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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30 11:01 수정 : 2016.12.30 11:13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12
제1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수상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절망이 슬픔에게 손 내미는 숭고한 희망을 보았다”
“타인의 아픔까지 함께하며 더불어 가는 것이 민주주의”



김근태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12월28일과 29일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5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습니다.

29일 창동성당에서 진행된 추도미사와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엄수된 참배 등에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참여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손학규 전 의원 등이 모습을 드러냈고 추도의 뜻을 밝혔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부인 김미경 교수가 추도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대선주자들이 한 말은 여러 언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이번 김근태 전 의원 5주기 추모 행사는 각별했습니다. 대선주자들 때문이 아닙니다. 올해 처음 제정된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때문이었습니다. 김근태 재단은 선정위원회(위원장 신경림)를 꾸려 제1회 수상자로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세월호 가족협의회)를 선정했습니다. 29일 저녁 7시30분 서강대 메리홀에서 시상식이 진행됐습니다. 시상식장에는 세월호 가족 20여명이 노란 옷을 입고 참석했습니다.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행사장은 웃음과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29일 오후 서울 서강대 메리홀에서 열린 ‘민주주의자 김근태 상 시상식’에서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상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행사는 손병휘·이정열 가수의 흥겨운 공연으로 시작됐습니다. 세월호 가족들과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모두 표정이 밝았습니다.

신경림 선정위원장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우리 정말 큰일났구나’ ‘이제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세월호 가족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제 민주주의자 김근태상을 세월호 가족들에게 드리게 되어 기쁘고 또 상을 받아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선정위원회가 세월호 가족협의회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신경림 위원장의 인사에 이어 영상물이 상영되었습니다.

화면 가득히 세월호 가족들이 참사 직후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이 밀양 송전탑 할머니들, 광주 5월 어머니들, 그리고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 가족들을 위로하고 함께 싸우는 모습이 차례차례 등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단순히 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이기 때문이 아니라, 극도의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연대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자 김근태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김근태재단 상임이사인 유은혜 의원이 수상결정문을 낭독했습니다. 다소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2014년 4월16일.

아무리 납득하려고 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죽음을 우리는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거짓의 무리는 아이와 가족만 빼앗아가지 않았습니다. 화인이 되어 가슴을 지지는 슬픔마저 모욕당했고, 진실은 발붙일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그러나,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는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능멸을 견뎠고, 저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내건 단식, 팽목항에서 안산, 안산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던 처절한 행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아이가 없는 집에선 잠을 잘 수가 없다며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눈보라가 치는 겨울에도 광화문 광장에서, 청운동 사무소 앞에서 잠을 청하던 어머니들을 기억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미안해서 시작한 단식투쟁, 대꼬챙이처럼 말라가면서도 너무 억울해서, 너무 서러워서, 너무 그리워서 물 한잔 넘길 수 없다던 엄마, 아빠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제발 진실을 밝혀달라며, 아이들을 되살리진 못하더라도 눈감고 잠들 수 있도록은 해달라고 무릎꿇고 호소하는 가족들을 비웃고 짓밟은 야비한 권력자와 그 부역자들을 우리는 영원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절망이 슬픔에게 손을 내미는 숭고한 희망을 4·16 가족들에게서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그리워 사무치는 그 손길을 밀양의 할머니들에게 내밀었습니다. 삶의 터전을 지키다가 국가권력에 폭행당한 할머니들의 어깨를 부축하고, 5월의 어머니들을 만났습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내 나라 군인들의 총탄에 아들, 딸을 잃었던 어머니들을 안고 함께 울던 모습을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백남기 어른의 죽음마저 욕보이려는 국가권력에 맞서 맨 앞자리로 나서던 당신들을 보며 우리는 너무 미안해서, 너무 고마워서 울어야 했습니다.

나의 아픔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의 아픔까지 함께하며 더불어 가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이분들은 가장 분명한 민주주의자입니다. 진실이 반드시 거짓을 이긴다는 명제가 민주주의라면 이분들은 민주주의를 향한 불멸의 이정표입니다.

절망을 딛고 다른 아픔을 껴안으며 연대하는 당신들은 쉽게 포기하고 일상에 안주하던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반성하게 만들었고, 다시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광화문은 당신들로 인해 진실이 만나는 연대와 투쟁의 광장이 되어갔습니다. 이제 노란 리본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난 12월3일, 우리는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가 이끄는 길을 따라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진격했습니다. 마침내 진실이 거짓을 몰아내는 거대한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2016년 시민혁명의 촛불은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정의합니다. 그래서 싸워야 할 때 가장 먼저 싸우고, 견뎌야 할 때 가장 마지막까지 견디면서도 늘 먼저 고개숙이고 ‘미안하다’고 했던 김근태의 이름을 빌린 첫번째 상을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에 바칩니다.

