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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20 10:53 수정 : 2017.04.20 11:40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34
동교동계 전 장관·의원 10여명 ‘문재인 지지’ 성명
박지원·최경환·권노갑 등은 ‘안철수 선대위’ 포진
국민의당 ‘호남 정체성’ 민주 ‘민주·평화 정신’ 우위
김현철·김덕룡 등 상도동계 인사들은 문재인 선택

1970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40대였던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세 후보가 경쟁했습니다. 야당의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40대 기수론’의 출현이었습니다. 1차 투표에서 김영삼 후보가 1위를 차지했지만 결선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1971년 대선에 출마했고 현직 대통령이었던 공화당 박정희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그 이후 박정희 전두환 정권 20여년간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가 우리나라 야당의 양대 축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집이 각각 상도동과 동교동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두 사람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대통령 자리를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에게 헌납했지만, 1992년과 1997년 대선에서 차례차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50대 이상 유권자들이 상도동과 동교동이라는 지명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두 거물 정치인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5·9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출신 정치인들이 속속 문재인이나 안철수 후보 지지 선언에 나서고 있습니다. 20~30대 젊은 유권자들에게는 낯설지만 50대와 60대 이상 유권자들에게는 낯익은 이름들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동교동계 원로’들이 19일 민주당사 4층 회의실에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과 성명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장재식(전 산자부 장관), 천용택(전 국정원장), 임복진(전 의원), 김화중(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근식(전 행자부 장관), 나병선(전 의원), 배기선(전 의원), 배기운(전 의원), 김태랑(전 의원), 한영애(전 의원), 조재환(전 의원), 이강래(전 의원), 안병엽(전 정보통신부 장관)

우리 동교동계는 이번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화합과 통합의 정신을 실천하고, 민주 호남정신을 구현해 나갈 적임자는 문재인 후보라고 판단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분열을 가장 경계하셨다. 그러나 지금 호남은 안타깝게도 김대중 정신의 가치를 왜곡한 정치세력으로 인해 분열 속에 있다. 이제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세력과 결별하고, 화합과 통합의 김대중 정신을 이어갈 문재인 후보와 힘을 모아주시기를 국민께 호소한다.

돈 없고 서러운 사람을 위하는 게 정치라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철학과 신념을 받들고 사회적 약자 보호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6·15 정신과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적임자는 문재인 후보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초래한 남북관계 파탄, 민생경제 파탄, 민주주의 파탄으로부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문재인 후보가 승리해야 한다.

이명박근혜 보수정권 세력과 손잡는 또 다른 정권연장이 아닌 김대중 정신이 계승되는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시대적 과제이다. 이에 동교동계는 김대중 정신을 이어나갈 대통령 후보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 줄 것을 국민께 다시 한번 간곡히 호소드린다.

(몇 시간 뒤 국민의당 손금주 대변인은 “13명 가운데 천용택 전 국정원장은 지지 선언에 함께 가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그런 짓 하지 않는다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무단 지지선언’이다”라고 논평했습니다.)

성명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분열을 경계했는데 김대중 정신의 가치를 왜곡한 정치세력이 호남을 분열시키고 있다”거나 “이명박근혜 보수정권 세력과 손잡는 또 다른 정권연장”은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을 겨냥한 것입니다. 이들이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에 각을 세우는 이유가 뭘까요? 국민의당 중앙선대위 조직도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국민의당 상임중앙선거대책위원장을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대표가 맡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관을 지낸 최경환 의원(광주북을)은 안철수 후보 비서실장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을 자처하는 권노갑 전 의원과 정대철 전 의원이 상임고문, 정균환 김옥두 전 의원이 고문입니다. 김동철 특보단장, 박양수 조직특보, 박인복 공보단 부단장도 동교동계 출신입니다. 박주선 천정배 정동영 공동선대위원장은 동교동계라고 할 수는 없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된 정치인들입니다.

동교동계와 호남 사람들이 지금 국민의당과 안철수 캠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가 말한 ‘안찍박’(안철수 찍으면 박지원 상왕 된다) 프레임이 영남에서 일부 통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19대 대통령 선거운동일 첫날인 17일 오후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전북대학교 앞에서 박지원대표와 유세를 펼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지원 대표를 비롯한 동교동계 출신 국민의당 사람들은 지금 ‘안철수 대통령’ 만들기에 ‘모두걸기’(올인)를 하고 있습니다. 권노갑 박양수 등 동교동계 핵심이었던 인사들이 과거의 마당발 인맥을 총동원해 “안철수를 찍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안철수 후보가 패배하면 국민의당에 합류한 동교동계는 명분도 실리도 다 잃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박지원 대표의 ‘오버’ 기류도 감지됩니다. 박지원 대표는 갈수록 문재인 후보에 대해 ‘친문 패권 세력’, ‘반호남 세력’이라는 네거티브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오후 전주에서 열린 전북 선대위 발족식 겸 유세에서는 심지어 “문재인은 대북송금 특검을 해서 우리 김대중 대통령을 완전히 골로 보냈다. 거짓말 변명을 하면서 우리 호남을 무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지원 대표는 스스로도 말이 좀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페이스북에는 “골로 보냈다”가 아니라 “나락으로 보냈다”고 고쳐서 올렸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역으로는 ‘호남’이라는 정체성을, 이념이나 정책으로는 ‘민주’와 ‘평화’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후보의 국민의당 중에서 누가 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체성을 많이 계승하고 있을까요?

