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언론사의 새해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부분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겨레>는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지난달 28일부터 이틀간 전국 성인 1006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의 양자대결에서 51.8% 대 35.9%로 앞섰습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포함한 3자대결에서도 문재인 44.6%, 반기문 30.0%, 안철수 13.7%였습니다.
여야의 전체 대선주자들을 넣어서 물어본 다자 구도에서도 27.4%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반기문 전 총장은 18.3%였습니다.
다른 언론사에서 한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자세히 보도한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nesdc.go.kr)를 참조하면 됩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2일 오후 국회 정문 앞에서 ‘문재인의 호소-국민은 이깁니다’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서울신문> 조사에서만 반기문 전 총장이 문재인 전 대표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모든 조사에서 3등은 이재명 성남시장, 4등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차지한 것도 이채롭습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문재인 대세론’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주저하고 있습니다. 반기문 전 총장 귀국, 정계개편, 더불어민주당 경선 등 지지도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세론은 학술용어가 아닙니다. ‘다음 대통령은 000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그게 바로 ‘000 대세론’의 출현입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1등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아마도 유권자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지금부터 여론조사 항목에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포함시킨다면 ‘문재인’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올 것입니다. 더구나 문재인 전 대표는 정당 지지도가 매우 높은 더불어민주당의 조직적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정당에 근거가 없는 반기문 전 총장보다 훨씬 탄탄한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재인 대세론’은 이미 존재한다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전 대표가 이제 대통령이 되는 것일까요?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세론과 대통령 당선은 일치하는 경우도 있고,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2012년 ‘박근혜 대세론’이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실제로 탄생했습니다. 2002년 ‘이회창 대세론’이 있었지만 이회창 대통령은 없었습니다. 박근혜 대세론은 성공했고, 이회창 대세론은 실패한 것입니다. ‘박근혜 대세론’과 ‘이회창 대세론’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2012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 3~4개월 전 여론조사를 찾아봤습니다. 지금의 상황과 비교해보기 위해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2~3월에 이루어진다면 대통령 선거는 4~5월에 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3~4개월 뒤입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2002년 12월 18일 밤 광화문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2년 8월13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는 다자구도에서 박근혜 36%, 안철수 28%, 문재인 10%, 손학규 3%, 김두관 2%, 김문수 1%, 무응답 19%였습니다. 박근혜 대 안철수 양자대결에서는 박근혜 41%, 안철수 40%였습니다.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 34%, 민주통합당 20%, 통합진보당 2%, 무응답 43%였습니다.
어떻습니까? 당시 박근혜 자리에 지금의 문재인을 넣고, 당시 안철수 자리에 지금의 반기문을 넣으면 최근 여론조사 결과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정당 지지도 역시 박근혜 후보가 속한 새누리당이 크게 앞서 있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속한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정당 지지도에서 다른 정당을 크게 앞서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4개월 앞두고 형성된 ‘박근혜 대세론’과 현재의 ‘문재인 대세론’이 많이 닮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2년 ‘이회창 대세론’은 어땠을까요? 사실 ‘이회창 대세론’은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원내 1당을 차지한 것을 계기로 이미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김대중 정부 5년 내내 “다음 대통령은 이회창”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2002년 대선을 3개월반 앞둔 2002년 9월1일 <문화방송>은 여론조사 결과를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정몽준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 이회창, 노무현, 권영길 후보의 3자대결의 경우(%)
이회창 34.1, 노무현 26.9, 권영길 4.9
- 정몽준 의원이 가세한 4자대결의 경우(%)
이회창 29.2, 정몽준 27.8, 노무현 18.3, 권영길 2.6
- 정몽준 의원이 민주당 통합 신당의 후보로 나설 경우(%)
정몽준 41.0, 이회창 31.6, 권영길 5.2
- 노무현 후보가 통합신당으로 나설 경우(%)
이회창 34.5, 노무현 31.3, 권영길 4.6
