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30]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인터뷰
“국민대타협 위해 지식인으로서 역할 찾을 것”
“안보위기·경제위기 심각…앞으로 2~3년 고비”
“문재인 안철수 누구든 통합정부 반드시 해야”
“대선 앞두고 특정후보 지지하는 일 없을 것”
홍석현 전 <중앙일보> <제이티비시> 회장이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만난 것은 3월29일이었습니다. 정가에서는 세 사람이 통합정부 구상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을 추진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4월2일 세 사람은 다시 만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세 시간 전에 모임이 갑자기 취소됐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전북도의회 기자회견에서 “저를 비롯해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대표, 홍석현 전 중앙일보·제이티비시 회장 등 우리 셋 모두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종인 정운찬 두 사람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실제로 4월5일 출마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홍석현 전 회장은 정치인이 아닙니다. 홍석현 전 회장이 정말 5월9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일까요?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그는 3월18일 “오랜 고민 끝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로 결심했다”고 밝히며 회장직을 전격 사퇴했습니다. 홍석현 전 회장이 회장직을 그만둔 이유가 대통령 출마를 위해서였을까요? 3월29일 세 사람이 만나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주고 받은 것일까요?
여러가지 궁금증이 풀리지 않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홍석현 전 회장과의 인터뷰가 성사됐습니다. 인터뷰는 4월11일 오전 서울 서소문로에 있는 월드컬처오픈코리아 이사장실에서 한 시간 동안 했습니다. 정치 현안을 중심으로 민감한 질문을 많이 던졌지만 홍석현 전 회장은 회피하지 않고 비교적 솔직하게 답변했습니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이 11일 오전 서울 중구 월드컬처오픈코리아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3월29일 김종인 전 대표,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만났는데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셋 모두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고 했다. 단도직입으로 묻겠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나?
“정운찬 전 총리가 당신 이야기만 하면 되는데 왜 남의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3월29일 아침 모임이었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국면이라 어느 분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나라를 끌고 가기가 힘들지 않겠느냐, 그래서 과거 선진국도 많이 있지만 정파를 초월한 통합정부가 구성돼서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난제를 풀어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위기의식과 문제해결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 모임이었다.”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나?
“대통령 선거에 나가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전혀 없다. 김종인 대표는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홍석현 회장은 정치에 뜻이 없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을 놓고 그 모임에 나간 것 아니다. 국난의 시기인데 나라도 어떤 형태로라도 기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 분이 만나면 정치적 행보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데?
“전날 김종인 대표가 전화해서 만나자고 했다. 또 누가 오시냐고 물어보니 정운찬 총리 불러볼까 한다고 했다. 아침에 비공개인줄 알고 갔다. 그런데 어떻게 <엠비엔>이 알고 왔다. 좀 당혹스러웠다. 그렇지만 뜻을 같이 하는 것은 사실이다.”
-4월2일 다시 만나기로 했던 이유는 뭔가?
“제가 ‘통합정부’라는 표현을 제시했다. 박명림 교수와 여러번 얘기하면서 통합정부의 당위성에 대해 제가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종인 대표가 ‘공동정부’를 얘기했다. 소위 빅텐트다. 그날도 공동정부를 말씀하셔서 이게 정치학적으로나 과거 유럽의 사례를 볼 때는 통합정부란 표현이 적합한 것 같다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 통합정부라는 표현을 썼다. 어쨌든 김종인 대표는 상당히 진전된 구상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정운찬 총리와 실무적으로 많이 진척을 시킨 것 같다. 제가 그때 모임을 제안받은 것은 사실이고, 여러가지 고민한 것은 사실이다. 대선을 놓고 행보하는 것은 제가 준비되지 않았다. 두 분은 정치인이고 저는 이제 막 새로운 길을 가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여하기가 좀 힘들었다고 할까. 그 분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공감하고 있다.”
-4월2일 모임이 세 시간 앞두고 취소됐는데?
“언론에 그렇게 연락이 간 모양이다. 그렇지만 제 생각은 하루 전쯤 통보했다. 여러가지 마음의 준비도 그렇고 이 시점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그분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3월29일 모임에서 공동정부나 통합정부 발족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4월2일 다시 만나서 그 얘기를 구체화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그것보다는 저는 하루 전에 통보를 받고 나갔지만 소위 공동정부안에 대해서는 제가 이해를 하고 있었다. 사실 어느 분이 당선되더라도 소수파 정권 아닌가.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안보문제다. 대북문제와 사드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 또 위안부 문제다. 이런 문제는 초정파적 해법을 갖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고 믿는다. 통합정부는 29일 만나기 전부터도 해왔던 생각이다. 서울대에서도 한번 강연하고 월드컬처오픈코리아(WCO)에서도 한번 강연했다. 국민적 대타협 없이는 안된다, 특히 대북정책에 관한한 여야 합의로 국민합의를 도출해서 하나의 정책을 수립하지 않고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해왔다. 일관된 인식을 가지고 29일에 모였지만 그날 무슨 통합정부 준비안까지 얘기된 것은 아니다.”