일단 호남이라는 지역 정체성은 국민의당이 차지했다고 봐야 합니다. 지난해 4·13 총선의 국민의당 호남 압승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민주와 평화 정체성은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더 많이 계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정책 노선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후보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고스란히 승계한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과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지금 보수 기득권 세력에 의해 ‘종북’으로 몰리고 있는 것도 대북정책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선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동교동계가 문재인과 안철수로 패가 갈려 싸우는 모습을 보면 ‘정치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자신의 후계자들이 패가 갈려 싸우는 모습을 본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뭐라고 할지 정말 궁금합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북카페에서 김덕룡 전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김 전 의장은 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상도동계 얘기도 좀 하겠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현철씨는 19일 페이스북에 글을 띄워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현대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이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직면하여 심각한 갈등과 분열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시대정신인 화합과 통합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대통령 후보가 바로 문재인 후보라고 생각하기에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를 적극 지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과거 30년 전 민주화 세력의 분열로 말미암아 이후 국민 다수가 원하는 민주화의 확립과 참된 개혁을 확실히 성취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퇴행하는 작금의 모습을 보면서 저의 합류가 상징적만이라도 민주세력의 재결집을 통해 정통 민주화 세력의 확실한 정권교체라는 숙원에 동력을 불어넣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문재인 후보만이 민주화 전통의 맥을 잇고 영호남의 진정한 화합과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각종 갈등과 분열을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상도동계 김덕룡 전 의원도 19일 문재인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저는 문재인 후보가 하나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끌어온 우리 세대가 미래세대의 선택을 응원합니다.

1. 정권교체는 이미 목표가 아니라 기정사실화 되었습니다. 이제 정치를 바꿔서 시대교체로 나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 개헌은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2. 안보, 경제 등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박근혜 정권을 구성하고 지탱한 국정농단세력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의 참여와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 연정과 협치를 실천하기 바랍니다. 하나 된 대한민국을 위해 통합정부의 내각은 각계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코리아 올스타팀’이 되기를 바랍니다.

3. 국가대혁신과 사회적 대타협 그리고 확고한 국가안보와 통일에 대한 국론통일을 위해 여·야, 보수·진보, 지역, 세대를 아우르는 ‘통합국민회의’를 구성하여 국민대통합의 길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시대교체의 대전환기에 치러지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끌어온 우리 세대가 우리나라의 내일을 이끌어갈 미래세대의 선택을 응원하고 함께 해나가겠습니다.”

김현철씨와 김덕룡 전 의원은 국민의당에서도 영입에 꽤 공을 들였던 인사들입니다. ‘상도동’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 때문입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에게 기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국민의당에서도 김덕룡 전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냈는데 결국 문재인 후보에게 갔다.

“저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오랫동안 얘기했고 (안철수) 후보도 얘기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조건이 좀 맞지 않아서, 또 부산에서 활동하는 김덕룡 대표와 가까운 상도동계 출신들이 이미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니까 아마 그쪽으로 가신 것 같다. 뭐 우리가 잘 모시지 못했으니까 그쪽으로 가신 것에 대해서 아쉽지만 뭐라고 하겠나.”

-동교동계 인사들이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글쎄 그분들 중에서 몇분은 이미 가 있었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한 분들이 박지원 대표 보기에는 동교동계 핵심인가?

“제가 그런 말 할 위치에 있지 않다. 좋은 분들이 가신 분들이 많아서.”

-문재인 후보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를 흡수하는데 국민의당은 인재 영입 경쟁에서 밀리는 것 같다.

“우리는 좀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5월 9일 대통령 선거 직전까지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의 영입 경쟁은 치열하게 계속될 것입니다. 4월19일은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웃었지만,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이 웃는 날이 곧 올 것입니다. 정치는 결국 사람입니다. 누가 과연 문재인을 지지하는지, 누가 과연 안철수를 지지하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5·9 대통령 선거 관전의 흥미로운 포인트가 아닐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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