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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08 16:32 수정 : 2015.05.09 00:30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새 원내대표(오른쪽)가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선출된 뒤 문재인 대표와 함께 두 팔을 들어올리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9

정당의 원내대표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국회에서 그 정당 소속 의원들을 대표하는 의원입니다. 국회법에는 ‘교섭단체 대표 의원’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원내대표입니다.

과거에는 교섭단체 대표 의원을 ‘원내총무’라고 했습니다. 원내총무는 사무총장, 정책위의장과 함께 당 3역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2003년 열린우리당이 ‘원내정당화’의 상징으로 원내총무를 원내대표로 격상시켰습니다. ‘총무’에서 ‘대표’로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당헌·당규에서 규정하는 지위와 권한도 강화되었습니다. 그 뒤 다른 정당들도 원내총무를 원내대표로 바꾸었습니다.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이변이 자주 일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국회의원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선거에는 ‘도사’들입니다. 그런 선거의 도사들끼리 모여서 선거로 대표를 뽑는 것이 원내대표 선거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쉽사리 예측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변 잦은 원내대표 선거

지난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주영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맞붙었을 때 대부분의 의원이나 기자들은 이주영 의원이 이길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많은 의원들이 “나는 개인적으로는 유승민 의원을 지지하지만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주영 의원이 당선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149명이 투표를 해서 유승민 의원이 84표, 이주영 의원은 65표를 얻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뻔히 알면서도 일종의 반란을 일으킨 셈입니다.

5월7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종걸 의원이 당선된 것도 이변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주류-비주류 분포로는 비주류가 주류를 이기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선거 전에 의원들이 당선이 유력하다고 가장 많이 예측한 사람은 조정식 의원이었습니다. 평소 인품이 원만하고 주류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정식 의원은 결선투표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가운데 이른바 ‘주류’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은 최재성, 조정식, 설훈 의원 세 사람입니다. 128명이 참가한 1차 투표에서 최재성 33표, 조정식 22표, 설훈 14표를 받았습니다. 비주류는 이종걸 38표, 김동철 21표였습니다. 주류-비주류 구도대로라면 2차 투표에서 최재성 69표, 이종걸 59표로 최재성 후보가 역전해서 당선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127명이 투표해 이종걸 66표, 최재성 61표였습니다.

이종걸 의원의 당선에 대해 몇몇 언론은 ‘문재인 대표의 4·29 재보선 참패 책임’, ‘친노패권주의에 대한 의원들의 견제’라고 해설했지만 그건 너무 관념적인 분석 같습니다. 현장에 있던 의원들은 ‘동정표’로 승부가 갈렸다고 했습니다. 원내대표 삼수를 내세운 이종걸 의원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할 수 없었던 주류쪽 몇몇 의원들의 표가 넘어가면서 이종걸 의원이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원내대표 선거가 끝난 뒤 각 언론은 이종걸 신임 원내대표만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습니다. 언론의 속성상 떨어진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지나간 선거 장면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7일 오후 2시 국회 본관 246호실에 가 보았습니다. 저는 4·29 재보선 완패와 전날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의결 실패로 분위기가 침울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후보들이나 의원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습니다. ‘선거의 도사들’이라 선거만 하면 엔돌핀이 솟아나오는 것일까요?

큰절·동정심 호소…표를 잡아라

사회를 본 한정애 의원이 “후보들 중에 비비크림을 바르고 나오신 분들도 계시네요”라고 웃음을 유도하며,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를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의 인사말이 끝나고 후보들의 연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첫번째로 나선 설훈 의원은 “여러분이 국민의 대표이시기 때문에 국민께 드리는 심정으로 큰절로 인사를 올리도록 하겠다”며 넙죽 큰절을 했습니다. 의원들 사이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실명을 거론해서 죄송한데 김기준 의원 방에 갔더니 자신은 이종걸 의원과 어릴 때부터 친구라서 이종걸 후보를 찍어야 한대요. 그런데 김기준 의원이 예뻐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열심히 잘하라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폭소가 또 터졌습니다.

“그런 분이 또 있었습니다. 유인태 의원은 조정식 의원을 찍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안찍겠다고 하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게 원내대표 선거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20대에 당선되면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하세요.”