2002년 12월 16일 경기도 일산 탄현 SBS스튜디오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후보 초청 합동토론회에서 후보자들이 토론에 앞서 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당 30.6%, 민주당 13.2%, 민주노동당 3.8%, 한국미래연합 2.3%, 자민련 0.6%였습니다. 정몽준 돌풍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대세론’이 굳건히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회창 대세론’은 도대체 왜 실패했을까요? 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하지만 무엇보다도 상대를 잘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회창의 상대는 ‘승부사 노무현’이었습니다.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규칙을 받아들이는 도박을 감행할 정도의 두둑한 배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선 투표일 전날 밤 지지 철회를 선언한 정몽준 후보의 집에 찾아갔다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미련없이 집으로 돌아가 씻고 잠을 잘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최근에 2002년 대선을 며칠 앞두고 이회창 후보 쪽에서 정몽준 후보의 노무현 지지 철회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이회창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인데도 정몽준 후보의 노무현 지지 철회를 미리 알고 있던 이회창 후보 최측근 인사들이 “걱정하지 말라”고 여유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랬다면 이회창 후보와 측근들은 정치에서 하느님이나 다름없는 유권자들을 ‘공작의 대상’으로 취급한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회창 대세론’의 실패는 한나라당 사람들에게 “방심하면 진다”는 큰 교훈을 안겨주었습니다. 2012년 ‘박근혜 대세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회창 대세론’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2012년 대선 전에 새누리당이 실시한 모든 여론조사에서 단 한 차례도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밀린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투표 당일 여론조사에서도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들은 이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거의 다 따라잡았다고 역정보를 흘렸습니다.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을 한명이라도 더 투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박근혜 대세론’의 성공은 그냥 손쉽게 이뤄진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문재인 후보 쪽에서는 출처가 불분명한 여론조사를 근거로 투표일 직전 ‘골든 크로스’(지지율 역전)가 이뤄졌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지지자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겠지만 결과적으로 문재인 캠프의 홍보전은 오히려 박근혜 지지자들의 절박감만 더 부추겼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어떻게 될까요? ‘2012년 박근혜’의 길을 걷게 될까요, 아니면 ‘2002년 이회창’의 길을 걷게 될까요? 문재인 전 대표를 상대로 경영학에서 사용하는 스워트(SWOT) 분석을 해 보겠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강점(Strength)은 바로 재수생이라는 점입니다. 인지도가 높다는 뜻입니다. 유권자들은 대선후보로 나섰던 사람을 일단은 ‘대통령감’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재수생 프리미엄’입니다. 김영삼, 김대중, 박근혜 대통령이 재수생 프리미엄을 입증한 사례입니다. 물론 이회창 후보는 재수, 삼수를 했는데도 실패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약점(Weakness)은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및 촛불 정국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여러차례 취약한 판단력과 리더십을 드러냈습니다. 지금도 문재인 시대를 열어갈 비전과 정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과제입니다.
문재인 전 대표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에서 기회요인(Opportunity)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입니다. 지금 문재인 전 대표가 누리고 있는 고공 지지율도 사실은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반사이익이라고 봐야 합니다. 보수 세력의 몰락과 분열로 인한 정권교체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문재인 전 대표의 상대는 반기문 전 총장입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정치인이 아닙니다. 승부사도 아닙니다. 문재인 전 대표보다 더 정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정치적 리더십도 위기돌파 역량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문재인 전 대표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위협요인(Threat)은 기득권을 쥐고 있는 보수 세력의 집요한 방해입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집권을 결코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주류, 이른바 ‘메인 스트림’입니다. 재벌, 검찰, 언론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입니다. 이들은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을 빼앗길 것이라고 공포에 질려 있습니다.
이들의 공포는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정권교체를 이루면 정치검찰을 확실히 청산하겠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할 법적 장치를 만들고 종편 재인가를 엄격하게 심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재벌에 대해서는 좀 다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재벌·대기업이 '국민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재벌들은 문재인 전 대표가 집권하면 재벌 손보기에 나설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문재인 대세론’은 현실입니다. ‘문재인 대세론’이 2012년 ‘박근혜 대세론’처럼 성공하게 될 것인지, 2002년 ‘이회창 대세론’처럼 실패하게 될 것인지 예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대세론이 성공을 거두려면 막판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하고,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깁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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