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13]
박정희 독재와 싸우던 시절 강한 자부심
1990년 3당 합당으로 자존심 크게 다쳐
“배신자” “전라도” 비난으로 이중의 고통
“당당한 부산”은 노무현과 문재인의 소망
대선·지선으로 영남민주주의 역사 새로 써
# 1973
부산에서 서울의 중학교로 전학온 그 친구는 사투리가 무척 심했다. 다른 친구들은 놀렸지만 나는 놀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대전에서 올라온 나에게 같은 반 서울내기들이 “그랬시유~”라고 놀렸던 기억 때문이다. 친구는 나에게 고마워했다.
눈이 내렸다. 10분 휴식이 끝나고 수업 시작종이 울렸는데도 친구는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친구가 운동장에서 강아지처럼 뛰고 있었다. 수업에 늦게 들어온 친구는 선생님에게 매를 맞았다.
“왜 그랬어?”
“내 눈 생전 처음 본다.”
“부산에는 눈이 안 오냐?”
“안 온다. 진짜 눈 보니까 참 신기하다.”
# 1979
광주 31사단에서 만난 그 군의관은 부산대 의대를 나왔다. “이과에서 의대가 제일 좋고 서울대 다음이 부산대”라고 자신의 학력을 늘 자랑했다.
그는 김영삼과 부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김영삼이 박정희와 싸워서 ‘부마사태’(당시에는 그렇게 불렀다)가 일어났다고 했다. 부산대 학생들과 부산 시민들이 들고일어났는데 박정희가 장갑차로 깔아뭉갰다고 했다. 박정희가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분노했다.
그의 말대로 박정희는 ‘부마사태’ 때문에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다. 부대 안에서 말조심하던 그는 얼마 뒤 전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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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부마항쟁’은 유신체제의 종말을 알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유신정권 말기 물가 폭등과 빈부 격차,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원인이 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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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
보험회사 감사실은 지방 출장이 잦았다. 부산의 분위기는 독특했다. 평범한 회사원도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2·12 총선의 신한민주당 돌풍은 부산에서 강하게 불었다. 6개 선거구에서 각각 2명씩 모두 1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였다. 전두환 총재의 민정당이 한명씩은 당선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부산 지역구 당선자 12명의 당적은 신한민주당 6, 민한당 2, 국민당 1명이었다. 민정당은 3명에 그쳤다. 세 군데 지역구에서 민정당 후보를 3등으로 밀어낸 것이다.
그런 지역구와 당선자는, 중·동·영도 박찬종(신한민주당) 김정길(민한당), 부산진갑·을 김정수(신한민주당) 강경식(국민당), 동래갑·을 박관용(신한민주당) 이건일(민한당)이었다. 선거가 끝난 직후 부산의 술집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 1987
부산이 고향인 친구는 “죽 쒀서 개 줬다”고 했다. “디제이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 실패로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자 부산 사람들의 분노는 호남과 김대중을 향해 폭발했다.
부산의 후보별 득표율은 김영삼 55.98%, 노태우 32.10%, 김대중 9.14%였다. 광주의 후보별 득표율은 김대중 94.41%, 노태우 4.81%, 김영삼 0.51%였다.
# 1990
노태우의 민정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손잡고 민자당을 만들었다. 김영삼은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런가? 누가 봐도 ‘3당 합당’이 아니라 ‘3당 야합’이었다.
술에 취해서 부산 출신 친구에게 “야 이 배신자 xx들아”라고 욕을 했다. 아차 싶었지만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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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22일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3당 합당을 선언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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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
민자당의 김영삼, 민주당의 김대중이 맞붙은 대선에서 부산은 김영삼 후보에게 73.34%를 몰아줬다. 김대중 후보의 득표율은 12.52%였다. 김영삼이 당선되고 김대중은 정계를 은퇴했다.
부산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욕을 했다.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뒤 하나회 출신 군인들을 몰아내고 고위 공직자 재산을 공개했다. 오랜만에 만난 부산 친구의 어깨는 조금 올라가 있었다.
# 1993
민주당의 노무현 최고위원은 부산에서 “왜 전라도하고 정치를 같이하냐”고 욕을 먹었다. 재야 출신이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부산 출신인 그가 3당 합당 때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은 것에 대해 고마워했다. 그러나 대놓고 부산을 욕했다. 노무현 최고위원은 그럴 때마다 곤혹스럽다고 했다. 부산에서 야당을 하는 것은 이중의 고통이라고 했다. 노무현 최고위원은 기자들에게도 가끔 그런 하소연을 했다.