설훈 의원은 남북 경의선 철도 연결을 공약했습니다. 원내대표 선거와 직접 관련이 없을 것 같은데 꽤나 진지하게 철도 연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종걸 의원은 아예 처음부터 동정심에 호소를 했습니다.

“오늘로 세번째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입니다. 열심히 뛰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 5200킬로미터를 다녔습니다. 저와의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연락이 되지 않아 차 안에서 날을 새면서 조바심을 냈습니다. 새벽에라도 만나주신 의원님들께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의원님들로부터 들은 많은 조언과 격려, 잊지 않겠습니다.”

“어제는 참혹한 날이었습니다. 분노의 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세월호 유족들의 뜻을 거스른 시행령이 발효되었습니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던 박상옥 대법관 인준안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일방적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우리 특위 위원들이 수십일에 걸쳐 땀 흘려 얻어낸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가 새누리당에 의해 휴지처럼 파기되었습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어제의 오만한 행태는 야당 무시를 넘어 의회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국민을 질식하게 한 것입니다.”

이종걸 의원의 절규형 연설에 곳곳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의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최재성 의원은 매우 진지하게 연설을 했습니다.

“이기고 싶습니다. 패배의 익숙함을 던지고 싶습니다. 4·29 선거에서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해법이 모이지 않는 것은 위기의 반영인 것 같습니다. 길지 않은 총선 343일, 무엇으로 우리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무엇으로 야당다운 야당을 한다고 평가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견제와 선명성 논쟁은 끝나야 합니다. 야당의 본령은 견제입니다. 대화와 타협도 필요하지만 야당은 견제입니다. 특히 총선을 앞둔 원내대표는 지상명령이 견제입니다.”

조정식 의원은 자신이 결코 온화하기만 한 정치인이 아니라며 원내대표에 당선되면 대여 강경투쟁을 벌이겠다고 했습니다.

“새누리당 비박 세력이 공적연금 개혁 쿠데타를 하려다가 친박과 청와대에 제압당한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거수기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작금의 사태를 책임져야 합니다. 당장 약속을 이행해 나갈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제가 18대 국회에서 우리당 의원들이 81명일 때 원내 대변인을 했습니다. 강기정·최재성 의원과 국회 사상 최장기 농성을 이끌었습니다. 의장 단상에 엠비 악법을 막기 위해 뛰쳐 올라갔습니다. 몇몇 의원들이 제가 온순해 보인다고 하지만 사실 저도 강한 남자입니다.”

김동철 의원은 ‘기호 2번’을 강조했습니다.

“내년 총선 때 유권자들에게 기호 몇번을 찍으라고 하실 겁니까. 기호 2번 아니겠습니까. 지금부터 기호 2번 찍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기호 2번 김동철입니다.”

“문제는 현장에 있고 답은 소통에 있습니다. 130명 의원들이 소통하며 집단지성을 발현하는 일, 그것이 소통의 리더십, 화합의 리더십, 이기는 리더십입니다. 뿌리부터 강한 정당, 디테일에 강한 정당을 만들어 응답하겠습니다.”

후보들의 연설이 이어지고 있는데 기자들 사이에 문자로 이상한 문건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새누리당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야당 원내대표 후보들에 대한 분석이었습니다. 대체로 야당 원내대표 후보들을 얕잡아 보는 내용이었습니다. 야당 의원들에게 좀 모욕적일 수 있지만 여당 사람들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니 그대로 소개하겠습니다.

새민련 원내대표 후보평가

■ 최재성
- 정세균계, 강경(공격적)
- 전략통, 돌파력이 강점이라고 홍보 중
- 가볍다는 평, 지도부.당직경험 없어 대응하기 용이
- 이완구 국무총리 표결불참으로 홍역

■ 김동철
- 비노, 민집모(민주당집권을위한모임), 온건(보수적)
- 호남 배려론으로 지지 호소
- 친노에 반감 많음
- 성격 급하고 다혈질, 대응하기 용이

■ 설훈
- 동교동계, 민평련, 친노
- 강경, 공격적
- 투쟁력과 전직 대통령 계승
- 독선적이고 말실수(자니윤 노인 폄하) 많아 우리측에 유리

■ 조정식
- 손학규계, 최근 친노 성향
- 온건, 평이한 성격
- 단결, 통합, 당직 경험으로 홍보
- 무난하다, 물렀다는 평, 우리측에 유리

■ 이종걸
- 민집모, 비노
- 온건, 중도 성향
- 3수생 읍소전략, 사정광풍과 대결?
- 게으르고 즉흥적이라는 평
- 4선 용퇴론으로 홍역
- 과거 수석부대표 당시, 우리측이 수월하게 협상한 대상