-4월2일 합의문을 채택하려고 했나?
“김종인 대표는 연구를 많이 하니까 무슨 안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문서 얘기도 나오고 그랬는데 저는 이게 어느 분이 대통령이 돼도 받아들일지 안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통합정부라는 형태는 아니더라도 그런 정신 아래서 내각이 구성되고 정책이 수립되고 집행되지 않고서는 아마 다음 정부가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거란 생각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김종인 대표가 생각하는 안에 대해서는 제가 높이 평가한다. 지금도 뜻을 같이 한다.”
-김종인 전 대표가 합의문 초안을 만들어서 보내주지는 않았나?
“그런 것은 없었다. 4월2일 다시 한번 모여서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여러분이 참여하기를 권하는 그런 모임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셋이서 한다고 뭐가 되겠나. 여러 사람이 동참해야지. 아무튼 거기도 제가 나서기에는 좀 곤란했다. 뜻은 같이 하지만. 그런데 정운찬 총리 말씀은 너무 앞서나간 면이 있다. 선의를 가지고 했겠지만.”
-세 사람이 모여서 정계개편을 추진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 보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밖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전혀 아니라는 것인가.
“저에 관한한 전혀 아니다. 정치라는게 금방 뛰어들어가서 되는 것이 아니잖은가.”
-홍석현 전 회장 출마설은 애초 3월18일의 회장직 전격 사퇴 때문에 나왔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시기가 상당히 위중한 시기라고 인식한다. 첫째, 안보위기다. 요즘 각 언론에서 북한 선제타격 가능성과 칼빈슨 항공모함이 다시 우리나라로 오고 있다고 위기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저는 훨씬 전부터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은 6·25 이후 최고에 달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안보 불감증이 있다. 남북 대치 상황이 워낙 익숙해서. 사실 1994년에도 전쟁 위기까지 갔었다. 그때도 워싱턴은 상당히 위기상황이었는데 서울은 태평했다. 그 때보다 지금 열 배 이상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위기는 경제위기다. 2006년 2만불 돌파 이후 10년간 계속 2만불이다. 2006년에 싱가포르가 2만7천~8천이었는데 지금은 6만불 가까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건 경제정책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우리 사회에 신뢰라는 자산이 없는 것이다. 경제위기와 안보위기를 돌파할 유일한 해법은 결국 국민대타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직접 나서기로 한 것인가?
“제가 신문사나 방송국에 사주로서 거기서 발신할 수 있는 메시지에 한계를 느꼈다. 나도 어떠한 형태로든 두 개의 위기를 극복해서 선진국으로 가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데 어떤 기여를 하겠다는 그런 뜻의 ‘작은 힘’이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앞으로 선출직 공직 출마에 나서거나 정치를 할 계획은?
“우선 일단은 정치가 저에게 잘 맞는 옷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선출직이라는 것이. 그렇지만 제가 작은 힘을 보태겠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그게 꼭 선출직이라면 그것도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 발휘되는 여건을 만들고 그 여건이 주어진다면 무슨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한 정파나 한 이념만으로 나라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결국 진보와 보수의 대타협, 지역의 대타협, 수도권과 지방의 대타협.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타협. 노사간의 대타협, 재벌과 협력업체의 대타협, 이런 것들이 서구사회에서 봤던 것처럼 정치권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보다는 이해 당사자간에 이뤄지지 않으면 아마 중진국 트랩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진보정권이 들어선다고 북핵에 대처하기 위해 북한과 화해하는 것이 가능하겠나. 우리 나라의 뿌리깊은 보수세력이 가만있지 않는다. 보수가 지난 10년간 일방적 제재 정책에서도 결국 북핵 개발과 미사일 개발을 막지 못했다. 여기에 대타협이 이뤄져야 하는데 제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고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일을 하고 싶다.”
-하지만 국민들은 돈많은 사람이 정치권력까지 욕심을 낸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하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런 시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나라가 어렵지 않았으면 저같은 사람까지 그런 역할을 자임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때다. 돈을 가지고 권력을 추구한다든가, 돈을 더 가지려고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제 나름대로 떳떳하다.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대통령 등 그런 자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중진국 트랩, 안보 트랩에서 한번 뛰어넘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책임있는 사람들이 응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돈을 가진 사람이 왜 그러느냐’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지만, 돈을 가지고 어떻게 하거나, 돈을 가지려고 어떻게 하는 것은 아니다. 제가 쌓아온 역량과 경험이 활용될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 선진국으로 가는 길,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길을 돕고 싶다. 70년 가까이 쌓아온 힘이 사장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제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개헌에 대한 생각은?
