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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24 14:16 수정 : 2016.04.25 17:27

각당의 총선 당일 표정. 왼쪽부터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한겨레 자료사진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72
지역갈등-1여다야 ‘장벽’ 붕괴된 20대 총선
민심은 왜 ‘권력지형 재편’을 명령했는가

4·13 선거 뒤 열흘이 훌쩍 지났습니다. 성난 민심은 파도가 아니라 쓰나미였습니다. ‘지역대립’과 ‘1여다야’ 구도라는 콘크리트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이제 서서히 물이 빠지고 잔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참패한 여권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닷새 뒤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도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짤막한 메시지를 내놓았을 뿐입니다. 국회와 협력을 정말로 할까요? 독선적 리더십을 바꿀 수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새누리당은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세우려다가 당 안팎의 역풍을 맞고 포기했습니다. 오는 5월3일 새 원내대표가 선출될 때까지는 표류가 불가피합니다. 그 이후에도 당이 안정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친박-비박은 격돌할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차기 대선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4·13 총선 패배와 낙선으로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대선주자로서 생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참패는 여러가지 면에서 이변입니다. ‘선거 혁명’이라는 평가에 저는 동의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가운데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17대 총선 당시 수도권 의석은 109석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76석, 한나라당이 33석을 차지했습니다.

서울 48/한나라 16/열린우리 32
경기 49/한나라 14/열린우리 35
인천 12/한나라 3/열린우리 9

20대 총선에서 수도권 의석은 122석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82석, 국민의당 2석, 정의당 1석, 무소속 2석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은 35석에 그쳤습니다. 새누리당이 수도권에서 얻은 의석 비율이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 역풍 당시 얻은 의석 비율보다 적습니다.

서울 49/새누리 12/더민주 35/국민의당 2
경기 60/새누리 19/더민주 40/정의당 1
인천 13/새누리 4/더민주 7/무소속 2

뿐만 아니라 대구와 부산·울산·경남의 새누리당 후보들 가운데 여러 명이 2004년과 달리 야당 후보 및 야당 성향 무소속 후보들에게 패배했습니다.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강남, 송파, 분당도 무너졌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한 유권자들의 분노가 2004년 탄핵 역풍 때보다 더 컸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 정도면 가히 ‘선거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한나라당)은 2006년 지방선거와 그 이후 거의 모든 전국선거 및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와중에 치러진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은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운영은 결코 새삼스런 것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독선적으로’ ‘오만하게’ 국정을 운영했습니다. 여당 지도부를 부하 직원처럼 대했고 국회와 야당을 적대시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선거에서 계속 이겼습니다.

더구나 이번 총선에서 야당은 크게 분열했습니다. 구도는 확실히 여당에 유리했습니다. 김종인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이나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이 뭘 특별히 잘한 것도 없습니다. 두 야당이 제기한 정권심판론이나 경제실정론은 울림이 없었습니다.

언론 환경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했습니다. 지상파 방송은 안보 정국을 조성하기에 바빴습니다. 종합편성채널은 2011년 12월 개국 이래 4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야당을 비난하고 이간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왜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패배한 것일까요? 아니 패배 정도가 아니라 122석으로 주저앉는 ‘참패’를 당한 것일까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선거 결과

선거가 끝난 뒤 여기저기서 전문가들의 사과와 반성이 쏟아졌습니다.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 평론가, 정치학자들이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반성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과와 반성을 보면서 저는 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사과와 반성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반성을 해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이번 선거에서 왜 ‘혁명적 결과’가 나타났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거 결과를 분석하고 각종 자료를 살펴본 뒤 천천히 해답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4·13 결과를 놓고 수많은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그 가운데 ‘선거 혁명’의 원인을 짚은 몇 대목을 찾아보았습니다. 대부분 매우 유익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실련 20대 총선 평가와 향후 과제

4월14일(목) 오전 10시

“새누리당의 공천 잡음과 임기 중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경제에 대한 서민들의 불만이 작용했다.”(조진만)

“야권 계층의 정밀한 교차투표가 국민에 의한 의석 개편을 만들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이 있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적극 투표율의 변화(50~60세대는 감소, 20~30 세대는 증가), 부동층 비율의 증가 등 사소한 ‘사고’들이 계속됐다.”(이택수)

“더이상은 못살겠다는 민심의 반영이다.”(박상인)

“진박공천이 진상공천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포괄적 성장이라는 경제담론을 들고 나오면서 수도권 틈새를 채웠다. 국민의당이 새누리당과 정의당의 표를 가져왔다.”(이준한)

“20~30세대의 높은 투표율과 60대의 낮은 투표율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전략적인 야당의 교차투표도 있었지만 보수 세력의 국민의당으로의 이탈도 분명히 존재했다.”(김능구)

“세월호 이후 불통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가 주원인이다. 기저에는 헬조선, 양극화 등 경제문제에 대한 불만이 존재했다. 대구, 부산, 서울 강남 등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낮았다.”(정제혁)

다른백년 특별기획 ‘4·13 총선에 나타난 민심과 향후 정국 전망’

4월14일 오후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의미는 87년 대선부터 강화되어 온 영호남 지역주의가 균열되면서 영호남 모두에서 이제 정책투표, 계급투표의 가능성이 열리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서울 강남 3구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선전하고 당선자까지 낸 것은 박근혜 정권의 수구보수적인 행태에 대한 합리적인 보수의 반발로 해석할 수 있다. 대구·경북이나 60대 이상 노인층의 상대적으로 낮은 투표율은 수구보수와 박근혜 정권의 막가파식 행태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김동춘)

