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막전막후 170
지방선거 향한 보수재편, 야권 5인의 ‘동상이몽’
정계개편의 동력은 정당의 불안정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정당은 쉴새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이름을 바꾼다. 지금 가장 오래된 정당은 정의당이다. 대통령제의 짝으로 오랫동안 길들여진 양당제 심리와, 복잡한 세상을 반영해야 하는 다당제 수요가 충돌하며 변주를 일으킨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형성됐던 4당체제가 3당체제로 다시 돌아갔다. 4당체제와 3당체제는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현안에 대해 각 정당이 찬성과 반대 입장을 갖는 경우의 수는 3당체제에서는 2의 세제곱으로 여덟가지, 4당체제에서는 2의 네제곱으로 열여섯가지다. 정부·여당으로서는 3당체제가 훨씬 간명하다.
바른정당 교섭단체 붕괴는 엄밀히 말해 정계개편이 아니다. 이합집산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이견으로 갈라졌던 새누리당이 결국 이름만 바꾸고 다시 합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파를 주시해야 한다. 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 전에 추가 이합집산이나 진짜 정계개편이 있을 수 있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한길 대표의 민주당과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연합이 전격 통합해 새정치민주연합이 탄생했다.
4당체제서 3당체제로바른정당 교섭단체 무너졌지만
탄핵때 갈린 세력 재결합일뿐 # 배경 정당의 목적은 집권이다. 보수 정당은 몰락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나 희망이 안 보인다. 집권은 고사하고 존속도 어렵다. 당장 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가 문제다. 대통령 선거 1년 1개월 뒤에 치러지는 선거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은 그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는 떨어질 조짐이 없다. 광역단체장 중에 인천(유정복), 대구(권영진), 경북(김관용), 부산(서병수), 울산(김기현), 경남(공석) 여섯 곳이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홍준표 대표는 9월 말 “광역단체장 여섯 곳을 지켜내지 못하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바른정당은 경기(남경필), 제주(원희룡) 두 곳이다. 보수 정당으로서는 여덟 곳을 지켜야 본전이다. 지킬 수 있을까? 현재의 정당 지지도를 보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눈을 멀리 돌려도 암담하기는 마찬가지다. 홍준표 대표는 지방선거를 위해 개헌까지 포기했다. 취임 초기 대통령이 개헌을 적극 요구하고 제1 야당 대표가 개헌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참 희한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개헌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치 일정은 2020년 4월 국회의원 선거, 2022년 2월 대통령 선거, 2022년 6월 지방선거가 된다. 대통령 선거 뒤 4개월 만에 지방선거를 치르는 특이한 일정이다. 대선 승자가 지방선거도 압승할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 2022년 대선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보수 세력으로서는 기존 정당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그야말로 환골탈태 수준의 혁신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보수정당 몰락이 배경
한국당·바른정당 희망 안보여
내년 지방선거 단체장 8곳 지켜야 본전 # 주역 정치는 명분과 실리를 조화시키는 예술이다. 대의명분과 자신의 정치적 잇속을 일치시키면 성공한다. 정치인의 말은 성직자처럼 고상하지만 행동은 장사꾼처럼 속물적인 이유다. 홍준표 대표의 별명은 ‘독불장군’이다. 그는 출세욕이 강하다. 그의 의식은 비주류 콤플렉스가 지배한다. <변방>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대구에서 이름없는 고등학교를 나왔다. 대학생 때 미팅을 나갔다가 상대 여학생이 그의 출신 고등학교를 듣고 나가버렸다.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가 검사를 할 때 검찰은 서울법대, 경기·서울·경복고, 그리고 각 지역 명문고 출신들이 판을 쳤다. 그는 기댈 데가 없었다. 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당당했다. 그런 단련이 오늘의 홍준표를 만들었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과 조기 대선은 ‘비주류 홍준표’에게 보수 정당의 주류로 진입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정치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지금 홍준표 대표는 독자적으로 당내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정계개편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는 인적 혁신, 조직 혁신, 정책 혁신 등 3대 혁신으로 보수 정당을 재건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서청원 최경환 의원 출당은 이를테면 인적 혁신이다. 물론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탈당파의 ‘복귀’에도 명분을 제공했다. 다음 수순은 조직 혁신이다. 자유한국당은 지금 총선 시기도 아닌데 당무감사를 하고 있다. 연말연초에 당협위원장 물갈이에 들어간다. 상당한 진통과 소란이 예상된다. 2018년 6월 지방선거는 ‘선방’이 목표다. 지방선거에서 살아남으면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 정부와 강하게 충돌할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자신의 정치적 존재 가치를 높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는 2019년 전당대회 대표 재선, 2020년 총선 승리 주역, 2022년 대통령 당선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잘 될까? 김무성 의원은 요즘 표현으로 금수저 정치인이다. 돈많은 선친 덕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에 입문했다. 40대 초반에 청와대 대통령실 민정수석 비서관, 내무부 차관을 했고, 45살에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래서일 것이다. 단순하다. 세상을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의 대결로 파악한다. 장점도 많다. 정치 경험이 풍부하다. 사람들과 두루 친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 의원과 당직자들은 ‘무대’(김무성 대장)가 대통령의 독선에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큰 몸집과 어울리지 않게 그는 너무나 허약했다. 그의 굴욕은 4·13 총선 패배와 정권 몰락으로 이어졌다. 김무성 의원의 탈당과 복당 명분은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서 보수를 개혁하고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막겠다는 것이다. 실제 이유는 좀 다르다.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그는 바른정당의 궁핍한 생활 자체를 힘들어했다. 유승민 의원이 이끄는 바른정당에 남아 있으면 미래가 없다. 반면에 자유한국당에 돌아가면 재기를 엿볼 수 있다. 야당 주역들 엇갈린 셈법
비주류 홍준표, 지방선거에 사활
금수저 김무성, 홍준표 이후 엿봐
외골수 유승민, 명분이 곧 실리로