# 1997
12월 대선에서 김대중이 이회창을 꺾었다. 부산의 후보별 득표율은 이회창 53.33%, 이인제 29.78%, 김대중 15.28%였다. 부산 출신 후배는 “부산이 김대중을 찍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인제를 많이 찍어서 정권교체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수고했다”고 말했다.
# 2000
노무현은 지역주의와 맞짱을 떴다. 서울 종로를 포기하고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다.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득표율은 35.69%,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의 득표율은 53.22%였다. 부산은 노무현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노무현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2002
12월 대선에서 이회창과 노무현이 격돌했다. 노무현 후보는 부산 사람인데도 부산 득표율은 29.85%에 그쳤다. 이회창 후보는 66.74%였다. 노무현 후보는 수도권과 호남, 충청 등 다른 지역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한 지도자는 외로웠다.
# 2003
부산에서 올라온 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민정비서관은 ‘이슬만 먹고 사는 귀뚜라미’ 같은 사람들이었다. 재벌의 금품 공세는 무기력했다. 하지만 잘난 서울내기들은 ‘부산파’를 대놓고 무시했다. 서울내기들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을 ‘시골’이라고 불렀다. ‘부산 비주류’ 정권은 취약했다. 임기 내내 부산과 호남 양쪽에서 외면당했다.
# 2012
19대 총선에서 문재인은 부산 사상에 출마해 55.04%로 당선됐다. 그러나 부산은 여전히 ‘문재인과 민주당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월 대선 때 부산에서 문재인 후보는 39.87%를 득표했다. 박근혜 후보의 득표율은 59.82%였다. 부산은 “어쩔 수 없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 2016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고 출마한 후보들 가운데 김영춘, 박재호, 전재수, 최인호, 김해영 등 무려 5명이 당선됐다. 부산이 마침내 ‘문재인과 민주당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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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22일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부산 서면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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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2017년 3월 31일 부산실내체육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영남권역 선출대회가 열렸다. 8천명의 청중 앞에서 문재인 경선 후보가 피를 토하는 듯한 연설을 한 일이 있다.
“기억하십니까? 동지 여러분! 영남에서 민주당 하며 설움 받던 27년의 세월! 기억하십니까? 선거 때마다 지는 게 일이고, 지고 또 지면서도 민주당 깃발 놓지 않았던 27년의 아픔! 기억하십니까?”
“빨갱이 종북 소리 들어가며 김대중 노무현을 지켰던 27년 인고의 세월! 저는 기억합니다. 저뿐 아니라 영남 땅에서 민주당 깃발 지켜온 동지라면 누구라도 그 설움과 아픔, 가족들의 고통까지 생생히 기억합니다.”
“저와 영남 동지들의 원대한 꿈! 오랜 염원! 감히 고백합니다. 영남의 민주주의 역사, 새로 쓰고 싶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정권 교체하면, 영남은 1990년 3당 합당 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그 자랑스럽고 가슴 벅찼던 민주주의의 성지로 거듭날 것입니다.”
5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부산의 후보별 득표율은 문재인 38.71%, 홍준표 31.98%, 안철수 16.82%였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부산 1등’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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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가 13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자신의 선거 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두 팔을 번쩍 들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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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6·13 지방선거에서 부산의 16개 구청장 가운데 13개를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다. 부산시의원 47명 가운데 41명, 기초의원 182명 가운데 103명이 더불어민주당이다. 울산은 구청장 5명을 더불어민주당이 다 차지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천하’가 된 것이다.
# 마무리
궁금했다. 부산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며 30년 동안 상처받았던 사람들이 자존심을 좀 회복했는지 알고 싶었다.
부산 출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한다”고 했다. 친구는 의외로 시큰둥했다. “이제 뭐 반독재 투쟁이니, 민주화의 성지니, 김영삼이니 다 의미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내 친구가 나이가 든 것일까, 아니면 이미 세상이 다른 차원으로 진화한 것일까?
어쨌든 내 어릴 적 친구를 포함해서 부산 사람들에게 축하와 위로를 전하고 싶다. 오랫동안 상처받은 ‘부산 갈매기’들의 자존심이 조금은 회복됐으리라고 믿는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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