더불어민주당 ‘더좋은미래’ ‘더미래연구소’

‘4·13 총선 평가와 전망’

4월21일 오전

“여대야소 예측이 빗나간 최대 요인은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리던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기반인 TK/PK, 50~60세대에서 정당 지지율이 급락하고 정권심판론이 상승한 점에서 찾을 수 있음…이러한 심판론의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보다 여당과 제1야당이 보여준 공천파동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음. 진박 대 비박 리스트를 앞세워 지지층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인 동원을 시도하였고, 공천유예라는 책임전가형 컷오프, 옥쇄파동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짐.”(정한울)

“새누리의 자만.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는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의식에 빠져 있었음. 180석이냐, 아니면 160석이냐, 아니면 과반수냐 숫자의 차이일 뿐 이기는 것은 틀림없다는 인식에 젖어 있었음. 경제실정에 따른 민심의 심판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하여 안일하게 판단했음…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유사하게 오만불손, 계파공천, 막말 파동, 불통, 무변화를 보였다면,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는 2012년 새누리당과 유사하게 당명, 대표, 이념적 스탠스부터 최소한의 변화를 시도했고 공천 등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던 것이 선거 결과를 갈랐던 것으로 보임.”(이준한)

이러한 전문가들의 분석은 물론 선거 이후에 나온 것들입니다. 선거 이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새누리당의 승리를 예측했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2월 초 설연휴 직전 ‘분열된 야권…아름다운 패배는 없다’라는 제목의 총선 전망 기사를 썼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야권이 수도권 의석 70%를 확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2004년 17대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수도권 76석(70%)을 획득한 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라는 특별한 상황 때문이었다. 이번 4·13 선거에서 야권은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을 저지할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표는 목표 설정을 잘못했다.

2004년 4월21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초청해 한나라·자민련·새천년민주당 등 야3당이 가결한 탄핵소추안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수도권은 오히려 여당이 압승할 가능성이 높다. 야권 분열은 새누리당의 기회다. 요즘 국회와 새누리당 당사에는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의 발길이 잦다. 당내 경쟁자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으면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2008년 18대 선거 때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당시 한나라당은 수도권에서 무려 81석(73%)을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틀렸습니다. 그 이후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나 정치학자, 정치평론가들도 대부분 새누리당 승리를 예상했습니다.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구 방문, 새누리당 공천 파동에 대해 친여 성향의 언론까지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비판했습니다. 그래도 새누리당이 4·13 선거에서 패배할 것으로 예측하지는 않았습니다.

전문가들 중에는 선거 직전 새누리당 과반 미달을 예견한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아예 2당으로 내려앉을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유권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나 국민의당 지지자들조차 선거 전 대부분 “여당이 이길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청와대와 각 정당은 어땠을까요? 선거 막판에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일시적으로 과반 미달 ‘경고음’이 울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그러나 투표일 직전 새누리당의 전략 참모들은 “다행히 우리 표가 결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근거한 전망이 ‘145석에서 165석’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전략본부에서는 막판까지 ‘90석 정도’를 전망했습니다. 김종인 대표와 극히 일부 인사들이 ‘감’에 의존해 100석은 넘는다고 전망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래도 120석을 넘어 1당을 차지할 것이라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국민의당은 어떨까요? 자신들의 의석수를 ‘호남 석권과 최소 30석에서 최대 40석’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 예측은 정확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자신들의 약진으로 더불어민주당이 80석 정도로 주저앉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당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그렇게 브리핑을 했습니다.

결국 아무도 ‘새누리당 2당 추락과 여소야대’라는 4·13 총선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바로 여기에 어쩌면 이번 ‘선거 혁명’의 해답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누리 압승’ 전망이 성난 민심 부추겨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관찰을 하는 행위가 대상물에 영향을 미칩니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모두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습니다. 상자 속 고양이의 생존 여부는 그 상자를 열어서 관찰하는 여부에 의해 결정되므로 관측 행위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있습니다.

정치에서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4·13 선거를 앞두고 모든 관찰자와 행위자가 ‘1여다야 구도에 의한 새누리당 압승’을 예견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행동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친박세력은 이른바 ‘진박공천’을 강행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공천장에 도장찍기를 거부했습니다. 어떻게 하든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기간 내내 새누리당 압승을 막아달라고 거의 비명을 질렀습니다. 수도권의 더불어민주당 후보들 중에는 선거 막판에 매우 특이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젊은 유권자들이 후보를 찾아와 “제발 부탁이니 꼭 당선돼 달라”고 거꾸로 호소를 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그 정도로 절박했다는 증거입니다.

‘새누리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과 각 정당, 후보, 언론, 유권자 등 선거에 관여하는 모든 주체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이번 선거에서는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은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데 도대체 왜 자꾸 새누리당이 압승한다는 여론조사와 예측만 쏟아져 나오는 것인지’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유권자들의 절박감이 선거를 앞두고 민심의 분노라는 파도에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했고 결국 분노의 파도가 쓰나미로 발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제 ‘쟁점이 구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가설은 폐기해야 할까요? 앞으로 선거의 구도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4·13 총선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아무리 잘못해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잘못된 예측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행태에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민심을 자극해 한꺼번에 폭발시킨 정치적 사건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겸손한 자세로 민심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대처한다면 유권자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처럼 선거에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나는 이변도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현 집권세력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데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각성과 변화를 기대하겠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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