“개헌은 불가피하다는 국민 공감대를 이뤘다. 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체제는 있지만 결국 국민이 원하는대로 가야 한다. 어떤 형태든 지금처럼 대통령의 권한이 집중되는 체제는 아니지 않겠나.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통일이 돼도 그대로 쓸 수 있는 헌법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지금까지 헌법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을 잘못해 온 것이라고 본다. 이제 정치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 시민의식은 촛불에서도 보여줬지만 정치인들이 끌고 가기엔 우리 사회가 성숙해있다. 함께 일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제가 그래서 대타협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모델이 있나?
“유럽과 미국 중간 정도의 사회를 우리가 한번 거쳐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유럽은 사회민주주의가 뿌리박히고 보수정당도 뿌리내리고 큰 차이가 없다. 100년간 타협의 결과다. 그들이 겪은 위기는 볼셰비키 혁명이다. 사회가 이렇게 가다가는 혁명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 가진자가 먼저 내려놓기 시작했다. 대신 진보세력이 공산화까진 안 간다. 타협의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완숙한 유럽이라는 공동체가 형성됐다. 우리는 산업화, 민주화는 갔는데, 과연 민주시민, 민주정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내는데 제가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 기여를 하고 싶다. 어떤 세력을 만들고 어떤 자리에 가고 그런 것은 관심 없다. 일을 할 수 있는 것, 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회장직 사퇴 얘기로 잠시 되돌아가보자. 회장직 사퇴가 제이티비시의 최순실 보도 및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불화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루머가 많다. 태블릿 피시가 결국엔 스모킹 건이 됐다. 물론 첫번째 스모킹건이다. 그 이후 정호성 녹취, 안종범 수첩이 겹쳐서 여기까지 왔다. 사적인 감정으로 생각하면 이재용 부회장 구속까지 이어진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가족들에 대한 사적인 미안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장직 사퇴는 그런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
-회장직 사퇴를 손석희 사장과 미리 의논했나?
“몇 사람하고 했다. 우리 신문 발행인, 손석희 사장, 김수길 사장, 그리고 제 아들이지만 홍정도 사장과 며칠 전에 의논했다.”
-대선과 관련한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5월9일 대선이 우리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미를 좀 부여하고 싶다. 혹자는 87년 체제의 종언, 혹자는 박정희 체제의 종언이라고 하는데, 저는 더 나아가서 이승만 대통령부터 시작한 제1공화국부터 제6공화국까지를 하나로 보고, 새로운 70년의 시작이 되는 그런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크게 보는 시각이다.
“이번 선거는 4·13 총선의 결과이기도 하고 태극기와 촛불의 대결 양상의 결과이기도 하다. 다음 정부는 새로운 70년을 준비하는, 정말 우리 사회를 개혁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정부가 되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어떤 정파가 자기 주의·주장을 가지고 끌고가기엔 구도적으로 어려운 현실이다. 어떤 분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대한민국의 통합정부 드림팀을 만들어서 국민대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개헌 문제도 그렇고, 여러 갈등을 정부 주도가 아니라 시민이 다 참여해서 국민대타협을 이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와 안보다. 대북정책에서 합의된 정책을 만들어보는 그런 정부가 탄생해주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미래가 상당히 어두울 것이다. 그 정권도 상당히 험난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문재인-안철수 양강구도다.
“두 사람 중에 하나가 되겠지.”
-이번 대선에서 홍석현 전 회장의 역할이 있다면?
“그분들과 만날 기회가 있으면 조금 전에 말한 이번 대선의 의미를 말씀드리고 싶다. 어느 분이 되든 그 정부가 주어진 역사적 소명을 하는 것이 그 정부를 위해서도 좋고 국민을 위해서도 좋다. 제 얘기를 꼭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당선을 도울 의향은?
“저도 제 생각을 많이 받아들여 주는 분을 지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 분을 공개지지 선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평가는? 대통령 되면 잘 할까?
“민감한 때라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긴 참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나 문재인 후보가 진보적인 분들의 지지를 많이 받는다.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당의 사명이고 지지자들을 위해서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놓여진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해서 보다 통합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그런 정부 정책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그렇게 해야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도가 최근에 급상승했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평가는?
“민주당에서 안철수 후보를 비판할 때 40석 정부가 어떻게 나라를 이끄냐고 한다. 안철수 후보야말로 통합정부로 갈 수밖에 없지않나 생각한다. 안철수 후보가 승리해도 민주당과 같이 정부를 구성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그게 뭐가 나쁜건가. 지금 나라가 중요하다. 이 난국을 혼자서 이끌어 가기엔 우리가 안고 있는 도전 과제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다.”
-보수정당의 홍준표 유승민 후보에게 조언한다면?
