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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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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11
반 유엔 사무총장 “정당이 뭐가 중요하냐” 발언 파장
정치학자들 “대의민주제 핵심인 정당에 대한 인식부족”
“친박 줄서기 물타려는 의도” “박근혜 대선전략 반복”
반기문 사무총장이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들과의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대통령 출마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국내 유권자들의 높은 지지를 기반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것은 반기문 총장의 선택입니다.
반기문 총장의 간담회 발언을 살피다가 딱 한 대목이 눈에 걸렸습니다. ‘왜 한국의 리더십이 실패했다고 보는가, 제도의 문제인가, 개인의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누구의 말이든 글로 옮기면 어색한 것이 당연하지만,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특파원들이 받아친 내용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현재 말하기는 그렇고, 이미 수백만의 국민들이 촛불을 통해 염원 희망, 왜 이렇게 됐는지 나타냈다고 본다. 이제는 정치·사회 지도자들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잘 분석해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4·19와 광주항쟁도 거쳤고, 군사독재 32년간 거쳐서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부를 세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회적 제도가, 적폐가 쌓여 있다.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까 다 모여서 진솔하게 검토해서 이제 고쳐야 한다. 국제사회에서도 ‘네버 어게인’하면서 그게 계속 일어나는 것에 대해 통탄하고 있다. 르완다 제노사이드(학살), 1995년 스레브레니차 사건 때에도 ‘네버 어게인’이라고 썼는데, 이제 시리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지도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얼굴 붉히면서 이야기했는데, 그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는데 대해 뭐라 말하기 어렵고. 이런 심정은 국민 여러분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추운 날씨에 수백만이 촛불 들고 나온거 아니냐.”
“정치인들이 이제 자기를 버리고, 국가가 없는데 정당과 파가 뭐가 중요하냐. 노론, 소론, 동교동, 비박, 친박이 뭐가 중요한지 알 수 없다. 평소 대한민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생각한다.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저는 제 자신을 낮추고 사적인 생활은 거의 없었다. 365일 10년간 국제사회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일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하고 국제사회가 분열돼 있어 다 성취하게 아니다. 그래서 공과가 나온다.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어떤 종파, 계층이든간에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만났다.”
‘국가가 없는데 정당과 파가 뭐가 중요하냐. 노론, 소론, 동교동, 비박, 친박이 뭐가 중요한지 알 수 없다’는 대목이 문제였습니다.
반기문 총장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있다고 하면서 정당과 파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망이었습니다. 정당은 의회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입니다. 정당 없이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8조는 정당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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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회원국 대표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10년간의 8대 유엔 사무총장직에서 오는 31일 퇴임하는 반 총장은 이날 유엔총회에서 193개 회원국 대표들에게 고별연설을 하며 작별을 고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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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에 출마하겠다는 사람이 정당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안희정 충남지사가 페이스북에 글을 띄웠습니다. 안희정 지사의 글에서 이런 대목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중부권 대망론과 친박계의 추대론을 은근히 즐기시다가 탄핵 바람이 불어오니 슬그머니 손을 놓고 새누리당 당 깨져서 후보 추대의 꽃가마가 당신에게 올 것이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국민을 위하는 길에 정당이 뭐가 중요하냐고 일갈하십니다.
저는 평생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해 온 사람입니다.
오늘 비록 여의도 정당정치가 온통 줏대 없는 기회주의, 철새 정치의 온상이 되었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정당들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책임정치를 할 때 저 촛불 광장의 민의는 영속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 한 번 해보시겠다는 분들이 대선 때마다, 총선 때마다 유불리에 따라 당 간판을 바꾸고 대권 주자 중심으로 이리 뭉치고 저리 뭉쳐서 원칙없는 떴다방식 기회주의 정당 정치를 하는 것이 문제이지 민주주의 정당정치-책임정치가 필요없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민주주의, 정당정치, 책임정치의 핵심을 짚은 것입니다. 학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정치학자들에게 ‘정당이 뭐가 중요하냐’고 한 반기문 총장의 발언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습니다.
박명호 교수(동국대)는 “최근 정당과 정당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비판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정당이 제기능을 못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과, 대의민주제의 핵심적 기제로서 정당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김윤철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좀더 신랄하게 반기문 총장을 비판했습니다.
“친박에 줄을 서려고 했던 것과 자신의 무색무취함을 합리화하고 자신은 계파갈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부각시키려는 것 아닌가 싶다.”
“민주주의는 부분에 기초해 전체를 지향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자신을 폴리티션이 아니라 스테이츠맨(statesman)으로 이미지 메이킹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런데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하면서 써먹은 전략의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반기문 총장은 특파원 간담회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저는 제 자신을 낮추고 사적인 생활은 거의 없었다. 365일 10년간 국제사회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일했다”고 했습니다. 김윤철 교수의 지적대로 박근혜 대통령처럼 자신을 ‘국내 정치의 더러운 수렁에 발을 담그지 않았던 깨끗한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기문 총장의 이런 반정치 전략은 한국 정치에서 뿌리깊은 연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반기문 총장과 그의 대선 전략 해부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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