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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06 11:53 수정 : 2015.03.06 14:13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다룬 각 언론사 1면 머릿기사

[뉴스 AS]
주요 신문 1면 머릿기사…한겨레·경향 ‘피습’, 조선·중앙 ‘테러’
경찰 ‘살인 미수 혐의’ 적용…정치권은 한목소리로 ‘테러’ 규정
CNN·뉴욕타임스 ‘공격’ 표기…미국 전문가 “극단주의자 소행”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5일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김기종(55)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가 휘두른 흉기에 얼굴과 팔이 베여 80여 바늘을 꿰맸습니다. 김씨는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끔찍하고 유례가 없는 이 사건은 당연히 6일 아침 모든 신문의 1면 머릿기사로 보도됐습니다. 그런데 이를 전하는 각 신문의 제목들이 조금씩 다릅니다.

미국대사 피습…흉기가 된 ‘극단적 민족주의’ / 한겨레

습격당한 미국대사 그래도 “같이 갑시다” / 경향신문

한미 혈맹, 핏빛 테러 당했다 / 한국일보

한·미 동맹이 테러당했다 / 중앙일보

테러당한 한·미동맹…피습 美대사 “같이 갑시다” / 서울신문

초유의 美대사 테러…그래도 韓·美동맹 굳건 / 세계일보

韓美동맹 찌른 從北테러 / 조선일보

從北, 한미동맹을 테러하다 / 동아일보

‘미국의 얼굴’ 서울 한복판서 테러 당했다 / 국민일보

두 그룹의 차이를 발견하셨나요? 김씨가 흉기를 휘둘러 미 대사가 부상을 입은 사건을 일부는 ‘피습’으로 일부는 ‘테러’로 부르고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도 보수신문의 대표격인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사건을 테러로 규정한 반면 진보적인 신문인 <한겨레> <경향신문>은 ‘피습’이란 단어를 제목에 내세웠습니다. 물론 테러와 피습을 모두 쓴 신문사도 있습니다.

‘테러’와 ‘피습’이라는 단어는 개념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테러부터 차례로 입력했습니다.

테러(terror) 「명사」
1. 폭력을 써서 적이나 상대편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 ‘폭력’, ‘폭행’으로 순화.
2.『정치』=테러리즘.

테러리즘(terrorism)「명사」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조직적·집단적으로 행하는 폭력 행위. 또는 그것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사상이나 주의.

피습(被襲)「명사」
습격을 당함.

습격(襲擊)「명사」
갑자기 상대편을 덮쳐 침.

김씨의 행위는 테러일까요 습격일까요. 김씨의 말이나 과거 행동 등에 비춰보면, 김씨는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했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리퍼트 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까지 김씨의 행위에 조직적·집단적 배후가 확인되진 않았습니다. 종합하면, 김씨의 행위는 그것이 어떤 광기에 의한 것이라도 해도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행위에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배후가 확인된 바 없으니 현재로선 테러라는 개념으로 규정하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한겨레>는 이 같은 사실과 사전적 의미에 따라 테러보다는 더 포괄적인 의미의 습격이란 단어를 제목에 썼습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5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초청 강연에 참석했다가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가 휘두른 흉기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뒤 현장에서 검거된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운동 종로경찰서에서 수사받던 중 골절상 치료를 위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며 “한미 전쟁 훈련을 중단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언론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를 다루는 정치권과 검찰의 태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경찰은 김씨에게 살인 미수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통상적인 형사 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의 수사 지휘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맡겼습니다.(▶ 관련 기사 : 테러 간주 공안사건으로 다룰 듯…경찰, 살인미수죄 적용 검토)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대공 및 대테러 범죄 전담부서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테러 범죄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건 발생 직후 “한미 동맹에 대한 공격”으로 이번 사건을 규정한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야도 한목소리로 이번 사건을 테러라고 불렀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미 대사에 대한 테러는 한미 동맹에 대한 테러”라고 규정했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테러는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심각한 범죄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선 “정치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가 저녁 7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 회의에선 이번 사건을 ‘테러’라고 규정합니다.

그렇다면 ‘피해 국가’인 미국 언론들은 어떻게 보도했을까요?

‘CNN’과 <뉴욕타임스>는 모두 ‘공격(attack)당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CNN’은 “주한 대사가 칼에 베였다(slashed)”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사건의 배경으로 한국 내 좌파 운동가들을 거론하곤 있지만,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거나 김씨를 테러리스트로 부르는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국방·행정 분야 싱크탱크인 브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연구원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사회에서건 증오심을 품거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다. 이번 사건은 극단주의자의 소행이지 한국 국민에 의한 정치적 행동이 아니다”고 지적했습니다. 리처드 부시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도 같은 인터뷰에서 “충격적이고 말도 안 되는 범죄지만 공정한 마음을 지닌 미국인 대다수는 이번 일이 한국 주류 밖에 있는 극단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의 소행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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