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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13 10:07 수정 : 2017.02.13 11:23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19
반기문 불출마로 대선주자급 ‘보스’ 사라진데다
개헌.반문재인 고리 등 취약한 ‘명분’도 이유지만
박근혜 혐오감 커져 정권교체론이 압도한게 주요인

정계개편이 무슨 뜻일까요? 학술 용어는 아닙니다. ‘판을 크게 흔들어 구도를 다시 짠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계개편이라는 용어를 쉽게 사용합니다. 정치인들도, 유권자들도, 언론도 정계개편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 정치가 그만큼 역동적이라는 얘깁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정치는 고스란히 정계개편의 역사입니다.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김대중 ‘양김씨’가 이민우 총재를 앞세워 신민주당(신민당)을 창당했습니다. 정치규제에서 풀려난 인사들이 대거 합류했습니다. 선거 결과 ‘신민당 돌풍’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2중대’로 불렸던 민주한국당(민한당)은 몰락했습니다.

1987년 신민당의 이민우 총재가 전두환 정권과 내각제 타협 의사를 밝히자 김영삼·김대중씨는 의원들을 이끌고 탈당해 통일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이어서 양김씨가 대선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김대중씨는 동교동계와 함께 탈당해 평화민주당(평민당)을 창당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대였습니다. 야당발 정계개편 사례들입니다.

1990년 민주정의당(노태우)·통일민주당(김영삼)·신민주공화당(김종필)이 전격 합당했습니다. 여소야대 국회가 순식간에 여대야소로 바뀌었습니다. 김영삼 총재는 차기 대통령 당선을 위해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습니다. 3당합당은 여당발 정계개편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도 정치판의 큰 변화가 여러차례 있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992년 총선을 앞두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대통령선거 출마를 위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습니다. 1995년 김대중 전 총재가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습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정동영·천정배·신기남·이해찬 의원 등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했습니다.

2008년 총선에서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가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2016년 안철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습니다. 2017년 김무성·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등이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습니다.

2008년 이후 사례는 정계개편이라고 하기보다는 ‘여권분열’이나 ‘야권분열’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계개편에는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명분’과 ‘보스’입니다. 정계개편 성공 사례를 보면 예외없이 명분과 보스가 있었습니다. 1985~1987년 정계개편의 명분은 전두환 정권 타도와 정권교체였습니다. 그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보스들이 있었습니다. 1990년 3당합당의 명분은 국정안정이었습니다.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라는 보스들이 있었습니다.

옛날 얘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의 정계개편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해 연말부터 얼마 전까지 ‘제3지대 정계개편’이나 ‘빅텐트’ 등의 표현이 언론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대표가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홀에서 열린 국민주권개혁회의 창립대회 행사장에서 박수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 자리에 앉게 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달 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출석해 바로 옆 자리의 바른정당 김무성, 유승민 의원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정계개편론의 진원지는 주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현 바른정당 의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이었습니다.

정계개편론은 그동안 ‘대통령제 폐지 개헌’과 ‘비박근혜-비문재인 연합’이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펼쳐졌습니다. 김종인·정의화 등이 개헌에 무게를 실었다면, 김무성·박지원 등은 비박-비문 연합에 주력했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주자로 내세워 개헌을 명분으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비주류를 끌어모아 제3지대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는 로드맵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계개편은 실패했습니다. 최근 들어 정계개편이라는 말 자체가 뉴스에서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두 개의 중심축이 모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대선 전 개헌은 문재인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반대로 사실상 물건너간 지 오래됐습니다. 지지도 1위의 차기 대선주자와 지지도 1위의 정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개헌 추진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비박-비문 연합도 연합의 ‘중심’ 역할을 해줘야 할 반기문 전 총장이 2월1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는 순간 가능성이 사라졌습니다. 손학규 전 대표가 2월7일 국민의당 합류를 선언한 것은 이른바 ‘제3지대 정계개편’을 포기한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언론에서는 ‘빅텐트’ 대신 ‘스몰텐트’가 만들어졌다고 비유했습니다.

조금 더 따져 보겠습니다. 최근 정계개편에는 처음부터 성공의 두 가지 조건, 즉 ‘명분’과 ‘보스’가 없었습니다.

비박-비문 연합은 처음부터 명분이 될 수 없었습니다.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된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표를 같은 반열에 놓고 배제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박-비문 연합’은 사실상 ‘반문재인 연합’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반문재인 연합’이 정치적 명분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재인 전 대표와 이른바 ‘친문세력’은 국정을 사유화하지도 않았고 국정을 농단하지도 않았습니다. 친문패권주의는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주류와 비주류가 싸울 때 나온 말입니다. 친문패권주의는 야당 내부의 문제이지 국가 공동체에 피해를 준 일이 없습니다.

‘보스’는 어떨까요? 김무성, 손학규 등 정계개편을 추진하려던 인사들은 수십명의 의원들을 데리고 탈당하거나 창당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 삼김시대 정치 지도자들이 갖고 있던 정치자금 배분 권한이나 공천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지도라도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대선 출마를 아예 포기했거나 지지도가 너무 낮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정계개편이 좌초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원인의 배경에는 보다 크고 근본적인 한 가지 원인이 깔려 있습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9일 국회의 탄핵소추 이후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며 검찰, 특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거부하고 방해했습니다. 최순실씨도 특검 조사를 거부하고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등 납득할 수 없는 언행을 계속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야당 지지층뿐만 아니라 개혁적 보수 성향의 구여권 지지층, 그리고 무당파층까지 포함한 다수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점점 더 혐오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복잡한 ‘정계개편론’보다는 야당의 ‘무조건 정권교체’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된 까닭입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오만한 태도가 정계개편을 좌절시킨 셈입니다.

2017년 대선을 앞둔 정계개편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탄핵이 인용되면 60일 안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정계개편이 이뤄지기에 아무래도 60일은 좀 짧아 보입니다.

남아 있는 가능성은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의 재통합 정도인데 이를 정계개편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바른정당 일각에서는 아직도 안철수 의원과 국민의당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지만 안철수 의원은 손사래를 치고 있습니다. 정치판의 흐름을 잘 읽는 김종인 전 대표는 지난 2월7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정계개편은 이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 탄핵이 기각되면 어떻게 될까요? 대한민국 전체가 대혼란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계개편 정도가 아니라 세상이 뒤집히는 것입니다.

이래저래 과거처럼 대선후보와 의원들이 합종연횡하고 이합집산하는 형태의 정계개편은 이제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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