내리막 안철수, 통합 꾀하다 역풍 시나리오는 이렇다. 12월 중순 원내대표 선거에 김성태 의원과 홍문종 의원의 출마가 유력하다. 김성태 의원은 김무성 의원과 가까운 사이였다. 김성태 의원이 이기면 자연히 김무성 대표가 힘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여기에 내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패배하면 그 책임은 홍준표 대표가 지고 물러나야 한다. 서청원 최경환 등 친박 세력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김무성 대표에게 ‘화려한 복귀’의 기회가 올 수 있다. 잘 될까? 시나리오를 전해들은 자유한국당 실무 당직자는 코웃음을 쳤다. “당내에서 김무성 대표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김성태 의원이 김무성 대표를 등에 업으면 원내대표 선거에서 질 수도 있다”고 했다. 유승민 의원은 명분의 정치인이다. 자신이 한 말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레이저’에 굴하지 않을 정도의 뱃심이 있다. 결국 대통령에 정면으로 맞서다가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났고 공천도 못받았다. 덕분에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을 얻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본래 외골수였던 그의 태도가 갈수록 더 완강해지고 있다. 정치인은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바른정당 의원들의 탈당 원인 중에는 유승민 의원의 배타적 리더십도 있다. 탈당 사태를 막기 위해 통합 전당대회를 제안했던 남경필 경기지사는 “유승민 의원과 얘기를 하면 자꾸 화가 난다”고 했다.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고 이유를 설명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유승민 의원은 국민의당과 통합 조건으로 햇볕정책 포기와 탈호남을 요구하면서 “저 자신이 대구에서 4선을 한 국회의원이지만 영남 지역주의에 함몰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의 말은 국민의당 호남 의원들에게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티케이’의 한계, ‘금수저’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는 것이다. 바른정당을 지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승민 의원의 실리는 어쩌면 명분 그 자체다. 자유한국당이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왜 통합을 해야 하느냐는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지금은 외로워보여도 시간이 흐른 뒤 보수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유승민 의원의 명분을 지지해주면 그는 크게 성공할 수 있다. 안철수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매우 강하다. 안철수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국민의당 의원들의 증언이 있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가 있다. 영화도 있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질투가 심했다. 취임 초기에 고강도 개혁을 하면서도 “디제이는 절대로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 이틀 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가 청와대에서 오찬을 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표정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게 정말 현실인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고 전했다. 이번 대선 직후 5·18 기념식에 참석한 안철수 대표의 표정이 바로 그랬다. 안철수 대표는 대선 패배 뒤 국민이 만들어준 다당제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대표에 복귀했다. 그런데도 국민의당 지지도는 바닥 수준이다. ‘물은 100도씨가 돼야 끓는다’고 설명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초조감에 바른정당과 섣부른 통합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뒤 당내에서 파열음이 나는 등 곤경에 빠졌다. 명분도 실리도 다 잃을 수 있는 위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을 하기 위해 3당합당을 결행했다. 안철수 대표는 어떻게 할까? 박지원 의원은 노련한 정치인이다.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 시도 와중에 ‘햇볕정책의 수호자’, ‘호남정치의 대부’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겼다. 그러나 국민의당에 몸담은 상태에서 개혁 노선을 지키는 것은 고난도 줄타기다. 내년에 전남지사가 될 수 있다면 화려한 정치인생의 대미를 장식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 변수 정치는 맞물린다. 야권발 정계개편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역설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처럼 압도적 지지를 이어가면 야권은 선택지가 좁아진다. 인위적 정계개편을 섣불리 시도했다가는 오히려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최근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 시도가 그런 사례다. 반대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하면 야권은 활동 공간이 열린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의 통합, 선거연대, 정책연대 등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도 중요하다. 2017년 정기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입법’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개혁입법이 무산됐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까? 혹시라도 연정을 추진하면 여권발 정계개편 태풍이 야권으로 몰아친다. 지방선거 전 정계개편 없을 듯
문재인 대통령이 최대변수인 역설
지지율 고공행진땐 야 선택지 좁아
바른정당 자강파·남경필 원희룡 등
선택에 따라 이합집산 마무리될듯 # 전망 정계개편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치인들의 언어다. 촛불의 힘을 믿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분간 정계개편을 추진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 사람들이나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의 일치된 관측이다. 그렇다면 내년 6·13 지방선거 이전에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정계개편은 없다고 봐야 한다. 자강파 중심의 바른정당 의원들과 남경필 원희룡 지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번 이합집산을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국민의당 의원 일부가 개별적으로 더불어민주당으로 갈 수는 있겠지만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당분간 대체로 현상유지(스테이터스 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물론 단정하긴 어렵다. 의외성과 역동성이 정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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