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37
북, 8·25 합의 뒤 “우리가 주도” 애써 강조
올 신년사와 이번 합의 내용 상당부분 비슷
우리가 목함지뢰 사건으로 허둥댈 때
북한은 미리 큰 그림 그려놓고 움직인듯
박 대통령, 가을 외교 성과로 주도권 되찾길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켜야 하는 다급한 처지의 북한이 일시적으로 양보를 했을 것이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더 큰 도발을 준비할 것이다.” 그럴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냉탕과 온탕을 끊임없이 오고 갔습니다.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남북관계는 다시 갈등 국면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번 합의가 가져온 대화 국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지난 25일 0시 55분께 극적으로 타결됐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공동합의문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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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이번에 우리는 주동적으로 북남 고위급 긴급접촉을 열고 무력충돌로 치닫던 일촉즉발의 위기를 타개함으로써 민족의 머리우에 드리웠던 전쟁의 먹장구름을 밀어내고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북남 고위급 긴급접촉에서 공동보도문이 발표된 것은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해소하고 파국에 처한 북남관계를 화해와 신뢰의 길로 돌려세운 중대한 전환적 계기로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은 동지께서는 이번 접촉결과는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고 평화를 귀중히 여기는 숭고한 리념의 승리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운명적인 시각에 화를 복으로 전환시킨 이번 합의를 소중히 여기고 풍성한 결실로 가꾸어가야 한다고 하시였다.” 해석하자면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을 자신들이 주도했고 따라서 남북간 합의가 이뤄진 것도 자신들의 뜻이 관철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실일까요? 일단 북한이 남북 고위급 접촉을 ‘제의’한 것은 사실입니다. ‘고위급 접촉’ 미리 준비한 뒤 포격했을 것 지난 일을 좀 되돌아볼까요? 북한이 지난 20일 경기도 연천 서부전선에서 가한 포격은 오후 3시53분 14.5㎜ 고사포 1발, 오후 4시12분 직사화기 76.2㎜ 3발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오후 4시50분에 김양건 노동당 비서 명의 서한을 김관진 안보실장 앞으로 전달했습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라는 요구와 함께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경직된 시스템을 생각하면 김양건 비서의 서한은 포격에 앞서 미리 준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미리 준비한 서한을 전달하기 직전에 시간을 정교하게 계산해 포격을 가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듭니다. 그리고 북한은 다시 21일 오후 4시 김양건 비서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김관진 안보실장과 김양건 비서의 접촉을 공식 제의했습니다. 이 제의가 우리의 수정 제의를 거쳐 ‘2+2’ 고위급 접촉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저는 20일 1차 제의와 21일 2차 제의는 연결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북 고위급 접촉을 북한이 ‘제의’한 것에 그치지 않고 ‘주도’했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평가는 타당한 것일까요? 이번 합의는 자신들이 뜻이 관철된 것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궁금증이 풀리지 않던 차에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어느 정치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올해 초 김정은 신년사를 찾아서 여러 차례 다시 읽어보니 8·25 합의의 주요 내용이 신년사에 들어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신년사를 찾아보았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는 200자 원고지로 60장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게 긴 분량입니다. 그 중에서 남북관계에 관한 부분은 뒤쪽에 들어 있습니다. 신년사 전체 내용이 궁금한 분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남북관계에 관한 부분 가운데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가 지난 1월1일 평양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안 집무실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김 제1비서는 이날 남북 고위급 접촉을 재개할 수 있으며 분위기가 마련되면 남북 정상회담도 개최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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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과 남이 싸우지 말고 힘을 합쳐 통일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는 것은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입니다. 북과 남은 더 이상 무의미한 언쟁과 별치않은 문제로 시간과 정력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하며 북남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가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뜻과 힘을 합친다면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북과 남은 이미 통일의 길에서 7·4공동성명과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10·4선언과 같은 통일헌장, 통일대강을 마련하여 민족의 통일의지와 기개를 온 세상에 과시하였습니다.”
“우리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대화, 협상을 실질적으로 진척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전체 조선민족은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거족적 운동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 올해를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 놓는 일대 전환의 해로 빛내어야 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위급 회담이라는 표현으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해 당시 우리쪽 전문가들은 대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통일준비위원회의 제안은 사실상 거부하고 ‘고위급 접촉’-‘부분별 회담’(각종 장관급 회담)-‘최고위급 회담’이라는 북한식 대화 프로세스를 제안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8월25일 남북 합의 공동보도문을 살펴보면 일단 이번 합의가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에 의해 이뤄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합의문 1항은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6항은 “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 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 대목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땐 우리가 주도권 가져 저에게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를 읽어보라고 조언을 해준 그 정치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번 남북합의는 잘된 것이다.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데 사태가 정리된 뒤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북한은 뭔가 큰 그림에 따라 전략적으로 움직였는데 우리는 목함지뢰 사건으로 허둥대다가 북한의 ‘전략적 트랙’에 올라탄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남북관계의 주도권과 명분을 북한이 쥐게 된다.” 이런 분석이 맞다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 당시 남과 북의 스탠스가 15년 만에 정반대로 뒤바뀐 것이 됩니다. 저는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입니다. 따라서 2000년 당시 상황을 비교적 잘 알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훨씬 이전부터 ‘햇볕정책’을 자신의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햇볕정책은 그의 확고한 신념이자 철학이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정부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전략적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정부의 모든 대북정책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에 맞춰졌습니다. 남북교류 활성화, 금강산 관광 등이 그렇게 추진되었습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도 큰 틀에서 보면 냉전구조 해체라는 전략적 목표의 연장선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안보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햇볕정책의 제1원칙은 ‘북한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의 도발은 거의 없었습니다. 2002년 연평해전에서 우리 군인들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비판이 있지만 저는 당시 해군 사령부와 지휘관들의 책임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3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의 공동기자회견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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