제1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은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에 드리는 뜨거운 존경이며, 촛불과 함께 한 시민들의 마음을 대신한, 함께, 결코 진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2016년 12월 29일

제1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선정위원회

김근태의 평화와 상생을 위한 한반도재단(김근태재단)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내용 중에서 다음 세 대목이 특히 강렬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절망이 슬픔에게 손을 내미는 숭고한 희망을 4·16 가족들에게서 보았습니다.”

“나의 아픔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이 아픔까지 함께하며 더불어 가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이분들은 가장 분명한 민주주의자입니다.”

“우리는, 2016년 시민혁명의 촛불은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정의합니다.”

12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4·16연대 제공

유은혜 의원의 수상결정문 낭독이 끝나고 세월호 가족들이 일제히 무대로 나왔습니다. 객석에 있던 참석자들이 뒷줄부터 차례로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힘껏 박수를 쳤습니다. 무대에 선 세월호 가족들도 함께 박수를 쳤습니다. 무대에 선 사람들과 객석에 선 사람들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박수는 정말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습니다.

김근태재단 이사장인 인재근 의원, 신경림 선정위원장, 장영달 선정위원회 부위원장, 이인영 민주당 의원 등이 세월호 가족들에게 상패와 수상결정문, 그리고 상금 1천만원을 전달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을 대표해 전명선 운영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제1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을 우리 가족협의회에 주셔서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2년8개월 동안 버티며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김근태 의원 같은 분들의 신념 덕분이었습니다. 2016년 촛불은 국민의 승리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세월호 7시간이 포함된 것은 역사적인 기록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강탈한 현 정권의 참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상금 1천만원은 진상규명을 위해 곧 발족하는 국민조사위원회의 소중한 자금으로 사용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돈과 권력보다 사람의 목숨을 존엄하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고 실천하는 모습으로 평생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전명선 위원장의 말이 계속되는 동안 무대에 서 있던 세월호 가족들과 객석에 앉아있던 관객들이 연신 눈물을 닦았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인사말이 이어졌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이번 수상이 세월호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와 힘이 되기를 바란다”며 “민주정부에서는 세월호를 인양하고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질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을 첫번째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한다”고 말했습니다.

인재근 의원이 무대로 나와 인사를 했습니다. 인재근 의원은 “하늘나라에 있는 세월호 아이들이 김근태 할아버지와 함께 미술관에도 가고 즐겁게 지내고 있을 것”이라며 “김근태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이 세상 누구보다도 좋은 할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세월호 가족들이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인재근 의원은 “세월호 가족들이 민주주의자 김근태상을 받아줘서 너무나 감사한다”고 마무리 인사를 했습니다. 상을 받는 사람들이 주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또 상을 주는 사람이 상을 받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이런 시상식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요?

김근태 전 의원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학생운동, 노동운동, 청년운동을 했던 ‘민주주의자’였습니다. 1985년 전두환 정권에서 극심한 고문을 받고 이를 국내외에 폭로해 부인 인재근 의원과 함께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등을 받았습니다.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등을 지냈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2011년 말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 김근태 전 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민주주의자 김근태상을 제정한 이유가 뭘까요? 제정 취지문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살아 행동하는 사람의 옷깃을 스쳐 풍겨나는 향기다. 민주주의는 느린 걸음처럼 답답하게 지속되어야 하고, 뒷걸음질처럼 미련하게 뒤돌아보아야 하고, 목적지에 도달했다가도 바보처럼 되돌아가야 한다.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 삶 전부가 온전히 민주주의인 한 사람이 있었다. 김근태다. 한 인간으로 감당하기 힘든 길에서 그가 본 것은 마음을 덜어 내어놓은 동지애였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에서 그가 본 것은 세계사를 관통해 유유히 흘러온 인류애였다. 막무가내의 상대와 소통할 수 없는 벽에 맞닥뜨릴 때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수신, 도덕적 삶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더 정화시키는 일이었다.

한 삶이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된다는 것은 무수히 다듬어진 경구와 같다. 그것이 개별의 특별하고 한시적인 행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관되고 인간을 포괄하는 것이 되기까지 한 삶은 무수한 검증을 거쳐야 했다. 김근태의 삶은 그 결과물이며 끊임없이 상기되고 양식화 되어야 한다.

우리는 단지 김근태를 추억하지 않는다. 김근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우리의 언어로 불려질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인류사에 ‘한국의 민주주의’를 새길 수 있었다. 민주주의는 그의 부재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졌고, 그의 오래된 스웨터처럼 민주주의에 한뜸 한뜸 정성스러운 손길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 손길에 박수치고 응원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인간의 삶을 낙관하고 도덕적 태도를 견지하며 희망의 근거를 남기는 분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분들의 삶이 조명되길 바란다. 김근태의 이름을 빌어 민주주의의 한 영역이 열리길 소원한다. 이 상은 그 묵묵함에게 드리는 함성이고 향기다.

* 독자 여러분 새해 복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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