부가 이렇게 판단한 근거는 ① “별이 적립되면” 전사들이 깨어난다(▶ ①편 링크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672909.html)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들이 직접 530단의 댓글작전을 지휘·감독한 근거가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결과보고서를 자필로 수정하거나 메모지에 수정사항을 지시했고,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레이저 포인트를 집어던지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대응에 맞게 대응논리 작성할 것”, “이성적·논리적으로 작성(감성적인 내용과 욕설 금지)” 등 ‘사령관님 지시사항’도 드러났습니다. 재판부는 “감성적인 내용과 욕설의 금지를 지시하였다는 것은 이러한 내용의 댓글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연제욱 사령관의 후임인 옥도경씨는 그나마 취임 뒤 한달 정도만 연 사령관과 동일한 보고를 받았고 그 이후엔 아침 상황보고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역시 죄를 덜어내진 못했습니다. 옥씨는 “그 이후엔 오후 대면보고만 받았을 뿐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옥씨가 사령관으로 부임한 뒤 선임인 연씨에게 “내곡에서 온 정보가 있습니다. 시간되실 때 전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국정원 국정조사 관련 깊이 생각해 보고 대처바람” 등의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연씨의 휴대전화를 조사한 결과 확인됐습니다. (▶ 바로 가기: 대선 때 ‘사이버사-국정원 공조’ 단서 나왔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72529.html) 530단 부대원들도 모두 예외 없이 ‘작전 지시가 없었다면 정치 댓글을 달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쯤 되니 재판부가 “납득이 안 된다”고 한 겁니다.

이쯤에서 등장하는 법원의 ‘봐주기’

그런데 이런 모순을 지적했던 법원이 정작 판결에선 왜 이랬을까요. 군형법 위반은 물론이고 헌법을 부정한 이들의 행위에 대해 1심에 해당하는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재판장 중장 김정식)은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판결을 했습니다. 집행유예는 실형을 살지 않는다는 뜻이고 선고유예는 형의 선고를 일정 기간 동안 미룬다는 뜻입니다. ‘죄가 무겁지 않아서 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각각 집행유예(연제욱), 선고유예(옥도경)를 받았지만 두 사람에 대한 법원의 양형 이유는 비슷합니다.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군인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작전 수행에 있어 문제점이 없는지 지휘관으로서 확인하였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심리전 수행이라는 한가지 목표만을 생각하고 작전을 수행한 나머지 530단 부대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비판하면서 정치적 의견을 제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이로 인해 국민의 군에 대한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합리적인 토론을 통한 여론의 형성은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므로 국가기관이 특정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국민들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행위는 군사작전의 경우라도 그 긴급성과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이러한 측면에서 피고인의 죄책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상은 이들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가를 언급한 부분입니다. 이와 달리 이들을 봐주기 위해 끌어온 이유를 보겠습니다.

“북한이 사이버공간에서…국론 분열을 조장하고 군사도발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현실에서 530단 작전의 주된 목적은 북한의 대남 사이버심리전을 방어하고자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적법한 사이버심리전 수행을 위한 관련 법규정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점을 오로지 피고인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참작 사유로 고려했다.”

“부대원들이 저지른 범행의 구체적인 내용 전부를 알고 지시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동종 전과가 없으며, 30년 이상 군에서 성실하게 복무한 점 등을 고려한다.”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치적 의견의 공표를 넘어 여론조성의 목적도 인정된다”고 한 재판부가 같은 판결문에서 “주된 목적은 북한의 대남 사이버심리전에 대한 방어”라고 밝혔습니다. “내용을 몰랐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가 “내용 전부를 알고 지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군부대에서 부하가 사령관에게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보고를 해야 ‘사령관이 내용을 전부 알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으로서 책임이 무겁다’고 했다가 ‘○○○으로서 그동안 고생했기에 형을 깎아준다’는 논리는 이제 익숙합니다. 지난해 10월 증거조작 사건을 주도한 국정원 직원에게 “국정원 직원으로서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죄가 무겁지만 국정원 직원으로서 그동안 고생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재판장 김우규)의 논리와 닮았습니다. ( ▶바로 가기: 증거조작했는데 “국민 위해 봉사해왔다”며 집행유예? http://www.hani.co.kr/arti/SERIES/636/661958.html)

비판과 감시가 중요한 이유

군사이버사의 정치개입 사건은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사건과 함께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심각한 행위입니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은 그나마 ‘일반법원’에서 재판을 하는 덕분에 검찰의 부실수사나 법원의 봐주기, 국정원 직원들의 말 바꾸기 등을 시민사회가 감시할 기회라도 있습니다. 반면 군사이버사의 정치개입 재판은 언론이나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한된 군사법정에서 이뤄집니다. 군검찰은 이번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뜻을 밝혔지만 사이버사 정치개입 사건의 죗값을 물을 수 있는 실질적인 최종 단계인 항소심 역시 군법원에서 이뤄집니다. (군사재판도 일반재판과 마찬가지로 최종심은 대법원이 하지만 대법원은 양형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사이버사 정치개입 사건에 대한 군법원의 판단과 범죄행위의 심각성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비록 재판 하루하루를 지켜볼 순 없지만 적어도 판결 결과에 대한 비판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군사재판의 한계가 드러난다면 이를 계기로 군사재판을 폐지하거나 개혁할 수 있는 논의를 시작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와 관련한 문제 지적은 <한겨레>가 군사재판의 실태와 한계를 조명한 기획 기사(▶ 관련 링크 : 기울어진 군 사법의 저울 http://www.hani.co.kr/arti/SERIES/615/)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함께 지켜보자는 의미입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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