문건 내용을 본 새정치민주연합 당직자들은 무척 기분나빠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후보 5명 가운데 누가 당선돼도 여당이 다루기 쉬운 상대들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수 끝에 당선된 ‘비주류’ 원내대표

아무튼 연설 이후에 곧바로 투표가 진행됐습니다. 1차 투표 결과가 나오자 의원들은 술렁였습니다. 이종걸 의원의 다수 득표, 조정식 의원의 탈락을 보고 이변 가능성을 내다본 것입니다.

2차 투표까지 끝나고 이종걸 의원이 단상에 올라 인사를 했습니다. 더듬더듬 어설펐습니다. 자신의 원내대표 당선이 좀처럼 실감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당선 인사를 마치고 의원총회 산회 선언을 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새 원내대표가 7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이종걸 신임 원내대표가 의사봉을 두드리자 의원들 사이에 “우와”라는 탄성과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종걸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어 의사봉을 두드리는 장면 자체가 신기했던 것입니다.

이종걸 의원의 당선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이변이라고 하면서도 앞으로 주류와 비주류간 당내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전망했습니다. 원내대표라는 자리가 당대표만큼 권한이 많은 자리도 아니고 이종걸 의원이 문재인 대표와 심하게 각을 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근거였습니다.

이종걸 의원은 당내 계파별 분류에서는 비주류로 분류할 수 있지만 정책노선에서는 다른 비주류 의원과 달리 매우 진보적이어서 주류 못지 않은 ‘강경파’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문재인 대표와 정책노선을 둘러싼 갈등을 벌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당선자가 확정된 뒤 이종걸 신임 원내대표의 손을 들어준 문재인 대표의 얼굴도 환하게 밝은 편이었습니다. 하기는 과거에도 ‘비주류 원내대표’가 종종 있었지만 원내대표 때문에 당내갈등이 커진 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종걸 원내대표 당선, 비상 걸린 새누리·조중동

그러나 이종걸 의원의 야당 원내대표 당선으로 갑자기 비상이 걸린 곳이 있습니다. 새누리당입니다. 새누리당은 이종걸 원내대표 선출에 대해 7일에는 아무런 논평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이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이종걸 원내대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유승민 원내대표는 “당연히 축하한다. 삼수하느라고 고생했다. 76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다같은 76학번이다”라고 의례적인 덕담만 했습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다른 의원은 “우윤근 원내대표 때와 같은 여야관계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큰일났다. 당분간 국회는 멈춰선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습니다. 실제로 이종걸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투쟁을 전제로 한 대화”를 선언했습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합의 파기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에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했습니다.

비상이 걸린 곳은 또 있습니다. 8일 아침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협상 아닌 투쟁 선봉 서겠다는 야 새 원내대표’였습니다. <중앙일보>는 ‘새정치연합에 비노 원내대표가 탄생한 의미’였고, <동아일보>는 ‘문재인 이종걸 야 투톱의 강경투쟁은 적반하장이다’였습니다. 걱정스럽다는 태도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종걸 의원은 조중동에 매우 비판적인 정치인입니다. 장자연 사건이 났을 때 언론사주가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폭로해 법정소송까지 간 일이 있습니다.

이종걸 의원의 야당 원내대표 당선으로 당분간 야당의 행보가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여당이나 일부 언론은 곤혹스러울지 몰라도 정치부 기자들은 좀 바빠질 것 같습니다.

이종걸 의원이 누구인지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종걸 의원은 항일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손자로 1957년생입니다.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의원의 사촌동생입니다. 안양 만안초등학교, 서울의 예원학교 피아노과, 경기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대학은 1977년 성균관대에 입학했다가 군에 다녀와서 1983년 서울대 인문2계열에 입학했고 1987년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뒤 다시 서울대 법대 공법학과에 학사편입해서 졸업했습니다.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뒤에는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와 사무실을 함께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받아 안양 만안구에 출마한 뒤 지금까지 네 차례 연속 당선됐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관련 영상] 국회가 차린 ‘밥상’ 엎어버린 청와대 / <한겨레TV> 돌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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