“제가 조언을 할 입장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다 잘 아는 분들이다. 어느 나라든 보수가 다수다. 영국 프랑스 독일도 다 보수가 다수다. 보수가 잘 못할 때 진보에게 기회가 온다. 서양에선 그게 큰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안철수 후보도 문재인 후보도 엄연히 존재하는 35%의 보수를 무시하고 국정을 이끌어갈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지는 선거에서 보수가 집권하기는 참 어렵다. 그러나 저는 보수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의 가치도 살아 있어서 그분들도 보수 정당을 다시 살리는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보수의 목소리를 내되 그 정부와 협조해서 나라를 생각하는 역할을 아마 해주시리라 믿고,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낙관하나, 비관하나?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위기에 대한 불감증이다. 2만불째 10년을 가고 있다. 보통은 2만불대에서 빠르면 7년, 늦어도 10년 안에 3만5천불로 간다. 실패한 나라는 중진국에 영원히 머문다. 아니면 후진국으로 간다. 서서히 익어가는 뜨거운 물속의 개구리다. 안보 문제도 심각하다. 미국과 중국의 손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 있다. 독립국으로선 엄청나게 자존심이 깍이는 일이다. 그래도 우리가 이만한 축적이 있어서 대통령 없이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70년이란 큰 사이클을 끝내고 새로운 70년을 준비하는 전환기에 우리가 대처를 잘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두울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저력과 시민의식이 있다. 그리고 이제 정치인들 뿐만이 많은 지도층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걸 2~3년 모아낸다면 대한민국은 굉장히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리더십의 위기지, 우리 시민의식과 국민의 위기는 아니다. 그런데 리더십의 위기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5월9일 대선 전에 안보 위기가 닥칠 가능성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선제타격이 있을까?
“김정은 위원장이 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대선 직후 새 정부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북의 핵·미사일 도발이 있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강경 대처를 주장하고 나올 것이다. 그 때 우리의 선택지가 무엇일까. 지금 우다웨이가 와 있다. 문재인 정부나 안철수 정부가 들어서면 사드 당론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중국이 사드 철회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다. 중국도 경직된 사회라서 시진핑에게 그런 보고가 들어갔다. 밑에서 보고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중국이 압박을 더 세게 할 것이다. 새 정부는 안철수 정부든, 문재인 정부든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북의 도발에 대한 미국의 강경 대처에 대한 대처를 잘못하면 돌발적이거나 불행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서야 되겠나.”
-인터뷰를 마무리하겠다. 더 하고 싶은 말씀은?
“대타협론을 옛날부터 오랫동안 생각하고 주장해 왔다. 정말 우리가 이걸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 서구가 백년간 해온 것을 우리가 처음 시작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지배구조, 경제민주화, 규제혁파, 경제자유화에서 대타협을 해야 한다. 남남갈등의 기본은 대북정책이다. 대타협해야 한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심상정이나 노회찬씨를 노동부 장관을 한번 시켰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최대공약수 개혁을 하지 않겠나. 우리는 최선, 차선, 차악, 최악 중에서 차악이라도 선택해서 앞으로 가야 한다. 그냥 딱 막혀 버리니 안된다. 대북정책도 전쟁부터 퍼주기까지 양 극단의 스펙트럼 안에 정책이 있는데, 가장 합의할 수 있는 것을 정해거 그것은 바꾸지 않고 일관되게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네가 옳다, 내가 옳다, 우리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건 좀 사치다.”
-현실적으로 2~3년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홍석현 전 회장의 ‘작은 힘’이라는 역할도 2~3년 안에 찾아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 제 나이도 있다. 자리를 추구한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돈으로 되겠나. 안 될 것이다. 저같이 모든 것을 가진 사람도, 한 사람으로서 제가 죽 일생을 살아오면서 나라에 대한 생각을 할 기회가 많았다. 중앙일보, 제이티비시 회장으로서 하는 소리보다는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참여 가능성을 열어두고 소리를 내고 싶다는 것이 제가 회장직을 그만둔 하나의 계기였다.”
홍석현 전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고 “제가 12년 만에 두번째 가출을 한다. 주미대사 때 한 번, 이번에 한 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쓴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라는 책에 서명을 해서 주었습니다. 윤형중 기자가 질문을 추가했습니다.
-개성공단이라는 하나의 세부적인 사안을 두고도 의견이 다르고 서로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다.
“그래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다 테이블에 올려놓고 서로 양보하면서 갈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이라는 것이 현실이고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다시 열어서 발전을 시켜야 하는 것인데 그게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 전엔 참 힘든 것이다. 그게 다 도전과제다.”
-타협을 통해서 추진하면 더 강한 힘을 받을 것 같다.
“그렇다.”
성한용 선임기자, 윤형중 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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